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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국호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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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3·1절 기념일인 1일 대전시 중구 은행동 으능정이거리에서 대전국학운동시민연합과 대전국학원 회원들이 태극기 플래시 몹(독립만세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3.1운동 때 군중들이 외친 함성이 조선독립만세였을까요, 대한독립만세였을까요 / 남북분단 71년째 되는 해입니다. 오랫동안 갈라져 있다 보니 남북의 차이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2015년 8월 북한언론이 남한을 이례적으로 ‘대한민국’으로 호칭했다고 남한언론들이 긴급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2015년 8월 22일 남북 고위급 접촉을 하기로 전격 합의에 대한 보도에서, 남한을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국호로 호칭해 남북 고위급 접촉에 임하는 예의를 표현한 적이 있어 눈길을 끈다는 보도였습니다.

그동안 북한 매체는 남한을 '남조선 괴뢰'라고 표현했으며. 북한 매체가 남한을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국호로 보도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올해 2016년 8월에는 브라질에서 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사상 처음으로 남아메리카에서 열리는 것으로 근대올림픽이 시작 된 지 120년 만에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리게 됩니다. 이 뜻있는 스포츠 축제에서 한국선수단과 응원단은 ‘대~한민국’을 외칠 것이고 북한 선수단은 ‘조선’을 소리 높여 외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대한이라는 이름과 조선이라는 이름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대한은 대한민국,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요.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시위에서 독립을 목매어 외치던 그 결실로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국호는 대한민국이 됐지요. 광복되자 38선 이남에서는 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건국되지요. 이에 38선 이북에서도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정권이 들어서지요. 이때 나라 이름이 너무 길다고 누가 말하니까 김일성은 이름이 길어도 관계가 없다면서 이 이름을 결정합니다.

대한민국은 약칭으로 대한 또는 한국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2002년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축구 경기 때부터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으로 많이 부르고 있지요. 북한은 이름이 너무 길어서 ‘조선’ 아니면 ‘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대한과 조선이 남북한에서 각각 정해지는 과정에 많은 논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좀 더 자세하게 훑어보면 어떨까요?

임채욱 선생: 한 가지 생각해보겠습니다. 3.1운동 때 군중들이 외친 함성이 조선독립만세였을까요, 대한독립만세였을까요? 또 35년간의 일제압제로부터 광복되던 날 소리 높여 외치던 만세도 대한독립만세였을까요, 조선독립만세였을까요? 아마도 조선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건 일본 제국주의 통치하에서 대한이란 말을 못 쓰게 하면서 조선이라고만 부르게 했기에 일반 민중들로서는 조선이 입에 익었던 것이지요. 일본은 왜 대한을 못 쓰게 했을까요? 그건 일본이 조선이란 나라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1897년에 이름을 바꾼 대한제국을 빼앗았기 때문에 합방되던 다음날부터 대한이란 이름은 일절 못쓰게 공포했지요. 그러나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세우던 애국지사들은 대한을 다시 찾자는 뜻에서 대한민국이라 한 것이죠. 광복 후 유엔의 결의로 선거가 가능했던 38선 이남 지역에서만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이 헌법을 만들면서 국호를 정하고 건국된 대한민국이지만 처음에는 국호로 조선이란 이름도 나오고, 고려도 나오고, 태한이란 이름도 나왔다는데 상해임시정부에서 온 분들 중에는 대한이 안 되면 할복 자결 하겠다는 사람까지 나오면서 대한으로 굳어져 갔지요. 한편, 북한에서도 조선이란 이름은 정해졌는데 국호를 정하는 과정에서 인민을 빼자는 사람, 민주주의를 빼자는 사람들이 나왔다지요. 그러나 김일성이 아직 통일이 안된 현실이나 공산혁명이 아직 안 된 사정을 고려하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해서 결정되었지요.

그럼 일본강점기, 다시 말해서 민족 항일기 시대에는 어느 것을 많이 썼을까요?

임채욱 선생: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탄하려고 할 무렵 안중근의사 같은 분은 언제나 ‘대한인’으로 활동했지요. 옥중에서 휘호를 쓸 때 항상 ‘대한인 안중근’ 이였고 일본 조사관이 ‘조선’이라고 질문하면 ‘대한’으로 대답했지요. 이즈음 유명한 역사학자 박은식 선생은 책을 지으면서 책 이름을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라고 해서 ‘한국’을 썼으며 신규식이란 독립운동가도 ‘한국혼’이란 책 이름으로 대한을 강조했지요. 또 육당 최남선 선생도 ‘대한의 소년’이라면서 대한을 늘 썼다고 합니다. 민족항일기 시대 대부분의 해외독립운동단체들도 대한민국임시정부처럼 대한이란 이름을 써서 대한광복단, 대한애국단, 대한독립군, 대한학생광복단, 대한인국민회, 대한군정서 등등처럼 썼지요. 그런데 1920년대가 되면 ‘조선’이란 이름을 쓰는 단체도 등장합니다. 특히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단체는 대개 ‘조선’을 쓰게 되는데 이것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대한을 쓰는 민족주의자들에 비해 젊었기 때문에 ‘대한’에 대해서 애착을 가질 수 없었던 것과도 연관되지요. 하지만 이때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진영이 통합하여 독립단체를 만들 때는 대한을 쓴 경우가 많지요. 대일공동전선을 펴기 위해서 1935년에 발족되는 민족혁명당은 그 이름에 처음에는 한국민족혁명당 이라 하다가 2년 뒤에는 조선혁명당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조작 탓입니다.

