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아시아방송 서울통신의 이수경입니다. 오는 26일 월요일은 설 명절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 북한정권 창건일과 조선노동당 창건일 등 4개 명절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남한에서는 설 명절이 추석과 함께 가장 중요한 명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연휴도 가장 긴데요, 올해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이어 설 명절인 26일과 27일까지 나흘을 쉰답니다. 남한에서는 설 명절이 오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민속 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설을 앞두고 명절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뭐니뭐니 해도 부침개 냄새가 솔솔 풍기고 흥정 소리가 정겨운 재래시장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탈북자 김영순 씨와 함께 설 명절에 필요한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서 서울의 어느 재래시장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서울 방화동의 재래시장입니다.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있어서 인지 제수 용품을 마련하기 위해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이곳에 오니까 활기가 느껴집니다.) 사람이 많습니다.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사고 싸고 깍을 수 있어서 좋아요.”
방앗간에서도 가래떡 뽑기가 한창입니다. 김이 솔솔 나는 뜨거운 가래떡 냄새가 손님들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북한에서는 설날에 떡국을 안먹어요. 송편, 오곡밥, 국수, 만두국 그런 종류를 먹었습니다. (북한에 식량난이 온 다음부터 명절 음식을 장만하기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달걀 한 알, 명태 한 마리라도 놓고 제사상을 차려서 한 끼는 최선을 다해서 먹습니다.”
요즘 남한에서는 서민 경제가 꽁꽁 얼어붙어서 주머니 사정이 예전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상에게 드릴 차례상에 올라갈 고기와 생선, 나물과 과일, 한과 등을 꼼꼼히 살펴보는 손님들의 마음은 어느새 푸근해 집니다.
산에서 직접 주운 은행이라며 떨이로 모두 사가라는 어느 할머니의 고집까지 정겹기만 합니다.
“(은행은 얼마에요?) 산에서 내가 주웠어. 떨어서 사가면 싸게 줄께. 5천 원만 주시오. (할머니 새해 소망은요?) 그저 건강하면 좋겠어.” 넉넉한 설 명절 만큼이나 무엇이든지 다 있는 재래시장. 그러나 탈북자 김영순 씨에게는 고향의 맛이 늘 그립기만 합니다.
“여기에 있는 것이 모두 보기 좋잖아. 그런데 맛은 북한 것보다 못해. 소채의 경우 온실에서 다 재배하고 태양을 많이 받지 못해서 소채가 가지고 있는 맛이 부족하거든. 북한은 양념을 많이 안해도 그 자체가 맛이 좋거든. 여기는 자연산이 없고 양식을 다 하잖아.”
남한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적어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설 음식을 만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주부들도 많아졌습니다.
해마다 명절증후군 현상이라고 해서 주부들이 명절이 다가오면 스트레스가 심해진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남한의 주부들의 이같은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만들어 파는 설 음식도 마련했습니다.
가래떡도 썰어 주고, 한과도 만들어 주고 만두도 쪄서 먹기만 하면 되도록 빚어 놓았습니다. 또 물에 넣어서 끓이기만 하면 되는 국거리와 양념이 다 된 고기도 팔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화 한 통이면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을 완전히 만들어서 집까지 배달하는 업체도 남한에는 많습니다.
그러나 편하고 풍요로운 남쪽 생활이 탈북자 김영순 씨에게는 아직 낯설게 느껴집니다. 설 명절이라고 나물 하나라도 더 장만하기 위해 고생하는 북한의 어머니들 생각에 더욱 그렇습니다.
(참 편한 것 같아요. 만두도 만들어서 팔고. 그래도 한국 주부들은 명절 때면 힘들다고 하던데요.) ‘’뭐가 힘들어. 너무 편안해서 하는 소리야. 여기는 전기 밥솥이 밥 해주지. 가스 곤로 있지 북한은 땔 연료가 없어서 여자들이 지옥 중에 지옥에 살고 있어서 너무 불쌍해.”
남한의 재래시장에서는 북한에서 온 음식 재료들도 몇 가지 팔고 있습니다. 주로 고사리, 버섯, 도라지와 같은 나물류와 수산물이 북한에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김영순 씨는 고향의 맛이 그리워서인지 북한산 표고버섯을 보자마자 한 봉지 담습니다.
“표고로 전 부치세요~ (여기도 북한산이 있어요, 중국산을 속여서 오는 것도 있잖아요.) 요즘은 원산지 표기 잘못하면 큰일납니다. (표고로 어떻게 전을 부치나요?) 물에 불궈서 계란만 넣어 부치세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도 좋구요. (사시려구요?) 응. 물에서 불궈서 볶아 먹으려고.”
김영순 씨는 설날에 손님이 오면 오늘 마련한 북한산 표고버섯도 대접할 마음입니다. 그러나 아직 오겠다고 약속한 손님은 없습니다. 남한에서는 설 명절이 오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명절 놀이도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지만 탈북자들에게 설날은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쓸쓸한 날입니다.
“반갑지 않아. 설에는 집에서 그냥 혼자 지내야지. 명절이 제일 싫어.”
탈북자 김영순 씨는 남한의 재래시장에 있는 풍족한 설 음식에서부터 온 가족이 모여 명절을 보내는 행복까지 북한 주민들도 함께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