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갈 수 없는 책심적인 주제들을 성경 말씀에 비추어 깊이 성찰하는 단기
연속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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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성 프로젝트 <내 영혼의 오두막> 첫번째
“누구나 아프다”
(Everybody Hurts)
--창세기 3:1-7
1.
윌리엄 폴 영(Wm. Paul Young)의 소설 <오두막>(The Shack)은 맥켄지 앨런 필립스(Mackenzie Allen Phillips)라는 가상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줄여서 ‘맥’이라고
부르는 그는 미국 중서부의 한 농장 지대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엄격하고
냉담한 사람이었고, 보수적인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그 아버지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자주 술에 만취하여 부인과 아이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입니다.
저녁 식탁에서 그는 끝도 없는 설교와 훈계를 늘어 놓았고, 즉석에서 내는 성경
퀴즈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끔찍한 벌을 주곤 했습니다.
열 세살 되던 해, 청소년 수양회에 갔다가 맥은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는 지도
교사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털어 놓습니다. 은혜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그 지도 교사가 아버지의 직장 동료라는 것을 깜빡 했습니다.
며칠 후, 지도교사는 맥의 아버지에게 충고를 합니다. 잘 한다고 한 것일텐데,
그것이 맥에게는 큰 화를 초래합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가족을 모두 이모집에
보내 놓고는 뒤뜰에 있는 참나무에 맥을 묶어 놓고 허리띠로 때리고, 성경 구절을
들이대면서 훈계를 합니다.
약 2주일 후, 맥은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되자 가출을 결행합니다. 열 세살 나이의
소년에게 세상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크게 탈선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세워 나갑니다. 20대 초반에는 신학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는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만나 화해했으며, 내넷 새뮤얼슨(Nannette A, Samuelson)과 결혼하여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들 사이에는 다섯 자녀가
있었는데, 두 아들은 독립했고, 조시(Josh)와 케이트(Kate) 그리고 늦둥이 다섯 살
미시(Missy)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 해, 노동절 연휴, 맥은 아이들 셋을 데리고 왈로와 호수 주립 공원(Wallowa Lake State Park)에 야영을 하러 갑니다. 간호사인 아내 낸은 교육을 받으러 시애틀에서
주말을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맥은 세 아이와 꿈 같은 시간을 지냅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아들 조시와 딸 케이트가 카누를 타고 놀다가 그만 뒤집혀 버립니다. 맥은
강물로 뛰어 들어 허우적 거리는 케이트와 조시를 구조해 냅니다. 한 참 후 뭍으로
올라와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돌아 보니,
벤치에서 색칠 놀이를 하고 있던 미시가 사라졌습니다.
경찰이 오고 비상이 걸렸습니다. 간장을 태우는 초조한 시간이 지난 후, 경찰은 깊은
산 속, 버려진 어느 오두막에서 미시의 피 묻은 드레스를 발견합니다. 미시의 시신은
찾지 못했고, 경찰은 미시를 살해한 범인은 어린 소녀들만 노려 범행을 저질러 온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만을 밝혀 냅니다. 다섯 살 어린 딸이 유괴범에게 납치되어
인적 없는 오두막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비참하게 살해되었는데, 그 시신 조차도
수습하지 못한 것입니다.
2.
그 이후로, 맥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의 마음에는 ‘거대한 슬픔’
(The Great Sadness)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 사고로 인해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아 있다 할 수도 없었습니다. 맥은 가끔 웃는 일이 있었지만, 그 웃음
안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느낍니다. 맥의 감정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미시가 실종된 그해 여름 이후 ‘거대한 슬픔’은 투명하지만 무거운 누비이불처럼
맥의 어깨를 두껍게 감싸고 있었다. 그 무게에 두 눈은 흐려지고 어깨는 축 쳐졌다.
두 팔이 모진 절망과 함께 누비이불에 꿰매지고 자신도 그 일부분이 된 것 같았으며,
그것을 털어내려는 노력 때문에 항상 녹초가 되곤 했다. 맥은 매일 납으로 만든
무거운 목욕가운을 입은 것 마냥 축 쳐진 채 먹고 일하고 사랑하고 꿈을 꾸고,
만물을 퇴색시키는 음산한 낙담 속을 터벅터벅 걸어야 했다.”(35쪽, p. 27)
그렇게 4년이 지난 어느 날, 눈비가 심하게 오던 날, 맥은 우체통에서 발신인 주소도
없는 엽서 한 장을 발견합니다. 그 엽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맥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그]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그 오두막’은 말할 것도 없이 미시가 살해된 그곳을 말합니다. 맥은 그 엽서를 받아
들고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 엽서를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파파’는 아내 낸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부르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낸 엽서인가? 도대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누가
장난한 것인가? 누가 이렇게 잔인한 장난을 한다는 말인가? 혹시, 그 연쇄
살인범이 나까지 노리고 한 수작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하지만 맥은 끝내 그 엽서를 구겨 버리고
모른체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엽서를 보낸 사람의 정체가 무엇이든, 확인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처제 집으로 보내 놓고 친구의
지프를 빌려 그 오두막으로 향합니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전반 약 1/4의 내용입니다. 후반 3/4에서는 그 오두막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차차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오두막에서 맥이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거대한 슬픔’을 치유 받는다는 것이 후반부의 내용입니다.
