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문화산책

남북의 국가상징

 

00:00/00:00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국화는 대체로 관례에 따라 그 나라 국민이 좋아하는 꽃으로 정해지는 것이지만 법률로 정한 나라도 없지는 않습니다

지난 시간 남북의 국풍을 말 할 때 북한에서는 최근 국가상징 애호를 강조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남북의 국가상징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먼저 국가상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임채욱 선생: 국가상징은 한 나라를 상징하는 유형, 무형의 대상이지요. 국기, 국가, 국화, 국조, 국수 등을 국가상징이라고 하지요. 국기는 나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깃발이고 국가는 나라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리이고 국화는 나라꽃이라고 그 나라 국민들이 사랑하는 꽃이지요. 그밖에 나라 새인 국조, 나라 나무인 국수가 있는데 나라 짐승인 국수를 따로 정해 두는 나라도 있지요. 보기에 따라서는 나라의 휘장이라 할 국장, 나라의 도장이라 할 수 있는 국새도 국가상징이긴 합니다만 대체로는 이를 제외합니다. 국가상징 중에는 국기와 국가를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요.

74년 전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았을 때 우리는 만세를 부르면서 깃발을 흔들었습니다. 그 깃발은 바로 태극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가상징은 이미 그때 있었던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 태극기는 1882년 8월부터 우리나라 국기로 사용돼 오니까 137년째가 되는군요. 물론 일제강점기 35년간은 태극기가 장롱이나 서랍 속에 숨겨져 있었지요. 광복되던 날 미쳐 태극기가 준비 안된 사람들은 일본국기 일장기에다가 태극기를 그리기도 했다고 하지요. 원산에서 문학활동을 하다가 월남한 소설가 이호철씨는 광복되던 그날 원산역에서 서른 살 남짓해 보이는 어떤 장년 한 사람이 태극기를 와락 펼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던 장면을 못 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지방에서도 태극기는 우리의 국기였다는 것이지요? 언제 다른 깃발을 만들게 됩니까?

임채욱 선생: 원산에서 뿐 아니라 그 날 오후 평양에서도 서문통에서 청년 셋이 신창리로 넘어오면서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자 군중들이 뒤따르면서 화신상회 앞에 와서는 수천 명으로 불어나서 만세를 불렀다고 합니다. 태극기는 북한정권이 세워지던 1948년 9월 이전까지는 북한에서도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948년 5월 메이데이 기념행사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북한이 태극기를 버리고 자기들 깃발을 만들려고 한 것은 1947년 11월입니다. 이 때 헌법제정위원회를 만드는데 이 위원회 안에 미술가들을 배치하면서 새 국기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듬해 2월 초순쯤 인공기 흰 동그라미 부분에 김일성 뜻대로 오각별을 넣으면서 완성을 하는데, 4월 말 이게 확정되고 9월 8일 북한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됐습니다.

나라의 음성이라 할 국가는 남북이 다 <애국가>라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안익태작곡 <애국가>이고 북한에서는 박세영작사 김원균 작곡의 <애국가>를 국가로 정하고 헌법에도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는 작사자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안창호 작사설과 윤치호 작사설이 대치하고 있지요. 북한처럼 계획적으로 제정한 것이 아니라서 그렇지요. 대한제국 시기 등장한 여러 가사들이 다 애국가처럼 불려 졌습니다. 1895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던 때 불렀다는 독립가, 이듬해 고종생일 때 불려 졌다는 애국가, 1902년에 나온 대한제국 애국가, 1903년에 나온 애국충성가 등이 있고 그밖에도 보국가, 대한혼, 국기가, 한반도가 등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현재의 애국가 가사에 안익태가 곡을 붙인 것은 1936년 미국에서입니다. 이 곡을 들고 바로 그해 올림픽이 열리는 베를린으로 가서 우리나라 출신 선수들에게 불러주면서 격려를 했다고 합니다. 열렬한 애국심이지요.

그런데 <애국가>의 작사자를 모른다는 것은 국가로서는 자격이 미달되는 부분이 아닐까요?

임채욱 선생: 다른 나라 국가의 가사를 보면 대체로 군주를 찬양하는 것, 자연풍토를 찬미하는 것, 역사의식을 강조하는 것, 외국침략에 항쟁하는 열정을 고취하는 내용이 많지요. 그런데 의외로 작사자나 작곡자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가 그 나라 그 민족의 역사 속에서 형성돼 온 정서와 소망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애국가> 작사자 문제도 애국가가 지닌 역사적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애국가>는 지금의 가사에 스코트랜드 민요곡 ‘올드랭사인’곡으로 불리다가 안익태곡으로 바뀌어서 태극기와 함께 일제에 항거하는 의미를 지녔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일제때 독립투사들과 애국지사들은 입과 입으로 은밀하게 전파시키면서 애국충정을 불태웠고 민족의 애환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광복 후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그들을 태운 비행기가 조국 땅에 이르자 모두들 울먹이면서 이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북한의 애국가 제정은 언제였고 어떤 과정을 거쳤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 애국가는 북한 깃발보다도 먼저 만들어 졌습니다. 광복되던 날 평양사람들도 태극기를 흔들었듯이 애국가를 아는 사람은 애국가도 불렀습니다. 대개는 가사나 곡도 정확하게는 부르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1946년 9월말 김일성이 작가들 앞에서 애국가 가사내용이 보수적이어서 인민의 감정에 맞지 않고 곡도 남의 나라 것을 따다 만든 것인데 그 곡 자체가 시원치 않다면서 애국가를 새로 지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북한 애국가 제정작업이 시작되는데 여러 개 가사가 나오고 곡들도 나옵니다.김일성이 하나하나 검토를 직접해서 최종적으로 한편을 채택합니다.

나라의 꽃이라는 국화는 정식 국가상징은 아니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국화는 대체로 관례에 따라 그 나라 국민이 좋아하는 꽃으로 정해지는 것이지만 법률로 정한 나라도 없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근역(槿域), 즉 무궁화의 땅으로 알려진 대로 오래전부터 무궁화를 국화처럼 알아왔지요. 지금도 무궁화가 아름답지 못하다니 하면서 별로 반갑게 대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그저 우리나라 국화라고 알고 있지요. 무궁화의 심미성보다 역사성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통치자 한 사람의 심미성에 따라 국화가 정해집니다. 1964년 5월 황해도 정방산을 찾은 김일성이 함박꽃을 보고는 어릴 때 이 부근에 와서 본 어떤 꽃과 비슷하다고 말한 뒤 그 꽃을 찾으려는 소동 끝에 찾아낸 것이 바로 지금 북한에서 국화로 여기는 목란입니다. 목란은 흰색의 산목련인데 김일성이 말하길 아름다운 꽃에 란(蘭)자를 붙였듯이 이 꽃을 나무에 피는 란이란 뜻으로 목란이라 부르자고 합니다. 그래서 목란이란 이름을 얻은 흰색 산목련은 1991년 4월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북한의 국화로 지정됩니다. 북한학자들은 연구 끝에 지금은 이 산목련이 평안도 구석기 유적에서도 그 포자가 나오니 100만년 전부터 이 땅에 피던 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울릉도를 빼고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핀다고 강조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