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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명깊은설교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와싱톤한인교회 김미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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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3.21 (김 미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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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From now on You're Fishing for Men)
--누가 복음 5:1-11

1.

2010년이 시작된지가 바로 어제인듯 한데 벌써4월이 다가오니 2010년도의 ¼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올해 유난히 세월의 빠름을 느끼는 것을 보니 저도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주변의 어른들께서 해 주셨던 “나이만큼 세월이 빨리 지난다”는 말씀을 실감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불과 4개월 전에 새 해를 향해 소망했던 계획들을 아직도 잘 실천하고 계신지요. 아니면 작심 3일로 이미 물건너 간 것은 아닌지요. 제가 참석한 어떤 속회에서 돌아가며 새해의 계획들을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 생각나는 것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며 살겠다”, “화를 내지 않겠다”, “영적 생활에 열심을 내겠다” 등등 모두가 열심히 다짐을 했는데 잘 지켜지고 있는지 중간점검을 해 볼 필요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건강한 삶을 위해서 일주일에 세번은 운동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대로 지킨 주는 몇 주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저와 여러분이 정기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변화를 실천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실제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는 현재의 삶에 안주하려고 하고,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변화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 또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반복적으로 살아간다면 이것은 어딘가 병들었거나 늙었다는 증거입니다.

Rosabeth Kanter라는 분은 “People don’t want change. They just want things to get better (사람들은 변화하기를 원치 않는다. 단지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랄뿐이다)”고 지적하면서, 변화란 한 개인이나, 가정, 사회나 단체에서 좀처럼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표범이 그 반점을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좀처럼 변화할 줄 모르는 개인이나 가정, 사회나 단체는 언젠가는 스스로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드니 그린버그 (Sydney Greenberg)라는 사람이 청년과 노인과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전통과 방법에만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과거만을 회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줄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으려고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미래의 꿈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내일의 꿈을 포기하고 오늘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이 이야기는 저와 여러분의 정신상태가 얼마나 젊고 건강한 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도 “아 그렇다면 나는 아직 청년인걸” 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유명한 저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의 작가인 고든 맥도날드 목사는 미래를 향해서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장차 최상의 것이 도래하리라고 확신하는 정신상태를 낙관주의라고 표현했고, 이와 같은 의미를 갖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으라고 하면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소망이란 역사는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으며 창조주이시요 구속자이신 하나님이 권능의 손길로 이 역사를 주도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이 소망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끔찍한 일임에도, 현실적으로는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모일 때마다 뜨거운 예배와 찬양을 드리고 때로는 부흥회나 수련회, 세미나 등에 참석해서 많은 은혜를 받고 흥분되어 돌아오지만, 그런 감정이 오래 가지 못하고 가라앉을 때면 실망을 하고 스스로 자신감과 의욕을 잃어버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은 자신을 포함하여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중간궤도 수정”을 하는 것이라고 도전합니다. 중간궤도 수정이란 인생의 변화나 방향 전환을 의미하며, 미래에 대한 소망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성경에 기초한 인생의 변화를 소개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고든 목사님은 중간궤도 수정이 필요한 사람들의 목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인생의 현재 방향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 제도화된 종교 생활에 푹 빠져 있으나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인생의 흐름이 빨라지고 있으며, 선택의 여지가 증폭되고 있음을 인식하지만 믿음이 미처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여 시대에 뒤처진 사람들; 자신이 곧 진퇴양난에 빠질 것을 알고 변화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현재 자신이 영위하는 삶의 방식보다 더 깊고 행복한 다른 삶이 있다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사람들.

만일 여러분 중에 위에 열거한 부류에 속한 분들이 있다면 용기를 갖고 ‘중간궤도 수정’ 다시 말하면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방향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 삶의 중간궤도수정을 여러번 거치면서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현재에 안주하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이런 저 개인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나 먼저 성경에서 중요한 삶의 방향 전환을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베드로의이야기 입니다.

2.

