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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 설 명절맞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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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설을 맞아 평양애서 사물놀이 공연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나 초상화에 참배하는 것은 양력설에도 하고 음력설에도 하고 있지요./‘예전에는 북에서도 설날에 떡국을 해 먹었지만, 지금은 떡국을 해 먹는 사람은 드물고, 심지어는 떡국을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설날은 새해의 첫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설, 원일 (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이라고도 하며, 조심하고 근신하는 날이라 하여 신일(愼日)이라고도 일컫는다고 했다.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한국의 명절 중의 하나로 음력 1월 1일이다. 설이라고도 한다. 설날에는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에 세배를 하는 것이 고유의 풍습이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동안을 정초라 하며, 이 기간 동안 행하여지는 여러 풍습이 전해진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후에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여러 민속놀이를 하며 이날을 즐겼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2016년 2월 8일 설날을 맞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의 설맞이 풍경과 관점을 한 번 볼까 합니다.

임채욱 선생: 양력설, 음력설 또는 신정, 구정 하지만 사실 음력설을 설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에서는 양력설은 그냥 신정이라고 말하고 음력설은 설이라 합니다. 북한에서는 양력이나 음력이나 다 설이라고도 하다가 최근에 와서 음력설을 설이라면서 크게 쇠려고 합니다.

그간 남북한이 다 양력설이다, 음력설이다 하면서 이중과세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고 그간 곡절도 많았지요?

임채욱 선생: 우리나라가 음력을 쓰던 것을 중단하고 양력으로 바꾼 것이 지금으로부터 딱 120년 전인 1896년 병신년부터이지요. 고종 32년이던 음력 11월 17일을 맞던 날 을미년이 아직 44일이나 남았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을미년이라고 알고 있던 국민들은 그날부터 을미년 다음 해인 병신년 첫날이고 조선조 개국 505년, 고종 33년이 되고 단기로는 4229년이며, 새로 정해진 연호 건양 1년을 맞은 것이지요. 지금까지 써오던 음력 대신에 양력으로 쓰기로 불과 1주일 전에 왕명으로 확정됐기 때문이지요. 그 왕명인 조칙은 이렇게 돼 있다고 합니다. “정삭을 개정하여 태양력을 사용하되 개국 504년 11월 17일로써 505년 1월 1일로 삼는다” 이렇게 대한의 백성은 천년 이상 써오던 음력대신에 양력으로 새날을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도 사용하게 된 것이죠. 정확히 말하면 요일 사용은 양력을 사용하기 8개월을 앞서 음력을 쓰면서도 썼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다른 질문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음력을 중국에서 받아다 썼습니까?

임채욱 선생: 아닌 것 같다는 같은 견해도 있습니다. 중국 삼국지에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기록이 있고 신라 문무왕 때는 중국에서 쓰는 역법을 익혀 와서 따로 달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단순히 중국의 역법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민속적인 달력이나 농사짓기 위한 자연날씨와 관계되는 달력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썼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신라에서 가배라는 명절을 만들었고 수릿날이라는 5월 초 닷새를 보면 독자적인 달력이 있었다고 주장하지요. 하지만 대체로 6세기 이전에 중국이 쓰는 음력이 들어오면서 음력을 주로 쓰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민족항일기, 일제강점기에는 음력설을 못 쇠었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이제 말했듯이 대한제국 시기에는 공식적으로 양력을 썼지만, 양력을 쓴다는 것은 기념일도 양력으로 바꿔 기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민간에선 여전히 음력으로 제사도 지내고 설도 음력설을 쇘지요. 그 뒤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자기들처럼 양력설을 쇠라고 강요했지요. 그 바람에 음력설은 민간에서 숨어서 지내는 설이 되었지요. 하지만 조상에 대한 제사나 세배풍습은 여전히 음력으로 하는 편이었는데 해방 후 북한이나 남한이나 이 연장선에서 양력과세를 강조했지요. 남한에서는 양력은 사흘씩 휴일이었으나 음력 설날에는 공휴일이 아니어서 관청이나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었지요. 그러다가 1988년부터 음력설을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거죠. 지금 한국에서는 80% 이상이 음력설을 쇠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당시 남북대화를 하면서 서로서로 닮아가는 모습이었는지 북한에서도 곧 양력보다 음력설 쇠기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죠.

