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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전쟁과 평화의 야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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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남한에 와서 역사를 배우고 참전용사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특히 사흘 만에 서울까지 밀고 들어왔잖아요.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은 일찍이 6.25 때부터 올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도 계속되고 있지요

6월을 보내면서 전쟁과 평화, 그리고 민족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의 전쟁관, 평화에 대한 남북한의 열망, 민족관의 변모들을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톨스토이가 말했다던가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 말입니다. ‘평화는 아들이 아버지의 무덤을 만들 때이며, 전쟁은 아버지가 아들의 무덤을 만들 때’라고. 실감나는 표현이지요? 아들이 아버지 무덤을 만들어도 슬픈 일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아버지가 아들의 무덤을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지요. 참으로 슬픈 이 일을 남북한 주민 누구인들 좋아할까요?

북한 통치자는 전쟁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베트남이 패망한 것은 1975년 4월 30일입니다. 그 얼마 뒤 북경을 방문한 김일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잃을 것은 휴전선이며 얻을 것은 통일이다” 이 말을 하면서 아주 의기양양했습니다. 언제든지 전쟁을 치를 수 있고 그 전쟁은 가치가 있는 전쟁으로 본 것입니다. 왜 가치가 있느냐? 본래 공산주의자들에겐 이 세상에 자본주의가 있는 한 평화는 없다고 봅니다. 자본주의를 없애려는 전쟁, 이걸 혁명전쟁이라고 하죠. 이 혁명전쟁은 언제나 신성하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런 관점은 유지된다고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격세유전이란 말 있지요? 하나의 유전인자는 바로 다음 세대에 나타나지 않더라고 세대를 거쳐 다시 나타난다는 것 말입니다. 김일성 사고나 행동패턴이 김정일 때보다 김정은 때 더 나타나는 것 같은 현상을 보는 듯한데,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섬세한 예술가 형이라면 그는 승부욕이 강한 군인형이라 보여 질 만큼 결기도 있어보이지요. 할아버지 성향을 많이 닮은 것 같아서 사고나 행동에서도 할아버지를 이으려는 성향이 엿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쟁에 대한 관점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겠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직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쟁관을 가졌을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물론 지금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라 할 나라는 몇 개 안 되죠.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을 의식하는 한 표면적으로야 주체사상을 내세운다 하지만 대남전략에선 공산주의 혁명전략대로 움직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요.

그럼 이번에는 평화에 대한 북한의 관점을 한 번 드려다 볼까요?

임채욱 선생: 선대 통치자 김일성의 말을 한 번 봅시다. 1991년 신년사를 하면서 김일성은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조국의 통일은 고사하고 민족의 존재마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평화는 나라와 통일의 민족의 안녕을 위하여 북과 남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긴급한 과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1991년으로 말하면 동유럽 공산 국가들이 몰락해가고 소련이 변모하던 시기이지요. 그래서인지 김일성은 전쟁보다 평화를 내세웁니다. “펑화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이념이며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더없이 귀중합니다.” 전쟁이 두려워서인지 전쟁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오래간만에 평화를 강조하지요.

그때 남북한 간에 평화무드가 조성됐나요?

임채욱 선생: 남북 당국 간에 총리가 내왕하는 회담이 있었고 대화분위기가 떴지만 북한은 여전히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을 씁니다. 이 시기에 동해안 쪽으로 무장간첩선이 침투하는 등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되지요.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은 일찍이 6.25 때부터 올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도 계속되고 있지요. 전쟁과 평화는 분명히 반대되는 개념이지요. 그런데 북한에선 평화 역시 ‘다른 수단으로 하는 전쟁의 계속’이라고 보고 있지요. 이건 레닌 이래 지녀온 공산주의자의 관점이기도 하지요. 전쟁은 무조건 가치가 없고 평화는 무조건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북한의 전쟁, 평화관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도 전혀 무가치한 것이 아니란 말과도 통할 것 같습니다.

6.25전쟁 66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침을 하고서도 지금까지도 북침이라고 주장합니다.

임채욱 선생: 지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미국 국가기록원(NARA)이 수집한 6. 25전쟁 관련 문서와 사진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비밀해제된 자료들도 많은데 이 문서들이 증언하고 있지요. 스탈린과 김일성의 남침 음모를 보여주는 자료들이지요. 무엇보다 북한은 6.25전쟁을 ‘정의의 전쟁’으로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외세를 몰아내는 민족해방전쟁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6.25는 ‘정의로운 일’이고 그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 된다는 것입니다. 6. 25전쟁이 이른바 ‘정의의 전쟁’인 한 동족을 침략했더라도 가치 없는 전쟁은 아니란 관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북한이 일으키는 모든 전쟁도 제국주의 침략에서 남조선을 해방시키는 일이기에 ‘정의의 전쟁’이 된다는 논법이지요. 앞에서 1975년 5월 김일성은 북경에 가서 ‘정의의 전쟁’을 한 번 더 치를 용의가 있다는 표명을 한 것이고 이런 관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주간프로그램 ‘청춘만세’ 지난 6월 23일 방송 ‘내가 알고 있는 6.25전쟁’ 시간에 탈북자 정광성 씨가 증언한 내용 함께 들어보시죠.

정광성 : 남한이 북한을 먼저 침략했다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알았고 배웠죠. 그런데 제가 13~14살 때 북한에서 이상한 소리가 돌았어요. 예전에 3.8선으로 갈라지고 나서 그 지역에서 소규모 무력충돌은 있었대요. 각자 정부가 들어서고, 김일성은 그 전부터 전쟁준비를 했다. 소련에서 무기를 받고 탱크를 받으면서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가 그때도 소규모 전투였는데 그걸 계기로 확 밀고 들어갔다. 그 얘기가 북한에서 돌았어요. 의아했죠. 제가 배우기로는 남쪽에서 미국과 손을 잡고 먼저 올라왔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당시에는 유언비어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았는데 남한에 와서 역사를 배우고 참전용사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특히 사흘 만에 서울까지 밀고 들어왔잖아요. 그러니까 그 전에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죠. 18살까지 북한에서 교육을 받다 다시 남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니까. 사회시간에 6.25전쟁에 대해 배우는데 사실 처음에는 울컥했어요. 선생님이 북한이 남한을 먼저 침략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으니까. 그때 6.25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찾아봤죠. 그러면서 제 인생과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 왔었고 충격을 먹었어요. 왜냐면 18살까지 북한에서 살면서 제가 거짓말을 배운 거잖아요. 북한 정권의 그런 교육이 분하고 억울한 거예요.

화전양면이란 점에서 북한은 지금도 ‘우리는 하나’라면서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민족의 징표인 핏줄, 언어, 문화에서 같은 민족이더라도 북한에서 우리민족이 ‘김일성민족’이라 하는데, 이를 받아 드릴 한국 국민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지난 2000년 6.15선언에서 ‘우리민족끼리 통일한다’라면서 ‘민족공조’를 내세웠는데 북한은 한국국민을 같은 민족으로 볼까요?  북한이 말하는 ‘우리민족’은 ‘탁월한 수령’에 대한 숭배와 존경을 보내는 ‘인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동의할 수 없는데도 민족공조가 가능할까요? 이것이 ‘우리민족끼리’란 말의 함정을 날카롭게 살펴야 할 이유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