한국정부와 북한정권이 수립된 뒤에도 대한과 조선은 대립하고 충돌하고 있는데 그런 현상 몇 가지를 들어보신다면?

임채욱 선생: 네. 그런 사례들이야 많지요. 해방 후 남쪽에서는 민족항일기 때 은밀하게 불리던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하는 가사 중에서 마지막 구절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를 부를 때 좌익학생들이 대한사람을 조선사람으로 고쳐 부르기 때문에 이 구절을 부를 때가 되면 우익학생들은 더 큰 목소리로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고 외쳤다고 해요. 1964년 일본 동경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됩니다. 이에 앞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즉 IOC는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종용합니다. 이에 응해서 남북한 체육회담 대표는 스위스 로잔느에서 만나 협상을 하는데 단일팀 국가는 아리랑으로 하는데 합의하지만 국기문제라든가 단일팀 이름문제에는 합의를 보지 못합니다. 몇 달 뒤 다시 홍콩에서 회담이 또 열리는데 한국에서는 단일팀 이름을 남북한단일팀, 전한팀이라 주장하고 북한에서는 전조선유일팀, 남북단일팀이라 하자고 해서 대한과 조선이 대립하다가 합의를 못 봅니다. 이런 것은 몇십 년 전 일이지만 최근에 있었던 사례들을 봅시다. 한국 대통령이 ‘대한항공’이라고 표지가 선명한 비행기를 타고 평양에 가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생산해 냈는데도 그 뒤 평양에 취재하러 간 한국일보, 대한일보 기자들은 졸지에 H일보 기자들이 돼버렸지요. 북한측이 한국이나 대한은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지요. 또 금강산 관광을 간 한국외국어대학 교수는 졸지에 H대학교수가 되기도 했지요. 북한지역에 들어가서 KBS라고는 할 수 있는데 한국방송공사라고는 말 못하게도 했지요. 이 정도로만 하지요.

조심스럽게 이런 질문을 한번 해 볼까요? 통일 후 대한과 조선 혹은 또 다른 이름의 국호가 등장할 수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역사적 맥락으로 보면 대한이나 조선은 대결관계가 아니었지요. 하나의 이름 다음에 다른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죠. 고조선과 삼한도 대결관계는 아니었지요. 어느 것이든 그 의미 때문에 대립할 이유는 없지요. 단국조선의 조선은 좋은데 이성계의 조선은 명나라에 그 이름을 승인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있지만, 그것도 문제로 보면 문제지만 큰 문제는 아니지요. 다만 대한과 조선을 사용하는 계파라든가, 집단의 차이 때문에 달리 사용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 후 나라 이름에 대한이나 조선 어느 것도 괜찮을 수 있지요. 아니면 고려라는 제3의 이름도 찾을 수 있지요. 광복 후 동아일보에 있던 설의식이란 분은 우리 말 이름으로 ‘새한’을 제의했고 그 후에도 또 다른 이름을 제의한 사람도 많지요. 다만 이것만은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광복되기까지 조선이란 이름으로 애국을 한 좌파진영도 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가장 큰 독립운동 기구였고 그 이름을 이은 대한이란 이름이 정통성 면에서는 의미가 크다는 것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칼럼니스트 탈북자 출신 김현아 교수는 새해 신년칼럼에서 2016년은 남북주민들이 통일을 이루어 가는 길에서 한 단계 전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통일이 돼야 새로운 국호도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함께 들어보지죠.

김현아 교수: 사실 새해란 인간이 시간을 인위적으로 구분 지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사람들은 새해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새해는 희망입니다. 지난해와는 달리 어떤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 믿으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올해는 남북분단 71년째 되는 해입니다. 오랫동안 갈라져 있다 보니 남북의 차이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하늘과 땅처럼 커지고 있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생활풍습과 언어, 감정정서까지 달라지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이 웃으면서 즐겨보는 재담이나 경희극을 남한주민들이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반대로 남한주민들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콘서트는 북한주민들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강대국들 가운데 끼어 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로 인해 남북통일의 국제적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분단은 북한주민들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진데 대한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분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군사적 긴장상태를 고의적으로 조성해서 주민들에 대한 동원과 통제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주민들의 반미 반남한 정서를 계속 고취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이루는 힘은 지도부가 아닌 백성에게 있습니다. 북한지도부가 무척 싫어하는 동서독의 통일을 이룬 것은 동독 주민이었습니다. 동독주민들은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자기들의 정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통일여부를 결정하는 찬반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래서 동서독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통일 이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독일주민들은 자기들이 통일을 이룬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