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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 청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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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당대회를 잘 치르기 위해 정치사상 교육을 강화하려면 아무래도 청년 학생들을 앞세워 추진해야 될 것이기에 /북한은 전후 60년대부터 50여 년간 자력갱생의 노선을 고수해왔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경제는 파괴되었고 과학기술은 까마득히 뒤떨어졌습니다.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내는 신년사에서 경제 활력과 일자리 창출을 다짐하면서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공감하려 했습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신년사에서 올해는 특별히 청년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다른 해와 달리 올해에 청년들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요?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 청년들이 처한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제 생각으로는 올해가 이른바 ‘타도제국주의동맹’이란 공산주의 청년조직을 만든 지 90년이 된다는 것과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이 창립된 지 70년이 된다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년동맹은 1월 17일이 바로 창립 70주년을 맞는 날이지요.

‘타도제국주의동맹’이란 단체가 90년이 됐다면 1926년이 되는 해 인데요?

임채욱 선생: 맞습니다. 1926년 만주 땅 화전이란 곳에서 나이 열다섯 살 된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공산주의운동 조직이라고 하죠. ‘ㅌㄷ‘ 티긋과 디긋을 쓰고 ’트드‘라고 읽는다고 하는데 이게 ’타도제국제의‘를 감추려는 말이란 거죠. 글쎄 이 조직이 바탕이 돼서 오늘날 북한 노동당이 생겨났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이 조직이 김일성 혁명역사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지요.

열다섯 살 되는 청년, 아니 소년이 무슨 실력이 있어서 이런 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무슨 역할을 했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김일성 소년은 화성의숙이란 중학교 과정에 다니다가 그만뒀을 때라지요. 그만둔 것도 그 학교에서 가르치는 민족주의적 교육내용이 마음에 안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독학으로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읽었다는데 이때 마르크스가 지은 ‘자본론’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게 중국어로 자본론이 완전히 번역되는 게 1938년이고, 부분적으로 번역된 것도 1930년입니다. 어떻게 중국말로 번역도 안 된 것을 읽었다면 러시아어나 독일어로 된 것을 읽어야 되는데, 그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요? 그럼 일본어로 읽었을까요? 1926년이면 자본론이 일본어로는 번역됐다 하더라도 만주 땅에서 그걸 구할 수 있을까요? 일본어를 싫어했다는 김일성이 일본어로 읽을 실력이 됐을까요? 또 ‘타도제국주의동맹’도 김일성이 만든 게 아니라 김일성보다 7, 8세 위가 되는 청년 몇몇이서 1930년에 만든 것으로 김일성은 그저 이 단체에 가담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재일교포 학자인 허동찬 교수가 그의 책에서 낱낱이 밝히고 있지요. 생각해보세요. 당시 화성의숙 학생들 나이가 대체로 20세 이상이었는데 열다섯 살짜리 소년의 말을 듣고 단체에 가입했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은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임채욱 선생: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은 14세부터 30세에 이르는 청년, 학생, 군인, 직장인 등 모든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단체로 현재 맹원수는 약 5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지요. 이 단체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북한 노동당의 중요한 외곽단체인데, 해방되던 다음 해 그러니까 1946년 1월 17일 평양에서 창립된 ‘북조선 민주 청년동맹’에서 시작돼서 6.25전쟁 중인 1951년 ‘남조선 민청’과 통합해서 ‘조선민주청년동맹’이 됐고 1964년에는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이란 이름으로 됐다가 1996년 1월 지금의 이름,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으로 바뀌었죠. 이 단체에서는 ‘청년전위’라는 기관지를 발행하는데 이 신문은 김일성이 사망한 뒤 노동신문, 군 기관지인 ‘조선인민군’과 함께 몇 년간 공동사설을 함께 발표하기도 했지요.

그럼 북한에서 예년과 달리 새해 초부터 청년의 역할을 강조하는 의도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올해 5월 노동당 7차 당 대회가 예정돼 있잖습니까? 이 당 대회를 잘 치르기 위해 정치사상 교육을 강화하려면 아무래도 청년 학생들을 앞세워 추진해야 될 것이기에 청년들에게 앞장서서 큰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할 것 같습니다. 청년단체는 이런 문제에는 언제나 선봉적인 역할을 해왔지요. 지난해에 청년들이 백두산 영웅 청년발전소를 세운 것처럼 청년돌격정신으로 무장해서 올해에도 김정은 전위세력으로 활동하기를 바라는 뜻이라 봅니다. 더욱이 올해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반대하는 투쟁에서도 청년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앞장서 달라는 부탁도 포함돼 있겠지요.

자유아시아방송의 칼럼니스트 탈북자 출신 김현아 교수는 북한 새해 신년사에서 출연한 ‘자강력 제일주의’에 대해 분석 했습니다. 함께 들어보지죠.

김현아 교수: 북한의 새해 신년사에 자강력 제일주의란 단어가 출연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는 자기의 것에 대한 믿음과 애착, 자기의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강성국가건설대업과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이상을 반드시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으로 이룩하자"고 호소했습니다. 북한은 전후 60년대부터 50여 년 간 자력갱생의 노선을 고수해왔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경제는 파괴되었고 과학기술은 까마득히 뒤떨어졌습니다. 반대로 북한에서 미국의 신식민지이며 사대주의 외세의존 정책을 실시한다고 비난한 남한은 북한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발전했습니다. 뒤떨어진 나라의 발전은 남의 것에 대한 모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외국의 투자유치로부터 경제발전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노력과 자금이 비할 바 없이 적게 듭니다. 남한도 처음 산업개발을 추진할 때 북한처럼 자력갱생해보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해보다가 이 길이 아님을 알고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외자를 도입했고 수출주도형 경제를 건설했습니다. 그래서 10여년 만에 보릿고개를 넘었고, 오늘은 세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낡은 노래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새해에 핵실험으로 북한의 고립을 더욱 자초했습니다. 신년사의 자강력 제일주의는 주민들에게 이로부터 오는 고난을 감내하라는 북한지도부의 새해주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언급했다고 보겠네요?

임채욱 선생: 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올해에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확실하게 뿌리내려서 한국경제에 활력과 일자리를 만들어 가겠다고 표명했지요. 이 말은 일자리 부족과 불안 때문에 청년세대에서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한다는 세태를 밑바닥에 깐 언급이지요. 청년세대가 경제생활 불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면 이것은 인구감소로 이어지는데 심각한 문제가 되겠지요.

청년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해결돼야 하나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경제가 저성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경제저성장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산업화를 이뤄내고 민주화를 이뤄낸 바탕에서 자유통일화를 이뤄야 하는데 현재 난관에 봉착하고 있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혁신3개년 계획’이 잘 마무리 돼서 돌파구가 열린다면 청년들도 안심하고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게되는 국면으로 전환되겠지요. 그렇게되면 청년들은 통일 후 설령 북한청년들과 일자리를 다퉈야 하는 상황이 온다하더라도 통일을 미루려고 해서는 안 되겠지요. 이런 관점에서 이번 5월 북한 노동당 대회에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경제정책이나 방향이 제시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북한에도 지금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청년들의 외부정보에 대한 욕구가 올라가면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게 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