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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6)-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6)

                                    <참역사문화 운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중국의 고서들을 통해서 본 단군조선

 

산해경(山海經) (김종서 박사의신시.단군조선사 연구에서 발췌)

東海之內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天毒其人水居畏人愛之

(동해지내북해지우 유국명왈조선 천독기인수거외인애지)

중국 동쪽 바다인 발해(渤海), 황해(黃海), 동해(東海)의 안쪽 땅 중에서도 북쪽 땅 즉 발해의 모퉁이 지역에 국호를 조선이라고 일컫는 국가가 있다.

하나님(하느님 또는 한얼님)이 그 조선사람들을 다스리고 기른다. 그 조선사람들은 강이나 바다 등의 물 가까이에 살면서 다른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위 천독기인에서 독()자는 독 독, 재앙 독자로 쓰인 것이 아니라 다스릴 독, 기를 독자 로 쓰였다며 그 예문을 노자 1장의 則長之 育之 亭之 毒之 爲其母也 (즉장지 육지정지 독지 위기모야)를 들었다.

즉 이것을 길게 하고, 이것을 배양(교육)하고, 이것을 균형되게 하고, 이것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어머니가 하는 것이다. 그 외 주역에서의 예문을 더 들었으나 생략하며 자의 의미를 기를 독, 다스릴 독으로 풀이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춘추시대의 패자(覇者)인 제()나라의 군주 환공(桓公:재위 기원앞685~643)과 재상(宰相) 인 관자(管子:管仲)의 대화록(對話錄)을 그저 관자라고 하며 그 관자에 오()나라와 월 ()나라 그리고 조선 영토의 크기가 나온다.

[원문 생략: 춘추시대 5명의 패자 중 한사람인 제나라 군주 환공이 말하기를 “4곳의 이 족(夷族)들이 복종하지 아니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데 그 이족들이 나의 정치에 거역하는 것이 천하에 널리 퍼질까 그래서 과()인이 근심하는 바이오, 이 같은 그들의 행위에 어떤 방책이 있겠소?” 관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앞 생략)표범의 가죽인 문피(文皮)라 도 그 값을 후하게 쳐서 준다면 그러한 후에는 팔천리(八千里) 땅을 가진 발조선국(發朝 鮮國)이 교역의 이익을 얻고자 찾아뵐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밝혀둘 것은 위 8천리 땅을 기존의 학자들은 제나라로부터 8천리 떨 어진 거리로 해석해 왔었다는 사실, 만약 제나라와 조선의 사이가 8천리라면 단군조선 은 러시아 연해주 앞 동해바다 속이나 시베리아 북부 및 북극해 주변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고로 이는 명백한 조선의 크기를 말한다.

또 제()나라와 월()나라의 전쟁 기록 중 그 일부에 8000리 대제국 단군조선의 기록 과 관자의 경중갑(輕重甲) 편의 기록 중 지구 크기에 대한 인식을 비추어 단군조선의 크 기에 대한 인식을 유추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중국의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에서 단군조 선의 영토가 산서성 하북성까지였음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해경은 하(:기원앞 2205~1766)나라의 건국자인 우()와 백익(伯益)이 치수사업 (治水事業)을 끝낸 뒤 그동안 파악한 각 지역에 대한 정보를 모아 편찬하였으며 이는 한 시대의 기록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기원 앞 1300년 대에는 대황경(大荒經), 독편(獨篇), 해내경이 편찬되고, 서주(西周) 중기(기원앞 110년 경)에는 또 해내경이 편찬되고, 춘추 시대와 전국시대의 교체기인 기원 앞 600년 경에는 초()나라에서 오장산경(五藏山經)    과 해외경(海外經)이 편찬되었다는 몽문통(蒙文通)의 학설을 따른다.

또 진나라 왕침의 위서(魏書)의 기록에는 기원 2000년 앞에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 서울 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때다라고 되어있다.

이제 단군조선의 수도 아사달의 위치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