북한에서 음력설을 크게 쇠게 되었다는데 그 경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도 1980년대 말까지는 양력설을 강조하고 음력설을 외면했지요. 1960년대는 음력설 쇠는 것을 억제도 했지요. 그러다가 1988년 한국에서 음력설을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허용했다는 것을 듣고 바로 이듬해 김정일은 말하지요. “이제부터는 우리 인민들이 전통적으로 쇠여 오던 음력설을 크게 쇠도록 하자고 합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 민족이 창조한 우수한 전통을 귀중히 여기고 보존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데서 표현됩니다.” 이게 1989년 1월 29일입니다.

그때부터는 음력설을 더 크게 쇠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김정일이 이렇게 일깨워 주었는데도 10여 년이 지나도록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했지요. 전통적인 설 모습을 가지지 못하고 단순히 휴무일처럼 됐다고 말하죠.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설을 풍요롭게 지낼 여건이 안 된 것이죠. 그러다가 김정일은 2003년 다시 지시하기를 양력설 대신에 음력설을 기본명절로 하라고 합니다. 이때 김정일은 설 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도 휴무일로 만들어 하루를 놀게 합니다. 이후부터 양력설은 간단히 쇠고 음력설을 3일간 쉬는 설명절로 크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제는 하나의 민족명절에서 국가명절로 됐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국가명절이라고 하는 날 주민들은 어떻게 즐깁니까?

임채욱 선생: 물론 남쪽처럼 설날 떡국과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같은데 아직 세배는 양력에 주로 하고 제사도 양력에 하고 있지요. 다만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나 초상화에 참배하는 것은 양력설에도 하고 음력설에도 하고 있지요. 참배 후에는 친척들, 친지들을 만나기도 하고 각종 놀이시설에 놀러도 가고 극장도 가고 시내에 나가서 민속놀이도 즐기고 있지요.

북한에선 음력설을 왜 억제했는가요?

임채욱 선생: 전통적인 것 중에서 많은 요소들을 봉건적지고 퇴폐적이라고 배격했지요. 음력설을 쇠는 것도 그러한 관점에서 없애야 할 요소로 본 것이죠. 그러나 1980년대 말 북한에서 조선민족제일주의가 등장하면서 우리 것을 찾으려는 흐름을 타고 음력설을 쇠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바뀌어 가는데, 이때 그동안 이를 억제했던 정책 주장자들이 사대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이라고 화살을 돌리면서 이렇게 변명합니다. 해방 후 설 명절을 쇠는 풍습은 그대로 계승되어 왔는데 6. 25 이후 사대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이 양력설을 중시하는 바람에 많은 인민들은 양력설을 쇠는 것이 민족의 전통적인 설맞이 풍습인 것처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북한에서는 뭐가 잘못되면 꼭 책임질 대상을 찾아 그쪽으로 잘못을 돌리지요.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을 하고도 김일성이 한 말이 그거 아닙니까? 일부 좌경맹동분자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말하지요.

한국에서는 설에도 새해라고 새해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맞는 일입니까?

임채욱 선생: 구정이란 개념이 남아 있고 그전에 설날을 새해로 봤기 때문에 설날에도 새해 인사를 하는데 새해 인사 자체야 나쁠 것 없지만 정확히 말하면 10 간 12지, 즉 간지로 따질 때 올해가 병신년이기 때문에 ‘병신년 새해 소원성취하세요’ 같은 식으로 하면 무방하죠. 아니고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면 이상한 거죠. 그래서 가급적 ‘병신년’을 넣어 인사해야 괜찮은 게 되죠. 틀린 게 아니라 적합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것도 개인차원이 아니라 매스컴들 특히 방송 쪽에서 탤런트들이 화려한 한복을 입고 새해 인사를 할 때, 새해가 지난 지가 얼만데, 또 저러나 싶지요. 정 인사를 하려면 지금 말한 것처럼 ‘병신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면 그래도 괜찮겠죠. 병신년을 생략하고 새해 복 타령을 한다고 볼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고약하죠. 참고로 말씀드리면, 북한에서는 음력설 날에는 새해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한민족의 설 전통음식인 떡국이 북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에서 김준호 기자의 보도입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김준호: 중국을 방문한 몇몇 북한 주민들 가운데 설 명절 때 ‘떡국을 먹는다’고 대답한 북한 주민들은 드물었습니다. 평양의 한 주민 소식통은 ‘예전에는 북에서도 설날에 떡국을 해 먹었지만 지금은 떡국을 해 먹는 사람은 드물고, 심지어는 떡국을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소식통도 ‘우리같이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떡국에 대해 알기는 하지만 신세대 가운데에는 떡국이라는 음식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북에는 워낙 쌀이 귀하기 때문에 쌀이 많이 들어가는 떡국을 해 먹는 풍습이 퇴색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그것 말고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떡국과 함께 북에서는 명절에 조상들에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