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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사람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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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김정일은 아버지 이름에서 날 일(日)을 써서 맞추더니, 김정숙은 1970년대에는 수정 정(貞)을 쓰더니 바를 ‘정’자로 바꾸었고 김정남 이름도 바를 정자를 넣어버려 결국 어머니와 아들, 할머니와 손자, 아버지와 아들 이름에 다 같이 바를 정(正)자가 들어간 이름이 되었군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대국은 온 세계의 이목을 모았지요? 이세돌 9단은 이번에 알파고에 4대 1로 졌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세돌이란 이름이 세계적인 바둑돌이란 뜻을 가졌다는 말도 있던데, 그렇다면 그 부모는 바둑 천재가 될 줄을 알았다는 것인지, 그렇게 되기를 염원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 주민들의 이름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보려고 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많은 사람들은 세돌이란 이름이 한자로 인간 세(世)자에 이름 돌(乭)자를 쓰는 이세돌(李世乭)이라고 알고 있지요. 인간 세는 세계라고 할 때 쓰는 세(世)자이고 돌은 돌 석 밑에 을, 갑(甲)을(乙) 병(丙) 정(丁) 할 때 을(乙)을 쓰는 글잡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의 생각이고 가족들 말로는 세돌이 그냥 우리말 이름이라는 군요. 많은 사람들 실망했겠네요. 그러나 그게 진실이라면 진실을 따라야죠. 세계적인 바둑돌이라 해석하고 싶기도 하고 센돌에서 온 이름이라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란 겁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사람이름을 지을 때 항렬(行列)을 따라 짓지 않습니까? 이세돌이란 이름이 우리말 이름이라면 항렬을 따른 것도 아니네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그 형님 되시는 분은 이상훈이니까 집안 항렬을 따른 것 같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반드시 항렬을 따르지만 그 항렬이 꼭 같은 글자가 아닌 경우는 있지요. 항렬은 목(木), 화(火), 금(金), 수(水), 토(土)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구성하는데 이 다섯 글자를 나타내는 글자는 여러 개 일수 있기에 형제간에도 다른 글자를 쓸 수는 있습니다.

이름에서 항렬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임채욱 선생: 항렬은 이름 자의 글자 한 자를 같이 함으로써 같은 성씨 간의 세대관계를 쉽게 알게 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이런 것이 유지되고 있는 편인데 북한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지요. 최근 북한 대중잡지 ‘천리마’ 같은 데서도 본관이나 성씨 관련 기사가 가끔은 보이지만 일반 주민들은 자기 본관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북한에서 이름을 지을 때 항렬을 따르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항렬은 항렬인데 조상이 미리 정해 준 항렬이 아니고 항렬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름을 짓고 있지요. 가령 김충성, 김충실, 김충효 같은 이름이 있다면 이것이 조상이 정해준 항렬일까요? 아닙니다. 또 김광조, 김광국, 김광품이란 형제가 있다면 ‘광’자가 항렬처럼 보이긴 한데 조국품이란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만든 것이지요. 앞의 김광조, 김광국까지는 그래도 발음이 되는데 김광품은 발음조차 잘 안 되는 이름이 돼버렸군요. 김조순, 김국순, 김통성, 김일순이란 네 아이는 부모가 조국통일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같은 글자는 아니지만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려는 시도가 많지요. 가령 김일, 김편, 김단, 김심이란 형제 이름은 일편단심을 나타내려고 지은 이름이고 여자이름으로 해선, 별선, 달선은 해와 별과 달을 나타내려고 하는 이름이지요.

북한에서 김정일, 김정숙, 김정남은 이름에서 바를 정(正)자가 들어가 있는데 이런 것도 항렬인가요?

