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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 남북한 설 쇠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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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통신은 19일 "온 나라 인민이 설 명절을 뜻깊게 맞이했다"며 북한 주민들의 설 맞이 풍경들을 소개했다. 사진은 사물놀이 공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어렸을 때 설날이 되면 형제들과 같이 일가친척을 찾아다니며 인사드리고 다 하는 것, 어렸을 때 세뱃돈 받는 것 즐거워했고/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이렇게 오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 너희들도 나와 같이 멀리 있는 오빠를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고 그런 각오를 가지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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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큰 명절 ‘설날’을 맞아 한반도 남쪽에서는 5일간의 공식 휴일로 거대한 민족의 이동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설 당일부터 사흘간을 공식 휴일로 하고 있으나 올해는 주말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3회 생일 연휴 이틀을 합쳐 최장 8일간의 연휴를 즐긴다고 남한언론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올 설날에 가장 아쉬운 것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것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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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은 남북한이 맞는 설 문화의 특징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임채욱 선생: 남북한에서 양력 1월 1일이나 음력 정월 초하루를 다 같이 설날로 쇠면서 세배를 하고 새해 덕담을 나누며 민속놀이를 즐기는 것은 같지만 다른 모습도 좀 있지요. 북한에서는 양력설이나 음력 설날 아침 조상에 대한 제사보다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화환을 바치는 일이 빠지지 않지요. 설날 인사도 좀 다릅니다. 북한에서는 양력 1월 1일 “새해를 축하합니다”, “새해에 건강 합시다”, “새해에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설명절을 축하 합니다” 같은 인사를 합니다. 양력 설날 거리에는 ‘축하 새해’, ‘설명절 축하’ 같은 플래카드, 현수막도 내 겁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대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지요. 거리 플래카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많지요. 드물게는 “근하신년”이란 것도 보이긴 합니다.

임채욱 선생은 남북한 새해 인사 내용의 다른 점도 지적해 줍니다.

임채욱 선생: 세배인사 내용이 북한에서는 축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한국에서는 복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보기에 따라서는 북한 쪽이 좀 더 진보적인 인사 같기도 하지요. 하지만 “복을 받으라”는 말은 “축복을 받으라”는 말이니까 봉건시대의 케케묵은 개념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보편성을 지닌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떻든 남이나 북이나 옛날처럼 “과세 안녕하십니까”, “과세 잘 하세요” 같은 전통적인 인사는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세배할 때 한국에서처럼 큰절을 하지 않고 머리 숙이는 절로 대신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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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만 이산가족들은 설날 명절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기대했었건만 이렇듯 물거품 된 것에 한숨으로 화답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알칸소 주 알칸소 주립대학(농과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대학교수가 돼 40년 가까이 교수로 미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금은 은퇴하신 김경수 씨, 그는 한국전쟁 중 북한땅 고향 원산에 그리운 어머님과 동생 셋을 두고 남하했다며 죽기 전에 꼭 만날 것을 하소연합니다.

김경수: 우리 어머니 성함은 이순임, 큰동생은 김의수, 둘째 동생은 김은수, 막냇동생은 김희수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살아 계셨으면 100살이 넘으셨으니까? 돌아가셨을거고, 내 동생들은 살아 있을는지도 모르지요.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떻해 든지 오빠나 형을 만날 때까지 살아 좋으면 좋겠어요.

김경수 씨 북한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김경수: 인사하기 전에 벌써 목이 메이네요. 내가 나이가 80이 넘기까지 살고 있는 것은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보기 전에는 내가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오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 너희들도 나와 같이 멀리 있는 형 오빠를 보기 전에는 너희도 죽을 수 없다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그렇게 살아 죽기 전에 꼭 만나도록 하자! 알았지 잘 있어 워싱턴 인근에 사는 실향민 시인 이경주 씨의 설날 생각입니다.

이경주 시인: 이렇게 타국에 나와서 있으니까? 생활하다 보면 바쁘니까? 한국에서 보내는 그런 설날은 안 되겠지요. 이제 뭐 80년 전 86이니까? 아무래도 오래됐지요. 난 어렸을 때에 학생 때 젊어서 고향을 떠나서 혼자서 자유의 땅으로 왔기 때문에 어렸을 때 진한 고향의 향수 같은 것도 채 느끼지 못하고 떠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 설날이 되면 형제들과 같이 일가친척을 찾아다니며, 저는 또 아버지를 일찍 여위었기 때문에 홀어머니가 저희들 키우셨어요. 참 많이 고생하셨어요. 그래 친척들 찾아 인사드리고 다 하는 것, 어렸을 때 세배돈 받는 것 즐거워했고 어름 지치기 하는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지요.

실향민 시인, 이경주 씨의 ‘고향의 봄’ 시 함께 듣습니다.

고향의 봄

고향의 봄 3월이면
냉이 달래 씀바귀
봄 향기 적시는 들 바람에
아가씨들 나물 바구니 배 부르고

실개천 징검다리에
버들가지 맴돌며
진달래 덮인 뒷동산
높이 종달이 지지댈 때
봄은 행복을 얹고 살포시 온다
동네 안 집집 처마 밑에
제비 새 집 짓고
각담마다
복숭아 살구 하얀 배꽃이 병풍 두르고
볕 발은 마루에 고양이 졸고
암탉이 병아리 품은 어리 둘레를
수탉이 벼슬 세워 순검 돈다
동튼 새벽
소죽가마 데우는
굴뚝 연기가 마을 덮고
아버지 걸음 지게 지고
밭고랑 누빌 때
잠 깬 황소 느린 울음소리
동네를 깨우며
어머니 아침참 함지에 이고
검둥이 앞세워 이슬길 재촉한다

정적의 기적소리 멀어지면
강아지 짖어대는 골목 담벼락에
처녀 총각 연담 홍시처럼 익어가고
가물 가물 등잔불 아래
어머니와 누이
다림질 손이 바쁘고
토닥토닥 다듬이 장단소리
긴 여운 남길 때
장수연 연기 자욱한 사랑방엔
촌로들 농사 걱정으로 밤이 샌다
까투리 알 품고
장끼 꾸룩꾸룩
고악을 넘는 3월이 오면
그립다 보고 싶다
내 고향아!
반룡산(盤龍山)구천각(九天閣)이 기암위에 우뚝 서고
성천강(城川江)이 만세교(萬歲橋)굽이쳐 서호만(西湖灣)에 흐르고
정능(貞陵) 귀주사(歸州寺) 치마대(馳馬臺)...

고추잠지 들어내고 물장구 치고
머루 다래 따먹으며
철딱선이 없이 뛰놀던 유년의 시절

무궁화 울타리 둘러 친 운동장의 작은 철봉대
나그네 실은 고향행 열차가
목 쉰 기적을 울리며 푹푹 힘들게 돌아가는 고갯마루에
등 굽은 늙은 소나무...

명태찌개
가자미 식혜
골마지 낀 묵은 김치
청국장 된장찌개
알토란같은 엄마의 음식 솜씨...

아!
이산의 한 어언 70성상
북두칠성 바라보고
밤마다 두레박에 고향을 푸는
실향의 설음
고향을 바라보는 망구(望九)의 나그네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하늘 바라본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도 실향민들의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