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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수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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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데 실제로 북한 잡지에 보이는 수필들을 보면 이 말과는 다르게 어떤 사상을 주장하고 정론을 펼치려는 것들이 더 많지요.

한 해가 끝나가는 이때가 되면 누구나 벌려놓은 일의 마무리를 생각합니다. 흩어진 상념이나 사색도 마무리 하고 싶어집니다. 이 때 정리하는 글은 수필이 적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수필(隨筆) 또는 에세이(essay)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산문 문학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의 수필문학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생각해 보고저 합니다.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겨울바람이 불고 마음이 스산해지면 몸은 움츠려 듭니다만 마음은 더 다잡아서 뭔가를 마무리하려고 애쓰게 되지요. 수필은 이럴 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 방식입니다만 그렇다고 쉽게 써지는 것은 또 아니지요.

먼저 수필은 어떤 글이라고 보시는지 한 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그 참 어려운 질문이군요. 수필은 서양에선 에세이, 또는 에세 라고 합니다만 동양에서는 12세기 때 수필이란 말이 처음 나옵니다. 중국 남송 때 사람 홍매(洪邁 1123~1202)가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기록해 뒀다가 모은 것을 수필이라 부른다고 한 말이 수필이란 말의 연원이 됩니다. 글자로 볼 때 수필(隨筆)이란 말은 붓 가는 대로 쓴 글이지만, 실제로 그런 글이라기보다는 생각나는 대로 적어 둔 생각의 조각, 조각을 모은 글이라는데 엑센트가 있습니다. 글들을 모을 때 어떤 주제에 맞춰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상념의 조각조각을 적어 글을 만들 때 멋대로 적는다는 뜻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수필이라고 해서 아무 논리성 없이 쓴다거나 정서적 감흥도 없는 글을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아니지요. 흔히들 자기 신변의 일을 잡담 식으로 늘어놓으면 된다고 알지만 여기에도 정서가 있고 논리는 있어야 옳은 수필이 되지요.

그래서 수필은 문학의 한 분야로 되는데 한국에선 수필가가 몇 천 명이 될 정도로 많다고 압니다만 문학으로서의 수필은 수준이 높은 글이라야 되는 것 아닌가요?

임채욱 선생: 맞습니다. 수필도 갈래가 있어서 문학적인 향기를 가진 글도 있고 비판적인 성격의 글도 있는데 한국의 많은 수필가들이 지금 쓰는 것을 보면 문학적인 글을 쓰지요. 비판적 성격의 수필을 쓰는 사람은 좀 적은 것 같습니다. 어떻든 한국에서는 지금 수필가로 등단했다고 하는 사람만도 수 천 명이 아니라 수 만 명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전 국민의 수필가화가 되는 것 같지요.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수필가가 많아지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지요. 상대적으로 쓰기 힘든 소설에는 좀 덜 몰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북한에서 수필은 문학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주민들은 어떤 관점을 갖는지 궁금합니다.