오늘 본문에는 시몬 베드로가 자신의 삶의 중간궤도 수정을 하게되는 예수님과의 충격적인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평생 어부로 살면서 열심히 그물을 내리며 살아왔습니다. 이 날도 밤새도록 열심히 애써서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왔습니다. 빈손이라 낙심이 되고 기분도 좋지 않았지만, 내일을 생각하며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한 낯선 분이 오셔서 배에 오르시며 배를 뭍에서 띄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배에 오르신 그분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시몬 베드로는 오늘의 만남 이전에 이미 몇차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 였던 동생 안드레가 어느날 찾아와서는 참 메시야를 만났다면서 시몬을 예수께로 데려갔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시몬을 바라보시면서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지만, 이제부터 네 이름은 게바라고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바는 베드로, 바위라는 뜻입니다. 뜻밖에 예수를 만나 새로운 이름까지 받았지만, 시몬의 마음은 아직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변화가 찾아오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물론 동생 안드레의 말처럼 예수는 범상한 분이 아닌 것 같았지만 과연 유대인들이 수천년을 기다려온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예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한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다시 예수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눈 앞에 어른거리는 가족들 생각에 망설이며 날마다 열심히 고기 잡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께서 베드로가 살고 있는 동네로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이적 행하는 것을 보기 위하여 몰려 드는 바람에 동네가 시끌했는데도 베드로는 예수께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마침 고열로 시달리고 있는 장모를 보신 예수께서 열병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자 열병이 떠나고 장모가 곧 일어나서 예수 일행의 저녁을 준비하는 놀라운 일을 눈 앞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더우기 예수께서 시몬의 집에 있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은 시몬의 집으로 몰려 들었고, 예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 고쳐주셨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나가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소리 치는 것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새 베드로는 이분이야 말로 참된 그리스도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것을 버리고 메시야 운동에 가담한다는 것은 몇날 며칠을 밤새워 고민해 보아도 쉽게 내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이 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배를 타고 나가서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빈 그물을 힘없이 들어올릴 때마다, 문득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내가 설 자리는 예수가 계신 그곳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과연 나같이 힘없는 어부가 어떻게 거대한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할 수 있으며, 나의 가족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그물을 내렸지만 헛수고 였습니다. 결국 빈배로 돌아와 그물을 정리하면서 이 빈배는 마치 자신의 공허한 마음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분은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셨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날 따르라고 강요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분께로 가야한다는 마음과 그분 앞에 가면 내 인생의 공허감이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치 베드로의 마음을 알아 채기라도 한듯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의 배에 올라 타시고, 해변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배를 뭍에서 띄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곁에서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의 가르침에 푹 빠지게 되었고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그분을 동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예수님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말씀이 끝나자, 예수님은 뭍으로 가려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수인 예수께서 어찌 어부인 나도 알 수 없는 고깃길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시간에 고기들이 깊은 곳에 모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부들의 기본 상식이었지만 왠지 거부하기 어려운 말씀, 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씀이 베드로의 마음에 깊이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노젓는 소리만 적막히 들리는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과 함께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시간은 베드로의 평생에 잊지못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마음과 마음으로 소리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 저는 일생을 어부로서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네 영혼의 깊은 곳에서 애타게 진리를 갈망하는 목마름을 인정할 때이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저의 삶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제 마음 가운데 맴돌고 있습니다.”
“베드로,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깊은 곳으로 가서 홀로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이다.”
“예수님, 이제까지 저의 삶은 제가 주인이 되어 애를 쓰며 살아왔지만 저의 텅빈 그물처럼 진리에 대하여는 방관자로 살아왔슴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네 삶의 중간궤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변화를 결단하라. 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단다.”
“제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결단하면 제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나를 따르는 자는 죄용서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놀라웠습니다. 과연 이분은 누구시기에 죄 용서와 구원의 선물을 약속하신단 말입니까?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죄 용서를 할 수 있는 분이 없는데, 과연 내 앞에 서 있는 이 분은 누구시란 말입니까?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하지 못하고 그물을 내리던 순간, 많은 고기 떼가 그물에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으며, 겨우 친구들의 도움으로 물고기를 두 배 가득히 채우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던 때에 베드로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하나님 이십니다. 주님의 거룩하심 앞에 저의 죄가 환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는 죄인이오니 저를 떠나주십시오 “
“베드로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 너의 삶의 나침반은 바로 내가 될 것이다. 아무리 인생의 방향을 잃은 것 같은 외로움이 너를 힘들게 해도 이 나침반을 의지한다면, 지금 잡은 고기떼처럼 너의 삶이 풍성해 지고, 네가 예기치 못한 기쁨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네 가족들을 걱정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네 가족들도 너와 동일한 이 놀라운 삶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은 내 앞에 서 있는 너의 결단이 중요하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평생 해 온 고기를 잡는 일밖에 없습니다.”
“베드로, 나는 네게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 어부로 성실하게 살았던 것처럼 성실하게 나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고기만 바라보고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사람을 바라보아라. 사람을 바라보면 그 영혼을 보게 되고, 그 영혼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게 될 것이다.”
“주님, 그렇다면 더 이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저의 평생에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을 내려 놓겠습니다. 제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이 배와 그물을 내려 놓겠습니다. 이제 주님만을 저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주님은 제 삶의 전부이자 저의 미래이며 소망이십니다.”

