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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남북한 군가와 전쟁 가요 비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전쟁가요는 전선에서 군인들이 부르는 진중가요나 군가도 있지만 전쟁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도 다 전쟁가요라고 하겠습니다.

제70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두고 여당과 야당 간 행사축소 공방이 있었다고 한국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1956년 첫 국군의 날 기념식 이후 야간행사는 처음으로 군사 퍼레이드는 없고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있었는데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임채욱: 네. 그랬습니다. 국군의 날은 북한군의 침략을 낙동강에서 막아내고 38선을 돌파한 날을 기념합니다. 그런 뜻있는 날 기념식을 그저 가수들 노래로 꾸몄습니다. 국방 당국은 군인들의 시가행진이나 군사퍼레이드를 준비하는 장병들 고생이 커서 이들이 축하 받는 행사로 꾸미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답니다.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그럼 장병들 힘 드는데 군인들 군사훈련도 안 받게 하는 게 나을 것 아니겠냐고요.

38선을 돌파한 그때 나온 군가가 있지요? 그래서 오늘은 남북한 군가나 전쟁가요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임채욱: 아, 네. <전우야 잘 자라>를 말하는 군요. 유호작사 박시춘 작곡의 이 가요는 바로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할 그 즈음 나왔지요. 가장 많이 불린 군가이면서 전쟁가요가 아닐까 싶습니다 . 9월 15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고 서울을 탈환하고 38선을 넘어선 것이 10월 1일입니다. 이 때 이 노래가 남쪽 땅 온 곳에서 울려 퍼집니다.

(1절)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흘러가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2절)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이때쯤이면 북한에서도 전쟁군가가 나왔겠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전쟁군가를 전시가요라고 부릅니다. 가요를 시대별로 나눠서 이른바 민족항일기 것을 혁명가요, 6.25전쟁때 가요를 전시가요, 그 뒤 1960년대 후반기 당정책가요 하듯이 전시가요는 전쟁을 치는 군인과 후방주민의 생활과 감정을 반영한 대중적인 노래라고 봅니다. <진군 또 진군>(1950), <조국보위의 노래>(1950), <결전의 길로>, <전호속의 나의 노래> 같은 가요들이 있습니다. 이 중 <결전의 길로> 가사를 한번 볼 까요?

(1절) 가렬한 전투의 저기 저 언덕 피흘린 동지를 잊지 말아라

쓰러진 전우의 원한 씻으러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

만세 만세 만세 높이 부르며 원쑤의 화점을 짓부시며 앞으로

원쑤의 화점을 짓부시며 앞으로 나가자 동무여 결전의 길로

전쟁가요나 전시가요에는 전투에 나서는 군인들이 직접 부르는 군가도 있지만 후방국민이나 인민들이 전쟁을 뒷받침하고 사기를 북돋우려고 부르는 노래도 있잖습니까, 이번에는 그런 노래를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전쟁가요는 전선에서 군인들이 부르는 진중가요나 군가도 있지만 전쟁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도 다 전쟁가요라고 하겠습니다. 후방국민이 부른 한국 전쟁가요 중에는 <임계신 전선>(손로원작사, 박시춘작곡)이 있습니다.

(1절) 태극기 흔들며 님이 떠난 새벽정거장 기적이 울었소.

만세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던 밤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 님이여 성공하소서

북한에도 후방주민들이 군인들 사기를 돋우려고 한 가요가 있지요. <샘물터에서>(최로사 작사 윤승진 작곡) 가사를 볼까요?

(1절) 샘물터에 물을 길러 동이이고 나갔더니 빨래하던 군인동무 슬금슬금 돌아앉네

살그머니 바라보니 그 솜씨가 서투르지 부끄러워도 물었지요

제가 빨아 드릴가요 제가 빨아 드릴가요 제가 빨아 드릴가요

4절까지인 이 노래는 18살 처녀가 쓴 가사라고 하면서 선대통치자 김일성, 김정일이 다 언급할 정도로 전시가요 중 아주 잘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인민군 군인들과 후방주민들 속에 보이는 애국심과 군민일치 미풍을 보인 작품이란 것입니다.

또 소개할 가요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에는 <전선야곡>(유호작사 박시춘작곡)이 있고 북쪽에는 <전호속의 나의 노래>(심봉원작사 김옥성 작곡)가 있습니다. <전선야곡> 가사를 봅시다.

(1절)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

(2절)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속에 달려간 내고향 내집에는/

정한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 쓸어안고 싶었소

북쪽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가사를 봅니다.

(1절)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조국땅을 보위하며 총을 멘지 삼년석달

적탄 알이 빗발치는 격렬한 싸움에도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네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노라

(2절)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우리행복 삼키려는 원수 미제 쳐부수고

빛난 훈장 가슴팍에 내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 팔로써 안기리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 팔로써 안기리라

이 노래를 두고는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이 나래친다는 평가를 합니다. 그리고 남쪽이나 북쪽이나 다 공을 세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부모들 마음은 다 같습니다.

시간관계로 많은 전쟁가요, 전시가요를 훑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이 노래들이 불리던 그 때 분위기는 느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쟁가요나 전시가요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임채욱 선생: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좋은 전쟁군가 한 편은 대포소리에도 지지 않는 무기라고 합니다. 전쟁 시에는 그만큼 사기진작, 군인의 사기를 올리는 데 노래 한 곡도 중요합니다. 북한 김정일은 누구보다 이 점에서 노래를 더 중시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노래 소리가 높은 곳에 혁명이 있고 승리가 있다는 것은 하나의 진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노래의 철학입니다” 김정일 노래철학에 대해서는 김일성도 거듭니다. “김정일 동무가 조선혁명을 노래로부터 시작되었고 노래 속에서 전진하여 왔으며 노래와 함께 승리한 혁명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조선혁명처럼 노래와 밀착된 혁명, 노래로 엮어진 혁명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북한 전시가요 숫자는 한국 전쟁가요 숫자보다 훨씬 많고 오늘도 주민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전쟁과 음악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면도 있고 역사상 전쟁 속에서도 명곡은 많이 태어났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포성 속에서 태어난 명곡들이 많지요.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를 공격하고 있을 때 나폴레옹에 반감을 가진 체 피아노 협주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또 전쟁 중은 아니지만 전쟁이 끝난 뒤 그 전쟁을 모티브로 해서 나온 명곡도 있지요.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은 바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주제로 작곡된 것이지요. 걸작음악은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고 만들어 진다고 봐야지요. 평온한 때보다 절박한 상황에서 더 좋은 음악이 나올 수도 있지요. 남북한의 전쟁가요, 전시가요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태어난 명곡들이 많습니다. 다음 기회에 전쟁가요와 전시가요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