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09-01-16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화로 세상을 만나다>시간입니다. 오늘은 탈북자의 인권을 개선하고 탈북자의 강제 북송을 반대하는 운동을 해오는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 유천종 대표를 만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질문: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는 언제 어떤 동기로 발족시키게 됐습니까?
답변: 제가 1999년도에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중국으로 탈북자들이 많이 넘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어떻게 하면 탈북자들에게 선교활동을 해볼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중국의 심양과 단동을 방문했는데 막상 탈북자들이 사는 현장을 보니 선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탈북자의 비참한 생활과 강제 북송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미국에 살고 있으니까 국무부, 미국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제 비정부기구와 유엔 등에 탈북자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를 발족시키게 됐습니다.
질문: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는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답변: 탈북자 강제 북송을 반대하는 목적으로 워싱턴 DC에 있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14차례 시위를 했고 중국 정부에 40 여 통의 성명서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 3년 동안은 미국 연방 하원의원 회관에서 북한 민주화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 포럼에서는 미국의 국회의원과 보좌관, 국무부 관계자, 비정부 단체와 언론사 관계자, 국제 관계단체 관계자 등을 초대해 북한과 탈북자들의 실상을 소개하고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토론의 광장을 마련했으며 그 결과를 미국 정부나 국제사회에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또한, 저희 단체는 1999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서 탈북자 1,100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했으며 이러한 탈북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기자회견을 통해 알림으로써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상황에 관심을 두도록 하는 데 이바지 했다고 봅니다.
질문: 중국에서 실태를 파악하시면서 탈북자들은 어떤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까?
답변: 중국에서 탈북자들은 강제 북송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제가 만난 탈북자 중 여러 사람이 극약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저에게 직접 극약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왜 극약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만약에 중국에서 잡혀서 북한으로 돌아 가기보다는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 탈북자는 숨어 살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 여성은 중국인이나 조선족과 살다가 어린아이를 낳고 강제로 북송된 경우 그 어린아이는 고아로 생활하는 비참한 상황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올해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답변: 저희 단체는 작년에 태국의 탈북자 수용 시설의 열악한 환경을 조사해 한국과 미국, 태국 정부에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졌는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2008년 11월부터 열악한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1월 이전만 해도 40평 되는 곳에 300명 이상이 수용되어 있던 것이 최근에 100명으로 수용자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4개월에서 6개월을 대기하던 기간도 줄어 한 달 미만에도 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되지 않도록 많은 관심이 있어서 국제 비정부기구들과 함께 원칙적인 강제 북송을 막는 데 목표를 두고 활동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 가지 말씀 고맙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전화로 세상을 만나다> 오늘 이 시간에는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 유천종 대표를 만나 봤습니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09-01-16
질문: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는 언제 어떤 동기로 발족시키게 됐습니까?
답변: 제가 1999년도에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중국으로 탈북자들이 많이 넘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어떻게 하면 탈북자들에게 선교활동을 해볼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중국의 심양과 단동을 방문했는데 막상 탈북자들이 사는 현장을 보니 선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탈북자의 비참한 생활과 강제 북송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미국에 살고 있으니까 국무부, 미국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제 비정부기구와 유엔 등에 탈북자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를 발족시키게 됐습니다.
질문: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는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답변: 탈북자 강제 북송을 반대하는 목적으로 워싱턴 DC에 있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14차례 시위를 했고 중국 정부에 40 여 통의 성명서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 3년 동안은 미국 연방 하원의원 회관에서 북한 민주화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 포럼에서는 미국의 국회의원과 보좌관, 국무부 관계자, 비정부 단체와 언론사 관계자, 국제 관계단체 관계자 등을 초대해 북한과 탈북자들의 실상을 소개하고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토론의 광장을 마련했으며 그 결과를 미국 정부나 국제사회에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또한, 저희 단체는 1999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서 탈북자 1,100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했으며 이러한 탈북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기자회견을 통해 알림으로써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상황에 관심을 두도록 하는 데 이바지 했다고 봅니다.
질문: 중국에서 실태를 파악하시면서 탈북자들은 어떤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까?
답변: 중국에서 탈북자들은 강제 북송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제가 만난 탈북자 중 여러 사람이 극약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저에게 직접 극약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왜 극약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만약에 중국에서 잡혀서 북한으로 돌아 가기보다는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 탈북자는 숨어 살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 여성은 중국인이나 조선족과 살다가 어린아이를 낳고 강제로 북송된 경우 그 어린아이는 고아로 생활하는 비참한 상황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질문: 올해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답변: 저희 단체는 작년에 태국의 탈북자 수용 시설의 열악한 환경을 조사해 한국과 미국, 태국 정부에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졌는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2008년 11월부터 열악한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1월 이전만 해도 40평 되는 곳에 300명 이상이 수용되어 있던 것이 최근에 100명으로 수용자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4개월에서 6개월을 대기하던 기간도 줄어 한 달 미만에도 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되지 않도록 많은 관심이 있어서 국제 비정부기구들과 함께 원칙적인 강제 북송을 막는 데 목표를 두고 활동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 가지 말씀 고맙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전화로 세상을 만나다> 오늘 이 시간에는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 유천종 대표를 만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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