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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외래어 사용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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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도 이것들을 가급적이면 우리말로 번역해서 쓰려고 번역도 했지만, 워낙 새로 생기는 용어도 많다 보니 일일이 다 번역하기 힘들었는지 그만 원어 그대로 쓰는 것을 허용하게 된 것입니다 /  요즘 평양 젊은이들 속에서 영어학습 열의가 높다고 복수의 북한 주민들이 밝혔습니다.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외국어(外國語)는 모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말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외국어란 자국에서 채택한 공용어가 아닌 다른 언어, 혹은, 교육과정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지칭한다. 그러나 모국어의 개념이 중요해진 오늘날에서 외국어는 단순히 그런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고,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익힌 언어가 아닌 모든 언어를 가리키는 용어로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는 자국에서 채택한 공용어라도 모국어가 아니면, 외국어가 되는 것이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의 외래어 사용 현상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봅니다.

북한에서도 컴퓨터 등 공학분야나 자연과학분야에서는 외래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정권수립 이후부터 지켜왔던 외래어 사용 억제정책이 실패한 것인가요?

 

임채욱 선생: 실패했다고 보기보다는 북한 당국이 허용한 것이지요. 당국이라면 당연히 최고통치자죠. 현재 통치자가 아니라 바로 전 통치자이지요. 그래서 전자계산기는 컴퓨터, 문서전송기는 텔렉스, 자기원판은 하드디스크로 쓰고 있지요. 북한에서도 이것들을 가급적이면 우리말로 번역해서 쓰려고 번역도 했지만, 워낙 새로 생기는 용어도 많다 보니 일일이 다 번역하기 힘들었는지 그만 원어 그대로 쓰는 것을 허용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전산 장비나 정보 분야 용어는 번역하기가 대단히 어렵지요.

 

한 때 남북한에서 다 같이 외래어 사용을 억제하지 않았나요?

 

임채욱 선생: 외면적으로는 남북한에서 다 같이 외래어를 쓰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지요. 한데 북한에서는 공식기관의 공식적인 말로 규제를 한다면 한국에서는 개별 주장자나 관련 단체의 캠페인 형태로 진행될 뿐 당국차원의 규제가 없는 셈입니다. 남북한 어디서든 외래어를 추방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북한에 비해 한국은 무방비 상태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래어 아닌 외국어는 되도록 피해야 할 텐데 한국에서는 외국어도 남용되고 있지요.

 

한국에서 외래어가 남발하고 있는 모습을 설명한다면?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세계로 수출되는 한 자동차 광고를 보겠습니다. “머스큘러하고 텐션이 있는 보디라인을 살려 주는 퍼펙트한 써클 쉐입, 버닝하는 열정을 보여주면서 잔 근육 같은 디테일이 살아 숨 쉬는 템테이셔널, 클리어한 뷰를 보여주면서도 단단하고 탄력 있게 벌크엄....”  이쯤 하지요. 올해 2015년 초부터 서울 지하철 일부 객차 안에서 이런 광고가 보였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도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어 표현이지요. 광고문안도 잘만 짜면 시처럼 느낄 수 있는 글이 될 텐데 이를 포기하고 무슨 저속한 유행을 쫓듯이 잘 알려진 외래어도 아니고 외국어로 치장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뿐이 아니지요.

 

다른 사례도 좀 들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우리나라 사람은 천둥이 울릴 때 대체로 ‘우르르 쾅쾅’이라 말하지요? 그런데 프랑스에 유학했던 어떤 화가는 수필을 쓰면서 천둥소리를 ‘뚜뚜랑 땅땅’이라고 묘사했지요. 이건 프랑스 말이지요. 필요 이상으로 외국어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대학교수가 강의실에서 외국어를 쓰는 것이야 강의내용 전달상 필요할 수도 있지요. 가령 어떤 교수가 “가상적인 딜레마를 빼버리고 아주 프랙티컬하고 리얼한 세팅 속에서 문제를 다루는 연습을 한다”고 해 봅시다. 이 경우 교수는 그래도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학생을 대상으로 외국어를 썼지만,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 잡지, 방송 같은 매스컴에서 이런 식으로 외국어를 마구 사용한다면 그건 심각한 공해가 아닐까요.

