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0)
<참역사문화 운동>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아직까지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중국의 것이 더 오래고, 더 크고, 무엇이든지 먼저였다며 문화 및 물질문명이 중국으로부 들어왔다는 고정관념의 틀 속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유적이나 유물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발굴되어도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다른 어떤 나라에서 유적, 유물의 발굴에 이처럼 냉담할 것이며 이처 럼 부정적이겠는가!
여기 부루단지(扶婁壇地)만 해도 지금까지 혹은 50여년 전까지 내려오는 풍속인데 이를 귀하 게 여겨 소중하게 지켜나가려는 일말의 움직임도 없다.
부루단지는 가을에 햇곡식을 질그릇 단지(항아리)에 담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 집안의 안녕을 비는 풍속이다. 부루단지(扶婁壇地)의 단지(壇地)는 단지의 음역이다.
물을 잘 다스려 일정한 장소에서 잘 살수 있게 해주신 단군조선의 2대 부루 임금에게 감사 하고 집안의 안녕이 길이 이어지기를 빌며 모시는 단지이다.
제2세 단군 부루(扶婁)
국조 단군 왕검께서 경자(기원앞 2241년) 3월 15일에 세상을 떠나시니 백성은 모두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여 단군의 기를 세우고 아침저녁 모여앉아 경배하였다. 백성들이 이처럼 단군성조를 마음 속으로 잊지않았다. 태자 부루(扶婁)가 뒤를 이어 제위에올랐다.
임금이 어질고 복이 많아 백성과 함께 산업을 일으켜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었다.
봄 가을에 나라안을 돌아 살피며 예를 갖추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여러 제후들에게도 옛날처럼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을 잊지않도록 당부하였다.
또 여러 고을사람들의 선한 일과 악한 일을 신중히 가려서 상과 벌을 주었다.
개천과 도랑을 파고 길을 닦아 농사짓고 누에치는 일을 장려하였으며 학교를 세우고 학문을 일으켜 널리 가르치니 문화가 크게 진보되었다.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많았다, 국경이 남쪽은 남해, 동쪽은 창해(滄海) 북쪽은 서비로(西非 路)에 이르렀으며 서쪽은 요서에서 사막까지 이어졌고 서남은 회대(淮岱)에 이르렀다.
여기에 큰 족속이 아홉, 작은 족속이 열 넷이 살았다.
백성은 모두 임금의 덕스러운 가르침을 입어 위로는 인륜이 밝고 아래로는 교화가 잘 되어 져서 천하에 비할데 없이 풍속이 선하고 아름다웠다.
원년, 신축(기원앞 2240)
*9월에 아우 부여(扶餘)를 망구왕(茫球王)으로, 부우(扶虞)를 동해왕(東海王)으로 삼았다.
*선라(仙羅)를 앙숙(동이앙자 肅) 땅에 봉하였다가 수년 뒤 도라(道羅)와 동무(東武)도 제후로 봉했는데 이것이 훗날 [옥저], [비류], [졸본]등 여러나라가 되었다.
*어아(於阿)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니 사람과 신이 화합되었다. <어아>라는 것은 기뻐서 하는 말이다. 이때에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는데 털은 희고 꼬리는 아홉이나 되었 다. 고시씨가이 상서로운 징조를 글로 적어 임금께 아뢰니 고시씨에게 상을 내리고 온 나라 에 어아노래를 부르게 하였으며 조천무(朝天舞)라는 춤도 만들어 추게하였다.
***춤은 모르겠으나 어아가의 가사는 다음 기회에 옮겨보도록 하겠다.
2년 임인(기원앞2239년)
*충(忠)과 효(孝)를 고루 갖춘 대련(大連)을 섭사직(攝司職)에 소련(小連)은 사도(司徒)로 삼아 항상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로 삼았다.
3년, 계묘(기원앞 2238)
*이해 9월에 조서를 내려 백성들에게 머리를 땋게하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저울과 말 등 모든 도량형을 관청의 표준에 따르도록 하는 등 어진 행정을 펴니 나라안이 고루 편리하였다.
10년, 경술(기원앞 2231)
*4월에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여 토지대장을 만들어 세금을 내게 하였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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