3.

여러분, 오늘 베드로의 이야기가 과연 저와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교회에서, 일터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풀타임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만난 이후에도 자신의 일터에서 성실하게 그 일을 지속하며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5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저의 신앙생활은 그리 잘 하지 못한 편이었습니다. 물론 교회에 나가고 봉사하고 교제하는 것은 했지만 진정한 삶의 방향 전환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면서도 저의 내면은 여전히 공허했습니다. 그리고 1.5 세대인 저희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여, 그 당시에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에 오면 나름대로 갖고 있던 꿈을 펼치려던 저의 뜻이 잘 이루어지지 않자 실망하였고,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며 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 과연 나의 꿈은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며 곤고한 나날들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동네분의 소개로 가까운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혹시나 저의 깊은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으로 찾아간 첫 날, 예배당에 들어서자 마자 저는 오랫동안 저를 기다려오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분은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저와 함께 해 주셨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예배를 마치자 창피해서 곧바로 나와 버렸는데, 그 날 저는 처음으로 제 인생을 주님께 드린다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날, 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로 결단한 이후로 이제 내가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더 깊이 알기 위해 성경을 제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았습니다. 이 나침반은 제가 어디에 서 있든지 제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었고, 제가 무엇을 하든지 결국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길, 십자가로 저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말씀을 공부하며 여러가지 새로운 도전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성경 말씀과 기도, 그리고 신앙의 선배들의 조언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20여년 전에 워싱톤 지역으로 이사온 이후에 매주 교회에 가서 봉사하다가 , 뜻하지 않게 교회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처음 신앙고백할 때에, 저는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주님께만 저 자신을 순전히 드리고 싶다는 고백을 했는데, 물론 그 당시에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주님께만 저의 사랑을 온전히 드리고 싶은 열정에서 나온 헌신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목회의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 보면서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곳곳에서 봉사하며 저의 은사들을 새롭게 발견했는데, 특별히 가르침과 상담의 은사를 통해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몇년 후에 몇몇 목사님들이 제게 신학교에 가서 훈련을 더 전문적으로 받기를 추천해 주셨을 때에도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주님의 뜻이라면 하는 마음을 갖고 기도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1995년 저의 친정 아버지께서 위독하셔서 한국을 방문하던 중에 낯선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아버님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너를 사용하겠다”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신학교 3년 과정 동안 많은 훈련과 연단의 기간을 거치며 제가 가려는 목회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시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저의 남편도 큰 중병에 걸리는 어려움이 반복되었습니다. 기도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음으로 더욱 매달려 기도했고, 3주후 부터 남편은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저의 남편도 이 고통의 기간을 통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남편이 사역의 길에 들어서고 저는 옆에서 돕는 일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남편은 저의 은사를 인정하며 제가 목회자의 길을 가는 것을 많이 격려해 주었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신학대학원과 그 후에 목회학박사 학위를 마칠 때까지 열심히 후원해 주었고, 저의 든든한 영적 동반자로서 함께 이길을 가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침례교회에서 8년간 전도사로 섬기다가 제 사역의 방향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1년간 기도한 후에 2005년에 와싱톤한인교회로 옮겼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교단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저를 불러주신 주님의 사역을 더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목사의 길을 가고자 결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07년 처음으로 버지니아 연회에 참석했을 때, 마침 1200여개의 교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합감리교회의 여성목사 안수 50주년을 기념하며 드린 축제의 예배 시간은 저의 평생 잊지 못할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감히 오르지 못할 길 같았던 그 여정 길에 먼저 오른 수많은 여성목사들이 거룩한 춤을 추며 하나님의 행하신 놀라운 일을 찬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 주님께서 제 마음에 “너도 이 길을 기쁘게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 날은 연회의 절정으로 새롭게 안수받은 목사들을 각 교회로 파송하는 예배가 있었습니다. 수천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룩하고 엄숙하게 치러진 파송 예배를 마칠 무렵, 감독님께서 이 시간 주님께서 목사로의 길로 부르시는 자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할 때에 저는 아무 주저함없이 벌떡 일어나 제일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참으로 짧은 순간이었지만 앞에서 기다리는 감독님께로 걸어나가며 저는 마음으로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님, 이제 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이 길이 쉽지 않은 줄 알지만 이번에도 제 삶의 또 한번의 방향전환을 통해 한 단계 더 깊이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까지 처럼 나를 대신하는 손과 발이 되어 교회와 성도를 섬기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전하는 자가 되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제 안의 모든 두려움과 갈등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으며 과연 주께서 나의 이 여정에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로 부터 2년후 저는 준회원 목사 안수를 받았고 현재 연합감리교회의 Elder 목사의 2년째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23년전 주님께 제 삶을 온전히 드리겠다고 고백했을 때에는 제가 목사의 길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지만, 제 삶의 중요한 방향전환의 도전이 찾아 올 때마다, 주님을 의지함으로 삶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제가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이 주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길이었음을 고백하면서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God loves us not because we are good, but because God is good. (하나님은 우리가 선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자 하는 것들, 때로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들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보다 앞서는 것들은 과감히 내려 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3년간 한인 유학생들을 위한 코스타 집회에서 영성 세미나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미나 중간 중간마다 젊은 대학원생이나 박사학위를 받은 자들과 미래의 진로를 놓고 상담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가장 많이 질문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라는 것 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며 전력질주해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자신의 삶의 중간궤도 수정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저의 삶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Companions in Christ’ 교재에 나와있는 하나님의 뜻 분별하기에 대해서 답을 드립니다. “만일 당신이 앞으로 5년, 10년, 혹은 20년 동안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분명한 길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망설이면서 내딛는 걸음이지만, 바로 그 걸음이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용기를 갖고 한 걸음 내디딜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마스터 플랜을 정해 놓으시고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우리에게 채찍을 가하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결정을 소중하게 여겨주시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어렵사리 한 걸음을 옮길 때,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박수를 쳐 주시며 네가 용기를 내서 내디딘 바로 그 길을 하나님도 기뻐하신다고 인정해 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 안에 머무는 자들은 더 이상 삶의 방향전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 이 삶의 과정, 과정이 중요하고,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그 자체가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일의 성과나 결과에 치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계속 읽어보면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이후 자신의 삶의 방향전환을 한 베드로라도
그 이후로 항상 흔들지리 않는 삶을 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늘 예수님 곁에 머물며 많은 놀라운 일을 했지만, 자신의 혈기 때문에 자주 넘어지고, 때로는 너무 앞서 가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기도 했고, 결국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난 후에 깊은 수렁에 빠져 다시 어부로 돌아가려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쓰러져 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처음 만났던 갈릴리 호수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비록 실패했지만, 베드로의 마음 깊은 곳에 아직도 식지 않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일깨워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이나 반복되는 예수님의 질문을 통해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이토록 깊은 줄을 스스로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 그 어떤 사랑의 행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영혼과 영혼으로 사랑해 주시는 주님 앞에 그는 이제 또 다시 그의 삶의 방향 전환을 결심합니다. 남아있는 생애동안 예수님처럼 사랑하겠노라고 결심한 후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대표로서 성실히 사람낚는 어부로서 살다가 마지막 순교하는 시각에는 감히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습니다.