임채욱 선생: 항렬은 아니지요. 김정일은 아버지 이름에서 날 일(日)을 써서 맞추더니, 김정숙은 1970년대에는 수정 정(貞)을 쓰더니 바를 ‘정’자로 바꾸었고 김정남 이름도 바를 정자를 넣어버려 결국 어머니와 아들, 할머니와 손자, 아버지와 아들 이름에 다 같이 바를 정(正)자가 들어간 이름이 되었군요. 아시다시피 김일성은 전주 김씨 태서공(台瑞公)파로 김성주, 김영주 하듯이 기둥 주(柱)자가 항렬이었죠. 1930년 6월 김성주에서 김일성으로 바꿨지만 동생은 그대로 김영주였죠. 한 연구가에 의하면 항일독립운동가 중 당시 김일성이란 이름은 이미 몇 사람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항렬을 따르지 않더라도 고유어로 지은 이름이 많은 것 같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김일성은 온갖 건조물의 이름도 짓고 산봉우리 이름이나 폭포, 샘 이름, 바위이름도 짓는 작명습관이 있는데 사람이름이야 어떻게 관여하겠어요? 하지만 북한 사람들의 이름들은 김일성이 말 한대로 짓고 있지요. 이름에 관한 한 김일성이 옳은 말을 했습니다. “지난날 우리 조상들은 사대주의 병에 걸려 사람의 이름도 한자말로 지었습니다. 앞으로 어린이들의 이름을 될수록 고유어로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말대로 북한에선 고유어로 이름을 짓자는 캠페인이 일어났는데 여기에서 ‘고유어’라는 것은 우리말을 뜻합니다. 한국에서는 우리말 이름을 한글이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한글로 쓰면 한자로 된 이름도 한글이름이기에 우리말 이름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어떻든 북한에서는 고유어로 짓자고 해서 김은별, 이송이 박분이, 유꽃순, 리노을 같은 이름도 생겨났는데 아름다운 이름들이지요. 남자이름 중에는 특이하게도 김주먹이란 이름이 있습니다.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은 소설낭독자였는데, 이 이름을 두고 부르기 좋고 뜻이 있는 이름이라면서 소개했지요. 김주먹이란 사람이 1955년 12월 31일 김일성 앞에서 매년 여는 설맞이 공연에서 7살 나이로 구연(口演)을 했는데 이때 그 이름의 유래가 알려졌다고 하지요. 남쪽 땅에 살던 그 어머니가 이른바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싸우다가 임신상태에서 형무소에 갇혀 있을 때 그 아버지가 곧 나을 아기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북으로 온 뒤 김일성이 그 사연을 알고 김주먹을 격려했고 그는 목소리 배우로서 성공한 사람이 됐다는 것입니다.

북한 이름의 특징을 정리하면?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무엇보다 여자이름에서 순자, 영자, 정자 같은 ‘자’자 이름이 없어진 것은 아주 긍정적이지요. 남한에는 당국의 강제성이 없으니 여전히 순자, 영자, 정자가 있는 것과 대비되지요. 그리고 북한에서 이름짓기 특징을 보면 첫째 충성과 효성이 든 이름이 많고 둘째가 은혜와 관계되는 이름인데 은덕, 은택, 은혜, 은정과 같은 이름이 있지요. 셋째가 계급적 성격과 혁명적 성격이 반영이 된 이름으로 혁신, 선봉, 한길, 일심 같은 것이 있지요. 넷째가 민족 정서가 반영된 씩씩한 표현이나 아름다운 표현들을 강조하고 있지요. 보람, 참, 굳셈, 힘찬, 억세, 세찬, 한길, 달림 같은 남자이름, 솔노을 샘내, 봄순, 솔단, 달순, 달이, 달미, 달메, 별, 별남, 은별, 별단 같은 여자이름들이 장려되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태식, 봉찬, 찬숙 난희 같이 한자말이 들어간다고 나쁜 이름이 되지요. 한마디로 말해서 북한식 이름은 형식 면에서는 이름이 하나의 단어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 많고 내용 면에서는 체제나 집단의식의 소산물처럼 어떤 뜻이 담긴 이름을 지으려고 하는 것으로 요약되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우리 말 이름은 많이 생겨났지요?