3.
주인공 맥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의 상처는 특별합니다만, 저자는
그의 상처를 통해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기를 기대합니다. 이 소설이
지향하는 목적지는 치유와 변화입니다만, 그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먼저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도록 독자를 흔듭니다. 그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혹은 억압하고 살았던,
혹은 망각하고 살았던 상처를 대면하라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힘은 참으로 강하고도
신비롭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뛰어납니다.
지난 2월 초, 멕시코 단기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저는 이 소설을 두 번째로 읽고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과 비행기 안에서 머무는 시간은 독서에 가장
유익한 시간입니다. 보스톤에서 휴스톤으로, 휴스톤에서 메리다(Merida)로 가는
공항 대합실과 비행기 안에서 저는 이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멕시코에서의 둘째 날, 저는 아주 특별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제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지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눈망울 안에서 저에 대한 강렬한 원망의 빛이 보입니다.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강렬한 적의를 느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저는 잠에서 소스라쳐
깨어났습니다.
잠시 후, 다시 잠을 청하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꿈에 무슨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문해 보았습니다. “내 안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무엇일까? 그렇게 강렬한 원망의 감정을 나에게 품고 있을 사람이 누구일까?”
성령께서 그 꿈을 통해 저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필름을 되돌려 보다가, 제 안에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하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단정할 논리적
근거가 하나도 없었지만, 제 마음에 아주 분명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일어나 떨리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제게서 받은
상처가 그 사람에게 아직도 있다면 치료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또한 제게 남겨진
상처를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했습니다. 한 참을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 후, 저는 다시 침대에 누워 부족한 잠을 보충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제 의식은 “나에게는 이같은 상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무의식 속에 있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기억나게
하고, 그것을 다시 보도록 저를 일깨웠던 것입니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 하나가
얼마나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지요!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는 제자가 있는데, 이번
문화 영성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이 소설을 읽고는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작년에 구입해 놓았지만 왠지모르게 주저하면서 잃지 못했던 소설이었습니다.
그 알 수 없는 주저함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성령님의 신비로운
움직이심과 역사하심이란... 한 소설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상처들과
죄책감을 부드럽게 들추어 내고, 느끼게 하고, 그리고 동시에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4.
이 소설의 저자 폴 영도 많은 상처를 안고 산 사람입니다. 캐나다 출생인 그는
목사이면서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뉴기니(New Guinea)에서 열 살까지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폴은 원주민에게 성적 학대를 당합니다. 청소년기에 그는
잠시 다니던 기숙학교에서 상급생에게 또 다시 성적 학대를 당합니다. 그뿐 아니라,
선교사 자녀들이 자주 그렇듯이, 그는 졸업할 때가지 13번 전학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로 돌아 다니면서, 말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었던 상처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로 인한 아픔의 종류를 이렇게
나열합니다.
“여러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은 아픔,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이어
잃어버리는 아픔, 겨울 한 밤중에 일어나 철길을 따라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했던 아픔,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끊임없이 내면을
흔들어 놓는 그 깊고 시끄러운 수치심의 아우성, 개인적인 실패로 인해 깨어지고
지워져 버린 꿈들, 방아쇠만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일 정도로 희미한 희망.” (http://theshackbook.com)
그는 이 모든 상처와 아픔을 억누르며 정상적인 삶을 살려고 발버둥쳤습니다.
그로 인해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생기고, 일중독에 빠지는 등, 이런 저런 문제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럭 저럭 정상인처럼 살아가는 데 가까스로 성공합니다.
하지만 서른 여덟이 되던 해, 억눌렸던 상처와 아픔이 그 흉한 모습을 드러냈고,
그로 인해 그의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독한 아픔과 상처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한 순간에 난파선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아내 킴(Kim)은 남편을 떠나지 않고, 그로부터 11년 동안 남편의 치유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상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상처와 치유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들을 위한 선물로 시작된 이 소설은 무려 29개의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자비로 출판했고, 광고와 홍보를
위해 2백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독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2010년 현재 7백만부가 팔려 나갔습니다. 이것은 출판계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이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모두에게 상처가 있으며,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잊혀졌거나 억압해 왔던 상처를 기억하도록 돕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너무 단정적이라고 하시겠습니까?
5.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곧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는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가 찢어질듯한 울음을 울면서
태어나는 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인생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것은 아픔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은 고해(苦海)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요 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정신과 의사이자 사상가인 스캇 펙(M. Scott Peck)은
그의 명저 <The Road Less Traveled>(아직도 가야 할 길)의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Life is tough.”
