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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따마다” 운동과 주은래의 역사인식-시인 이문형(워싱턴문인회)

겸따마다운동과 주은래의 역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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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이문형(워싱턴문인회)

재중 80만명의 대표기구 재중한국인회(회장 김희철)가 지난 4일 대련(大連)에서 중국
인의 반
,혐한(
, 嫌韓) 감정의 해법을 찾기 위한 대책회의를 열어 겸따마다운동을
중국 전역에서 펼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


소위
겸손하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자는 겸따마다 운동으로 황하의 물길도 바꿀 수 있다는 겸손운동이자 미소작전이다.


우리 한인들의 겸손과 미소 앞에서 그들의 반 한국
, 반 혐오의 감정이 봄바람에 눈 녹듯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의 감정적인 눈길, 혐오스러운 눈길을 마주하며 살아갈 재중 한국인들의 고통이 실감된다.

 

즈음하여 중국동북공정의 여파로 인한 한국내 반중(反中)감정과 베이징올림픽에서 드러난 중국의 노골적인 혐한(嫌韓)정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의 역사를 점검하고 역사인식의 간극을 좁힐 대안으로 학술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동북아역사재단과 베이징대학이
4일과 5일 양일 간 동북아 관계사의 성격을 주제로 열리는 국제 학술대회에서 논의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기대와 우려를 반반씩 가지고 있는 필자로서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 귀추에 주목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역사 인식이 우리 민족의 뿌리제거를 위한 공정에 맞추어져 있는데 비해 우리의 역사인식은 혼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미로를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  


기존의 역사
(고대사)의 틀 속에 갇힌 제도권 사학계가 우리 민족의 기원 및 민족사, 생활사에 편견을 가지고

고고학적, 역사학적, 인류학적 근거들을 못들은 척, 못본척 왜곡된 기존의 역사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사학계의 실상이 아닌가?  


중국은 국가 전략인 중국의
3(라오닝, 지린, 헤이롱장성)에서 일어난 모든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드는 동

북공정(부여, 고구려, 발해 등은 중국의 변방국가) 을 끝낸데 이어 최근에는 홍산문화와 요하문명론  새롭

게 제기하고 있다. 즉 요하일대는 중화민족의 발원지이므로 여기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중국 56개 소수민

족의 역사는 원래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이었다는 통일된 다민족적 국가론을 이루기 위한 작업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눈 앞의 상황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 보다는 왜곡된 우리 민족의 역사

를 바로잡아 복원하는 일일것이다 우리 역사 바로 알고 바로 세우기를 위해 혼신의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곧 이 시대의 의식인들이 짊어져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정부 또한
<고대사 정립위원회> 같은 기구를 두거나 기존의 <동북아재단> 등의 인적구성을 새롭게 하고 고고

학적, 유물학적, 인류학적 탐사 및 검증으로 한민족의 고대사를 정립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요하문명론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기존의 황하유역과 장강(양자강)유역뿐 아니라 요하 일대에 기

원한 모든 민족을 황제(헌원)의 후손으로 만들려는 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 하시는 분이라면

모 전 국회의원이 입수하여 2004 8월에 공개 한 19636 28일 주은래(周恩來) 총리가 조선과학원 대표

단을 접견하면서 중국과조선의 관계를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1시기>는 역사기록 이래로 발굴된 문물에 의해 증명된다. 두 나라,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

로 중지될 때까지 3,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 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

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

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오랫동안 살아왔다
.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 유역에는 모두 조선

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 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

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 문헌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 있다
. 경백호 부근은 발해(발해)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또한 발해의 수도였고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

는 것이며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민족의 역사발전을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증거를 찾는 것이다
. 이것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 모욕하면서 당신들을 침탈할 때가 많았다. 중국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이

러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햇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 위에 조선족은 기자자

(箕子子孫)”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씨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 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요하유역을 정벌했는데, 이것은 분명한 침략이다.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그 때 여러분 나라의 훌륭한 장군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 이때 바로 발해가 일어났다. 이후 동북에는 바로 요족(요족), 금족(금족)이 발흥했다. 그때 중국이 맞딱드린 문제는 요족과 금족의 중국본토 침입문제였다.


다음은 몽고족이 문제 였는데
, 원나라도 역시 당신들을 침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명나라는 조선과 직접 합동작전을 전개했으나 만주족이 매우 빨리 흥기하여 장백산(백두산) 동쪽에서 요하유역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점령했다.


이러한 한족
(漢族) 또한 일부가 동북지역으로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 만주족 통치자는 당신들을 계속 동쪽으로 밀어냈고 결국 압록강, 도문강, 동쪽까지 밀리게 되었다. 만주족은 중국에 공헌란 바가 있는데 바로 중국 땅을 크게 넓힌 것이다. 그들이 왕성한 시기에는 지금의 중국땅보다 더 컸었다.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이렇게 큰 적이 없엇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해야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고학자들이 문물과 비석 같은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적과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 2,3천년에 걸친 관계를 제 위치에 올려 놓는 것이다…… 이하 생략]

 

아쉽게도 전문을 다 소개할 수는 없으나,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그의 역사관을 보았고, 우리 입이 아닌 그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민족의 발원지를 가늠할 수도 있었다.

앞으로는 전혀 가능치 않은 중국인의 양심선언과 같은 것이어서 더욱 돋보인다.   

 

역사는 엄격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밝혀 정립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중국의 역사 왜곡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

이 순수한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적인 필요나 영토야욕에 근거한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 역사연구에서는 선하기만 한 가치의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