임채욱 선생: 네, 운동선수나 예술가들 중에서 예쁜 우리 말 이름을 많이 찾을 수 있어 반가울 때가 있더군요. 한국 야구선수 중에 정우람이나 한국 여자축구 선수 중 전가을이란 이름이 대표적이지요. 그 밖에도 찾아보면 많을 것 아니겠어요? 이슬기, 이슬아, 한누리, 나달빛, 우리봄, 소슬한, 강시내, 왕엄지 같은 이름도 성과 이름이 함께 해서 예쁜 이름이지요.

우리 말 이름이 아니더라도 특이한 이름이 많지요?

임채욱 선생: 임통일(任統一)이란 이름은 통일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겠지요. 김좌우태(金左右泰)라는 이름도 특이하죠. 권이삼(權二三)은 권씨 성에다가 두 이, 석 삼을 쓰고 있어 한자 획수가 아주 적은 이름이군요. 왕세출이란 이름도 있고 김곰치라는 소설가도 있는데 알고 보니 필명이더군요. 아 참 한자 획수가 작은 글자라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옛날에는 초상이 나면 반드시 호상(護喪)을 세우는데 적당하게 내세울 사람이 없는 서민들은 정대일(丁大一)이란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구색을 맞추려 했지요. 왜 정대일이냐 하면 곰배 정(丁), 큰 대(大), 한 일(一)이라고 쓰니 한자 획수가 아주 적은 글자가 되지요.

남북한에서 같은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현상도 있지요? 남쪽에서 이씨 성을 북쪽에서는 리씨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임채욱 선생: 네, 북한에서는 두음법칙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그래서인데 나중에 남북한 사람이 만났을 때 같은 연안 이씨인데도 북쪽 사람은 연안 리씨라고 말하고 남쪽 사람은 연안 이씨라고 말하겠지요. 그게 문제아니라 남쪽에선 북한사람 이름을 그들 발음대로 불러 주려고 최용해를 굳이 최룡해라고 발음하려고 애를 쓰는데 북한에선 남쪽 사람을 자기들 발음대로 리준섭이니, 류한상이니 하죠. 이건 본래 잘못된 것이지요. 1992년 국립국어원 국어심의회는 북한 인명지명 등 고유명사도 한국 어문교범에 따라 표기한다고 결정한 바 있어 두음법칙을 무시하면까지 룡해라고 쓸 필요가 없지요. 상호주의가 없어진 거죠. 이런 걸 지적하면 한국에서 친북학자들 중에는 일본이름이나 중국이름도 현지어에 따라 불러 주듯이 북한 사람 이름도 그들 발음대로 불러야 옳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통일을 방해하는 분단고착화 사고의 산물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김일성 출생일을 태양절로 불러주고 미전향장기수를 비전향장기수라고 불러야 옳다고 주장하지요.

끝으로 이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임채욱 선생: 이름이란 것은 사람 이름이건 땅이름이건 건물이름이건 본래 부름의 뜻으로 정해져서 나중에는 그 존재를 상징하는 의미로 되지요. 특히 사람이름은 인간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지요. 사람이름은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와도 같은 것이 돼서 이름이 운명을 가름한다고 믿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름 없는 사람이 없고 이름을 잘 지으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우리나라 사람은 옛날부터 이름이 자기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가문과 연결되는 것으로 인식해 왔지요. 그래서 성과 함께 항렬자를 쓰는데, 그러다 보니 이름의 발음은 무시하게 돼서 이조년(李兆年)이란 이름도 생겨나고 이잠지(이잠지)란 이름도 있게 되지요. 이들은 다 고려시대 문신이고 문인이였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런 조상과 관계되는 항렬은 없고 김조국이니 김조선이니 하던가 이은덕, 이은택으로 하니까 형제이름을 묶으면 조국통일이니 일심단결이니 하는 정치성 있는 이름으로 되는 모습을 보지요. 언젠가는 이런 모습들도 공통분모를 찾을 날이 오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