임채욱 선생: 먼저 온갖 일에 다 관여해 온 김정일 선대통치자의 말을 좀 볼까요? 김정일은 이렇게 지적했다지요. “수필을 아담하게 잘 쓰면 소설이나 시보다 오히려 사람들을 더 울릴 수 있다. 작가라면 평생에 사람의 기억에 남는 좋은 수필을 적어도 몇 편씩은 내놓아야 한다. 수필은 산문으로 쓰여진 한 편의 정교하고 아담한 서정시 같은 것으로 되어야 한다” 우선 수필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지요. 수필이 서정시 같은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하니 말하자면 크리틱컬 에세이(Critical essay)보다 문예적인 수필, 문학적 향기가 나는 수필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한데 실제로 북한 잡지에 보이는 수필들을 보면 이 말과는 다르게 어떤 사상을 주장하고 정론을 펼치려는 것들이 더 많지요. 최근에 북한 한 잡지에 실린 수필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한 군인이 여동생으로부터 온 편지를 같이 훈련 받는 동기생들에게 읽습니다. “오빠, 우린 휴식 일을 이용해서 온 가족이 새로 문을 연 자연박물관과 중앙동물원을 찾았어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청소년 학생들과 근로자들에게 동식물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상식을 줄 수 있는 종합적인 자연박물관 건설을 직접 발기하시고 건설에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몸소 풀어주시어 착공의 첫 삽을 박은 지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훌륭히 완공하고 이번에 문을 열었어요” 이러한 내용을 다 읽은 뒤 중대 정치지도원은 그 자리에서 이런 말로 마무리를 합니다. “동무들 이 동무 동생의 편지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총을 잡고 초소에 섰는가를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겨주었소” 자 이 수필에는 서정성 보다는 사상성만 보인다고 하겠지요. 분명히 서정성도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사상성이나 정론성이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북한에는 수필가 단체 같은 것은 없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문학예술 분야를 포괄하는 단체가 조선문학예술 총 동맹 인데 이 밑에 부문별 동맹으로 작가동맹, 음악가동맹, 미술가동맹, 연극인동맹, 영화인동맹, 무용가동맹, 사진가동맹이 있지요. 수필가 동맹은 따로 없고 작가동맹 회원 중에서 수필을 쓰게 되지요. 그러니까 수필가라는 것은 따로 없습니다. 작가는 각 직장이나 지역에 있는 문학통신원을 통해 추천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작가로 됩니다. 작가라지만 신문이나 잡지에 수필을 싣는 것도 일정한 심사를 거칩니다. 수필이 짧은 산문형식으로 자기가 느낀 것이나 체험을 쓰는 것이라 해도 당의 문예정책 안에서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한국에서는 수필가 단체가 많아서 이런 단체에서 심사를 거치면 수필가로 등단하니까 국가기관이 관여할 부분이 아니지요.

임채욱 선생: 그래서 한국에서는 시인, 수필가가 몇 천 명, 몇 만 명이란 말이 나오지요. 시 한편, 소설 한 편 못써도 수필 몇 편으로 심사를 통과하면 수필작가가 되지요. 가능성을 보고 수필가로 등단시키고 있지요. 또 신변잡기 비슷한 글 몇 편 실은 책을 내도 수필가로 대접받기도 합니다. 박근혜대통령도 수필가라고 하지요. 책을 몇 권 냈는데 생활 이야기 보다는 주로 정신적인 수양과 관련 있는 글들을 많이 썼다고 하지요. 이를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깊은 통찰이 없어서 매일 쓰는 일기 수준밖에 안 된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한국에서는 대통령 수필을 두고도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 아닙니까? 심지어 요즘은 인터넷에 수필가 대통령을 옹호하기보다 ‘남이 써 준 글‘ 아니냐고 조롱조로 말하는 수필가도 있지요. 물론 옹호하는 수필가도 있다고 봐야지요. 글쓰기 자유 하나만은 확실하지요.

수필의 기능으로 볼 때 남북한 문제도 수필형식으로 접근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읽고 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임채욱 선생: 동감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시를 쓰는 것은 쌀로 술을 빚는 것이라면 수필을 쓰는 것은 쌀로 밥을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쌀로 술을 빚는 것이라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고 밥을 짓는 것이라면 물리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통일문화를 형성하는 데는 쌀로 술을 빚듯이 화학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야 좋을 듯 하겠지만 우선 쌀로 밥이라도 해서 함께 먹어야 합리적인 접근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봅니다. 수필에 정서적 상념만 있어도 안 되고 사상적인 사색만 있어도 안 되듯이 쌀로 밥도 해먹고 술도 빚어야 되겠지요.

한국에는 ‘수필의 날’이 있지요?

임채욱 선생: 네. 7월 15일이 ‘수필의 날’입니다. 조선시대 영조 왕 때 문필가 박지원 잘 알지요? 그가 청나라에 다녀와서 쓴 <열하일기>란 책도 알지요? 그 <열하일기>에 나오는 첫날이 7월 15일입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면서 이 날을 ‘수필의 날’ 로 정한 것입니다. 이런 뜻있는 날을 기해서 남북한 수필가들이 모임이라도 한 번 가지면 더 없이 좋겠군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