 

이런 외래어, 외국어 사용에 대해 북한은 당연히 비난을 퍼붓겠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은 남조선을 ‘언어의 오물장’이라고 비난하지요. 북한 어문잡지에는 한국의 초등학생 일기라면서 소개를 하는데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가서 후룸라이드와 월드모노레일을 타고 다이내믹 시어터에서 풀레코스트를 보았다.”라는 것입니다. 이를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유희장에 가서 미끄럼대와 관성렬차를 타고 다이내믹이라는 극장에서 공연을 보았다”가 된다나요. 한국의 외래어, 외국어 사용을 두고 일찍이 김일성은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말에서 한자말과 일본말, 영어를 빼버리면 우리말은 ‘을’ ‘를’같은 토씨 만 남는 형편”이라고 말했지요.

 

그럼 북한에서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어떻게 다루는지 설명을 부탁합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한자말도 엄격한 의미에서 외래어이기 때문에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려고 해오고 있지요. 여기에서 한 번 한자 말투를 고친 사례를 봅시다. 추진하다→ 밀고나가다, 엄습하다→ 들이닥치다, 시내→시안, 봉착하다→부딪치다, 십여 일 사이에→열흘 남짓한 사이에, 톤급→톤짜리 그런데 김일성은 한자말을 토박이말로 고칠 때도 고칠수 없는 것이 있다면서 재미있는 예를 들었지요. 예를 들면 지하투쟁을 ‘땅속투쟁’, 펑양은 나의 심장을 ‘평양은 나의 염통’으로 고칠 수는 없다고 말했지요.  유럽 말 외래어도 물론 우리말로 바꾸려고 해 왔지만 선진국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외래어나 외국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외래어를 다 없앨 수는 없습니다. 외래어를 어느 정도 쓰는 것은 피할 수 없으며 얼마간은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최고당국자가 말했지요.

 

자유아시아방송 정영 기자는 지난 2월 북한당국이 반미대결전을 한다고 선동하는 와중에도 청소년들의 영어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고 보도했습니다.  평양 인민대학습당에 영어강좌를 개설하고 이 과정을 수료하면 번역사 자격증도 준다고 했습니다.

정영 기자: 요즘 평양 젊은이들 속에서 영어학습 열의가 높다고 복수의 북한 주민들이 밝혔습니다. 중국에 나온 한 북한 소식통은 “평양 대학생들과 웬만한 직장인들은 눅게(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인민대학습당 영어강좌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인민대학습당에서 실시하는 영어강좌는 국가가 운영하는 단기 영어교육 과정으로,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있는데 6개월 동안 수강료는 50달러에 달한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특히 요즘 북한 내부에 반미대결선동이 극에 달하고 있는 데도 영어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소식통은 “미국 달러에 대한 환상이 결국 사람들을 영어 교육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에 비해 외래어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왜 유지한다고 보는지요?

 

임채욱 선생: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선전, 선동이 매우 중요했지요. 북한에서도 혁명전술의 3대 요소라고 해서 조직, 투쟁, 선전·선동을 중시했죠. 그런데 선전, 선동을 하려면 선전원들이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했기에 외래어는 무조건 쉬운 우리말로 고치려고 한 것이지요. 외래어가 들어오면 제때에 우리말로 고치도록 방침을 세우고 우리말 다듬기 사업을 벌여나갔지요. 하지만 앞에서 봤듯이 북한에서 지금 뭔가 전체가 헝클어지고 있는지 전과 같이 엄격한 정책수행을 못 하는 것 같아요.

 

외래어 사용이나 외국어 사용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올바른 것일까요?

 

임채욱 선생: 흔히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고 글자는 말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죠. 이때 말과 글은 어떤 것이 내용이 되고 어떤 것이 형식이 되던 단순한 의사전달 수단만은 아니란 것입니다.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정신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기 마련이지요. 다시 말해서 아무리 세계화가 되더라도 한 나라의 민족주체성은 살아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뜻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한 소설가가 몇 년 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한 것은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지요. 일찍이 18세기 러시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때 러시아 지식인 중에는 육체는 러시아 사람이면서도 정신은 프랑스 사람이 되고자 했던 풍조가 있었지요. 결과적으로 슬라브주의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 자리에 허무주의만이 남았지요. 사람은 외부로부터 섭취하는 영양분과 인체에 분비하는 호르몬이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하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문화나 언어 건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인이기를 포기한 자리에 뭐가 남겠습니까? 지식인들이 어쭙잖게 겉멋이 들어 외래어 사용을 쓸데없이 하면서 우리말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외래어나 외국어 사용에 대한 한국의 올바른 인식은 남북한 문화통합과 통일문화 형성에 중요한 몫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한 언어학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통일사전 만들기 사업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고 보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