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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관련소식/증언-북한생활1

요덕 정치범 수용소 증언 정광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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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호크씨와 강철환, 정광일(왼쪽) 씨가 정치범 수용소 위성사진을 확인 하고 있다. RFA PHOTO/ 이진서

 

한국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 피해자 가족협회’를 이끌고 있는 청진 출신 탈북자 정광일 씨는 중국에서 무역하는 과정에 한국사람 만났다는 이유로 지난 1999년 보위 부에 체포됐으며, 이후 당국의 모진 고문에 못 이겨 한국의 간첩임을 자백한 뒤 2000년 4월부터 3년 동안 요덕수용소에 수감됐었다고 자유아시아 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정 씨는 수용소에서 하루 16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등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으며, 한국에 온지 12년이 됐지만 아직도 겨울에 눈이 오면 수용소에서 나무를 찍고, 찍어낸 나무를 끄는 악몽을 꾸는데 나무에 크게 다쳐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소리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정 씨는 북한이 수용소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와 유엔북한인권결의안을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자신을 비롯한 일단의 정치범수용소피해자협회 회원들은 유엔 인권위원회에 앞에서 북한측의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자 정광일 씨의 요덕 정치범 수용소 증언으로 함께합니다.

 

보위 부에 체포된 경위를 설명합니다.

 

: 제가 체포된 동기는 무역을 하면서 중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과 접촉했습니다. 사실, 외국에 나올 때 한국사람들하고 접촉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북한 법으로는 반역 행위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 사람들에게 너무 손해를 많이 봐서, 제가 어쩔 수 없이, 그래도 그 어떤 이득을 봐야만이 나라(북한)에 바치거든요. 바쳐야 되는데 그 저의 할당량을 바치지 못하니까? 저도 어쩔 수 없이 남한사람을 접촉을 했고, 그러다 어느 날 신고가 되어서 국가안전보위 부에 간첩혐의로 체포되어서 제가 10개월간 별의별 고문을 다 받았습니다. 북한당국도 어느 정도는 인정합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북한 사이트에 4월 10일자로 저를 쓰레기라고 까지 표현하면서 지금 국제사회에 나와서 이렇게 북한을 비난한다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사까지 나와 있더라고요.

 

고문 받은 이야기 입니다.

 

: 그래서 제가 10개월간 고문을 받으면서 정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보니까? 고문이라는 고문을 별별 고문을 다 받았는데 제일 힘들었던 고문이 비둘기 고문이었는데 앉지도 서지도 못한 상태에서 약 3일에서 4일씩 메달아 놓고 방치한 체 간수들이 나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앉아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데, 앉지도 서지도 못한 상태에서 완전 탈진하다 보니까? 제가 체포될 당시 체중이 75킬로 였는데, 10개월 지난 다음 제 체중이 36킬로가 됐습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제가 간첩이 맞는다고 거짓 자백을 했습니다. 거짓 자백을 하니까 바로 끌고 가더라고요. 끌려 간 곳이(그것도 재판을 받고 간 것도 아닙니다.) 끌고 가니까 끌려가서 보니까 그곳이 바로 요덕에 있는 제15호 정치범 수용소였습니다.

 

정치범 수용소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 수용소에 가 보니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는데 제가 있던 구역이 400에서 600백명 정도가 죽고 나거나 어디 끌려가거나 이런 사람들로 교체가 되면서 그 정도 유지가 됐는데요. 그 사람들 죄명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죄 입니다.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잡혀온 사람, 특히나 고난의 행군 시기 말을 잘 못했다 잡혀온 사람, 그 다음 북한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하는 심화조 사건에 연유돼서 잡혀온 사람, 심지어 부인이 자기 남편을 신고해서 잡혀온 사람이 다 있더라고요. 신문지에 있는 김정일의 초상화를 찢어 담배를 말아 피웠다고 해서 잡혀온 사람이 다 있었고요.

 

정치범 수용소의 수감자 생활은

 

: 수감자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고요. 하루에 16시간 강제 노역을 했습니다. 새벽 4시에 기상을 시켜서 여름에는 옥수수 농사를 위주로 했는데 저녁 8시까지 작업을 시키고 그 다음 저녁 8시에 끝나면 바로 재우는 것도 아닙니다. 9시부터 밤 11시까지 사상교육을 합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라는 것을 달달 외워야 되거든요.

 

수용소에서 주는 음식은

 

: 식사라고는 일명 콩 밥이라고 하는데 두부 콩과 옥수수를 섞어서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것을 한 재기씩 줍니다. 솔직히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까 먹고 나면 정말 배고팠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저처럼 오랫동안 고문을 받고 허약 병을 얻은 사람들이 그런 콩밥을 먹고 영양섭취가 제대로 안되 가지고 영양 실조로 대부분이 많은 죽었습니다.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 받은 증언입니다.

