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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2)-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2)

                                    <참역사문화 운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홍익인간(弘益人間)

 

우리나라 교육법 제1조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교육하라이다.

그렇다면 이 홍익인간이라는 용어는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내용의 정확한 뜻이 무엇 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개천은 단군으로부터, 홍익인간 역시 단군왕검의 백성다스리는 이념(철학)으로 생각 하고 있다.

그러나 환인(하늘임금: 天帝)께서 홍익인간의 세상을 펼 수 있는 환웅을 불러 홍익인간을 펼칠 수 있는 삼위 태백을 가르키며 너희가 가서 다스리라 하면서 무리 3천명과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주어 내려보냈다는 앞서의 기술을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곧 신시 1세 환웅 거발환(居發桓)이며 이로부터 나라의 개천은 시작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위대한 다스림의 철학, 홍익이간은 환인으로부터 받은 계명이며 개천일은 원년, 갑자(B.C 3897)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천부경(天符經)을 조화경(造化經),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교화경(敎化經), 참전계경(參佺戒經)을 치화 경(治化經)이라고 하는데 이 3대 경서가 그 기본이라 한다.

 

천부경은 한()국시대부터  구전으로 내려온 81자로 된 우주운행과 본질을 설명하는 경전인데 천 ()은 하늘을 가르키고 부()는 다시 맞춘다 또는 합()한다는 의미이며 경()은 전해 내려오는 글 또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란다.

천부경은 기원앞 7197년에 개국한 신시 앞 환()국 시대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으며 신시(배 달국)을 세운 환웅(桓雄)에게 전해진 천부인 세개 중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져 전해 받았다고 한 다.  환웅께서는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천부경을 녹도문자로 기록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환웅에 의해서 전고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우리 옛글자 가림토(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됨)로 새겨 진 것이어서 후세사람들이 판독치 못하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석학 최치원 이 백두산을 찾았다가 비석에 새겨진 천부경을 보고 한자로 번역해서 후대에 전했다고 한다.

1916년 계영수 선생이 묘향산에서 수도 중 석벽에 새겨진 천부경을 발견하고 탁본하여 서울에 있는 단군교당으로 보내주었다고 하며, 고려시대 오은(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와 더불어) 중 한 사람인 농은(農隱)의 유집에서 발견된 천부경문은 갑골문자로 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위 3대경서를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내 공부가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또한 구체적이고 선명한 자료를 구입하지 못한 탓이다.

마침 송호정 교수의 겨레얼 삼대원전(三大原典)’에서 인용한 내용을 옮겨보기로 한다.

 

[단군 이전 한웅천황(桓雄天皇)의 역사 시대가 1565년 동안 있었고 또 그 이전 환인천제(桓因天帝) 시대가 7 3301년이 있어서, 금년까지 9183(2009년으로 계산할 때는9209년 임)이라는 사실 이 삼성기’(三聖紀)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중략이 책을 쓴 안함로(안함로)는 서기 600년 경의 신라시대 사람인데 이러한 문헌을 무조건 믿기도 어렵겠으나 다행히도 외국 학자들의 여러 합리적 인 논문들이 나와 있습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발표한 소련의 여류 민족학자 R.S.M 자리가시노바 씨는 한동 구석기 시대에 인 류가 살았고 신석기 초에 이미 독자적인 고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발표하면서 신석기시대 초는 지금으로부터 약 1~12천 년 전이며 이때 이미 동이족들은 주변국가들이 따라오지 못하 는 수준 높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중공의 유명한 고고학자 당란은 1977 7 14일 중공 광명일보를 통해 산동반도 지역에서 광대한 넓이의 대문구문명권(大汶口文明圈)을 발견했는데, 탄소측정을 해보니까 문자가 나오고 그곳을 통치한 소호씨(少昊氏)라는 통치자 이름이 나왔으며 이것을 방사선 탄소측정을 해보니까 지금으로부터 5785년전 것이라고 합니다.

5785년 전이라면 단군의 건국보다 1500년 전의 일이며, 그당시 이미 산동반도에는 문자를 사용한 고도의 문명국가가 있었는데, 그 통치자인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가 동이족이라는 사실이 중국 고 전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고사변(古史辯)>에 소호씨는 동이계야(東夷系也) 동이지인(東夷 之人)이라고 나올 뿐 아니라 태호복희씨, 여와씨, 소호금천씨가 모두 동이족이라고 밝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