왜 그렇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3장과 이어지는 4장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까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는 완벽한 조화와
하나됨과 평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3장과 4장에 보면, 그 완벽한 조화와
하나됨과 평화에 균열이 생깁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금이
생깁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자, 인간 사이에 금이 갑니다. 2장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벌거 벗었어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하나님께 죄를 짓고 나서는
서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립니다. 그 균열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인간은 그 자연을 땀흘려 정복해야만 하는 관계로 타락합니다. 창세기 3장과
4장은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하나의 진리를 아주 선명한 목소리로 들려 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깨어진 세상’이요,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소설 <오두막>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한 가지 진실, 즉 “누구나 아프다”는 진실은
성경이 증언하는 진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다 보면,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픕니다. 누구는 과거에 심히 아팠습니다. 지금 아픈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별로 아프지 않다면, 앞으로 아플 것입니다. 협박이 아닙니다.
삶의 진실입니다.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Life of the Beloved)라는 책에서 친구 프레드 브랫트만(Fred Bratman)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는 상처받은 사람이고, 나 역시 상처받은 사람이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상처받은 사람이네. 우리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며, 너무나 구체적이고 뚜렷해서, 이 사실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쓸 것이 많다는 점을 믿기 어려울 때가 자주 있지”(73쪽).
6.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깨어진 세상이고,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상처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적어도 두 가지의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첫째,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있을 때, 누구나 때로 아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그동안에는 나만 당하고 사는 줄 알았는데, 나만 재수에 옴 붙은
줄 알았는데, 혹은 하나님이 나만 피해 다니시는 것 같았는데, 겉으로 멀끔해
보이는 저 사람에게도 그 나름의 상처가 있고, 불행할 것 하나도 없어 보이는
저 사람에게도 나름대로의 상처가 있음을 알고 나면, 버틸 힘이 생깁니다. 때로,
다른 사람의 상처는 작아 보이고 내 상처만 커 보일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큰 상처가 있고 가벼운 상처가 있다 할 수 있지만, 상처는 당하는 사람에게는
늘 절대적인 무게로 느껴지는 법입니다.
이 대목에서 노래 하나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미국의 록 밴드 R. E. M.이 부른
노래인데, 좋은 그림과 함께 편집해 놓은 영상이 있어서 한글 자막과 함께
여러분에게 들려 드립니다.
(영상과 음악)
Everybody Hurts
누구나 아프다
긴 하루가 지나고 밤을, 당신 홀로 밤을 맞을 때,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
그래도 견디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누구나 때로 울고, 누구나 때로 아프기 때문이죠.
때로, 모든 것이 엉망일 경우도 있어요.
그 때, 노래를 부르세요.
당신의 날들이 어둠 뿐일 때,
견디세요, 버티세요.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버티세요.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그래도 버티세요.
누구나 아프기 때문이죠.
친구에게서 위로를 찾으세요.
누구나 아파요.
포기하지 마세요.
그래요. 포기하지 마세요.
혼자라고 느껴지나요?
아니어요, 아니어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어요.
당신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면,
낮과 밤들은 견딜 수 없이 길 거여요.
더 이상 버티기에 너무 지쳤다고 생각한다면,
때로 누구나 아파요.
누구나 울어요.
때로 누구나 아파요.
때로 누구나 아파요.
그러니, 버티세요, 견디세요.
버티세요, 견디세요, 놓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버티세요.
누구나 아파요.
당신 혼자만 그런게 아니어요.
둘째, 우리가 사는 세상이 깨어진 세상이요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상처입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 서로를 보듬어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들려드린 노래는 참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상처 많은 세상의 현실을 그냥
인정하는 데서 끝난다는 점에서 부족함이 있습니다. 때로 누구나 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견디고 버티면서,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야 합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내가 입은 상처에서 발생합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의 행동도 알고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상처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와 너의 진정한 희망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있습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보듬어
주어야만 합니다.
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설 <오두막>을 가지고 씨름하는 이 기간 동안, 우리
각자가 자신의 상처를 정직하게 대면하는 기회를 가지기 바랍니다. 우리의 상처로
우리 자신이 우리 영혼 안에 지은 그 흉칙한 오두막을 다시 찾아갈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치유의 첫 걸음입니다. 또한 이번 기회에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 누구를 만나든지 상처입은 사람으로서 대하고, 그 상처에서 나오는 쓴 물을
견뎌 주며, 서로 보듬어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처의 치유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더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오늘은 다만, 너나 나나 모두 다 아프다는
이 하나의 진실을 생각하고 그 사실에 눈을 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위로자이신 성령의 위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상처의 왕이신 주님,
상처 입은 저희가
깨어진 세상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게 하시고,
저희의 상처를 대면하여
치유의 길을 찾게 하시며,
저희를 사용하여
세상의 깨어짐과
이웃의 상처를 치유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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