 

: 특히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을 때는 정말 그 모멸감이라는 것은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은요. 여름에는 옥수수 농사를 하는데 옥수수 씨앗을 나눠주는데 너무 배가 고프니까? 수감자들이 날것을 먹는다고 인분을 버물려서 나눠줬어요. 그런데 굶주린 수감자들은 너무 배가 고프니까? 인분 뭇은 옥수수도 도랑물에 씻어 먹습니다. 그걸 먹은 사람은 한 명도 살아난 사람이 없이 다 죽었습니다. 또한 옥수수가 어느 정도 자라면 인분믈을 풀어 주는데요. 한마디로 옥수수 빨리 자라게 영양제처럼 인분물 뿌려 주는데 큰 나무통으로 부어주다 보니까 고르지 못한 양을 준다고 하면서 보위 원들이 우리가 먹는 밥그릇으로 주라고 했습니다. 아침에는 플라스틱 그릇에다 밥을 받아 먹고, 밖에 들고 나가서 인분물을 퍼서 옥수수에 주고 점심에는 도랑물에 씻어 다시 그 그릇에 점심을 받아 먹었습니다. 아마 지구상에 그 어떤 짐승도 그렇게 변을 담았던 그릇에다가 먹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고요.

 

벌목하면서 죽어간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또 겨울 같은 경우에는 벌목을 했는데 벌목을 하면서 수많은 수감자들이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해발이 1500이 넘는 산에 올라가서 순수 도끼 하나 가자고 하루에 직경이 40이고 길이가 4미터 되는 나무를 7대씩 찍어야 돼요. 나무라는 게 도끼질을 하다 보면 한쪽 방향으로 찍어 넘기는데 바람만 불면 잘못해서 자기 쪽으로 넘어 올 때가 있게 되면 거기에 맞으면 팔 다리가 부러집니다. 수용소 특징이 뭐냐하면 일을 못하면 밥은 안 줍니다. 그래 부상당한 사람은 일을 못 하다 보니까 밥을 못 먹지요. 그러면 굶어 죽게 되지요.

 

벌목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증언합니다.

 

: 그리고 또한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은요. 굶주린 사람들한테 먹을 것이 제일 귀중하거든요. 나무를 그렇게 베어 논 다음 나무를 2킬로 되는 거리에 끌어 놓는데, 그 2킬로되는 곳에다가 옥수수 떡을 1킬로 정도 갔다 놓습니다. 그래 놓고 수감자들에게 경쟁을 시킵니다. 많이 나르는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고요. 그러다 보니까 수감자들이 그걸 먹겠다고 앞에 자기 동료가 있든 없든 자기 나무만 내려 보냅니다. 45도 이상 된 경사에서 나무가 내려오면 쏜살같이 내려옵니다. 거기에 맞으면 사람이 여지없이 허리가 뚝뚝 부러지고 머리가 날아가고요. 그런데 그렇게 죽은 사람을 겨울에 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땅이 보통 1.5미터 이상 업니다. 그러면 그 땅을 파려면 대 여섯 명이 달라 붙어 땅을 파야 하는데 그 동안 나무를 못 자른다고 해서 죽은 사람을 절대 묻지 못하게 합니다. 질질 끌어다가 창고가 있는데 창고에 넣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아직 목숨이 끊이지 않은 사람들 이거든요. 신음소리를 냅니다. 영하 30도 되는 그 겨울 밤에 거기서 얼어 죽고 있어요. 얼어 죽고 있는데 그 신음소리가 화장실 갈 때면 들립니다.

 

지금도 정 씨는 악몽에 시달린다고 이야기 합니다.

 

: 정말 지금도 저는요. 대한민국에 온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정확히 12년이 됐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겨울 같은 경우에 서울에 살면서 눈이 오게 되면 그때 그 악몽이 아직도 꿔 지거든요. 수용소에서 나무를 끄는구나! 막 끌다가 악몽에서 깨어나면, 아니로구나! 식은 땀이 흐르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정치범 수용소의 수감자들에게 주는 이야기 입니다.

: 제가 수용소에서 살다 나오면서 부러운 눈길로 저를 바라보던 수감자들 얼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 납니다. 그분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죽습니다. 그 누군가 당신들을 구하기 위해서 활동을 하고 있고, 이렇게 호소를 하고 있으니까 신심을 가지고 정치범 수용소가 해체되는 그날까지 살아 주시기를 그러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신심을 가지고 북한에 있는 모든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은 그 희망을 가지고 수용소가 해체되는 날까지 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 국민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 입니다.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떤 때는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도 북한인권법이 있고, 일본에도 북한인권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당사국인 대한민국이 북한인권법이 없습니다. 미 국민들이 북한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고 우리를 지지해 주는 걸 보면 감사하기 짝이 없지요. 저 사람들은 우리와 피부색도 틀리고 자라온 땅도 틀리고 환경도 틀리지만, 그래도 그 북한 사람들을 위해 지원해 주는 걸 보게 되면 참 고맙지요. 그런데 아직도 남한에서는 북한인권이라고 하면 정치라고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하루빨리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생각을 바꿔서 북한인권을 개선하는 데 많은 동참을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