4.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저는 오늘 우리의 인생의 방향전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오래했지만 그동안 큰 변화없이 살아오셨거나, 스스로 영적 성숙에 대한 갈망은 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보기 위해서 홀로 있는 시간, 하나님과의 독대의 시간을 가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깊은 데로 나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주님께서 주셨던 많은 중간궤도 수정의 기회들을 회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놓쳐버린 기회를 후회하기 보다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어 주님께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인생의 전반전을 뛰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후반전을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전은 결코 전반전보다 못할 것이라는 보통사람들의 생각을 버리라고 과감하게 도전합니다. 오히려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거나 너무 늦었다고 포기하기 보다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지금 서 있는 지점에서 자신의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행복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성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의 뜻대로 해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는 베드로가 밤새도록 애쓰며 그물을 내렸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하는 삶과도 같습니다. 이제는 내 지식, 경험, 삶의 방식 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으로 나아갑시다. 주님께서는그곳에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기쁨과 선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베드로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고기잡는 일을, 변화한 이후에 주님을 위해서 사용했듯이 우리도 살아오면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성실하게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매일 주님과의 동행으로 인해 가슴 뜨겁고, 하루를 살아도 주님과 함께 신명나는 하루를 살아가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에게 말씀을 통해서 들려주신 주님의 초청을 기억합니다.
깊은데로 나아가라.
이제까지 피상적인 삶을 살아온 저의 과거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는 깊은 곳에서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십자가를 향해서 한결같은 걸음을 재촉하셨던 주님을 따라
저의 삶도 십자가를 향해서 나아가기로 작정합니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 예기치 않은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 주소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소서.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을 것이라는 새로운 소명을 따라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그리하여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 내일을 향해 용기를 갖는 삶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