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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관련소식/증언-북한생활1

[인사이드 엔케이] NAUH 대표 지성호 씨 '목발 짚고 죽기 살기로 넘어온 자유의 땅'

2012-06-25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의 실상을 파헤쳐보는 '인사이드 엔케이(Inside NK)'는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아프리카TV'로 생방송됩니다. 신동혁, 박성업 두 MC와 함께한 첫 번째 주인공은 북한 인권 단체 NAUH 를 이끌고 있는 지성호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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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두부를 못 얻어오신 어느날 밤

회령으로 가는 화물열차를 타고 석탄을 훔쳐서 가족의 생계를 돕던 16살 성호 씨.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 날은 어머니가 그를 위해 두부 한 모를 얻으러 나갔다가 그냥 돌아오신 날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열차에 오른 성호 씨,

“지금도 떠올리기는 싫어요. 새벽 두 시에 화물열차를 탔죠. 근데 빈혈이라고 하나요.. 달리는 열차에서 정신을 잃고 그만 떨어지고 만 거에요. “

열차는 그의 몸 위로 지나가고 … 절규 소리는 회령시 전체에 퍼지는데..

“전 그때 사람의 비명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는 줄 몰랐어요. 마을 넘어서 중국에까지 들리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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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석탄을 담느라 바쁘고 성호에게 달려와 지혈을 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철도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갔다. 마취제가 없어 부분 마취만 하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성호는 상처입은 손과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대야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시커먼 얼굴에 하얀 눈만 드러난 성호 씨는 의사한테 매달렸다.

“선생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저희 가족들이 굶어 죽어요.”

개보다 나은 자유의 삶을 찾아서

몸이 회복될 무렵 주변에서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지고 성호도 바깥 세상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듣게 된 성호 씨.

“한번은 자주 국경을 넘던 친구를 따라가 중국의 촌마을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개가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성호 씨도 탈북을 결심하게 되는데.. 멀쩡한 두 다리로 건너도 버거운 두만강의 물살을 목발을 짚고 건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거센 물살 속에서 중심을 잃을 때마다 남동생이 도와줘 힘겹게 두만강을 건넜다. 하지만 한국에 가기 위해선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야 했다. 라오스 국경을 넘을 당시,

“너무 힘들었어요. 건강한 몸도 아니고. 12시간을 목발 짚고. 대오에서 떨어지면 죽으니까.. 한번은 산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만약 목발이 깨졌으면 못 따라가고 죽었을 거에요.”

태국이 가까워지면서 드는 걱정(?)

라오스를 지나 태국, 즉 타이에 다다를 무렵 성호 씨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남조선 사람들은 자본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영양가’만 따지고 사람을 오로지 돈으로만 평가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북에서 들은 얘기가 맞다면 저 같은 장애인은 태국에서 쫓아내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태국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성호 씨. 통상 3개월 정도의 대기 시간이 지나면 한국을 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대사관 직원이 성호 씨를 따로 불렀다. 직원은 성호 씨에게 지금까지 고생이 많으셨다며 15일 후면 한국에 갈 거라고 얘기했다. 성호 씨가 묻자 대한민국은 장애인, 노약자를 우선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라고..

“그 때 뭐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왔구나”

그제서야 성호 씨는 북한에서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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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쳤던 기나긴 탈북 여정, 성호 씨가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정부에서 마련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 Inside NK 1편 보기

2012-06-25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의 실상을 파헤쳐보는 '인사이드 엔케이(Inside NK)'는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아프리카TV'로 생방송됩니다. 신동혁, 박성업 두 MC와 함께한 첫 번째 주인공은 북한 인권 단체 NAUH 를 이끌고 있는 지성호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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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두부를 못 얻어오신 어느날 밤

회령으로 가는 화물열차를 타고 석탄을 훔쳐서 가족의 생계를 돕던 16살 성호 씨.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 날은 어머니가 그를 위해 두부 한 모를 얻으러 나갔다가 그냥 돌아오신 날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열차에 오른 성호 씨,

“지금도 떠올리기는 싫어요. 새벽 두 시에 화물열차를 탔죠. 근데 빈혈이라고 하나요.. 달리는 열차에서 정신을 잃고 그만 떨어지고 만 거에요. “

열차는 그의 몸 위로 지나가고 … 절규 소리는 회령시 전체에 퍼지는데..

“전 그때 사람의 비명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는 줄 몰랐어요. 마을 넘어서 중국에까지 들리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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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석탄을 담느라 바쁘고 성호에게 달려와 지혈을 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철도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갔다. 마취제가 없어 부분 마취만 하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성호는 상처입은 손과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대야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시커먼 얼굴에 하얀 눈만 드러난 성호 씨는 의사한테 매달렸다.

“선생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저희 가족들이 굶어 죽어요.”

개보다 나은 자유의 삶을 찾아서

몸이 회복될 무렵 주변에서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지고 성호도 바깥 세상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듣게 된 성호 씨.

“한번은 자주 국경을 넘던 친구를 따라가 중국의 촌마을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개가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성호 씨도 탈북을 결심하게 되는데.. 멀쩡한 두 다리로 건너도 버거운 두만강의 물살을 목발을 짚고 건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거센 물살 속에서 중심을 잃을 때마다 남동생이 도와줘 힘겹게 두만강을 건넜다. 하지만 한국에 가기 위해선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야 했다. 라오스 국경을 넘을 당시,

“너무 힘들었어요. 건강한 몸도 아니고. 12시간을 목발 짚고. 대오에서 떨어지면 죽으니까.. 한번은 산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만약 목발이 깨졌으면 못 따라가고 죽었을 거에요.”

태국이 가까워지면서 드는 걱정(?)

라오스를 지나 태국, 즉 타이에 다다를 무렵 성호 씨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남조선 사람들은 자본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영양가’만 따지고 사람을 오로지 돈으로만 평가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북에서 들은 얘기가 맞다면 저 같은 장애인은 태국에서 쫓아내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태국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성호 씨. 통상 3개월 정도의 대기 시간이 지나면 한국을 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대사관 직원이 성호 씨를 따로 불렀다. 직원은 성호 씨에게 지금까지 고생이 많으셨다며 15일 후면 한국에 갈 거라고 얘기했다. 성호 씨가 묻자 대한민국은 장애인, 노약자를 우선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라고..

“그 때 뭐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왔구나”

그제서야 성호 씨는 북한에서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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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쳤던 기나긴 탈북 여정, 성호 씨가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정부에서 마련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 Inside NK 1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