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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LA 한인 역사박물관 민병용 관장

2011-07-22

사진제공-민병용 관장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 역사박물관의 민병용 관장.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한인의 이민 역사와 함께하는 이가 있다. 바로 LA 한인역사 박물관 관장 민병용 씨다. 그는 최근 3천여 명의 미주 한인 주요인물들을 수록한 한인인명록 ‘미국 땅에서 역사를 만든 한인들’을 펴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LA 한인 역사박물관 민병용 관장의 삶의 여정을 함께한다.

민병용 씨는 미국땅에서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긴 여정을 달려왔다. 그는 각계각층의 한인을 만나며 인연이 닿았던 귀중한 인사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과 더 나아가서 주류사회로 뻗어 나가는 2세들의 희망찬 모습을 널리 알리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했다.

민 씨가 펴낸 ‘미국 땅에서 역사를 만든 한인들’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민병용: 초기이민으로 1903년 이후 1세와 2세, 3세 그리고 새 이민으로 1965년 이후에 온 1세 와 2세 등 전 미주의 한인 3,012명이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공직자, 판사, 연예인 등 열일곱 분야에 걸쳐서 주류사회에 진출한 인사 530명, 남가주 지역의 한인 1,178명, 북가주와 전 미주 43개 주와 도시의 한인 1,188명, 그리고 미주의 독립유공자 116명이 실려 있습니다. 부록에 자랑스러운 한인 100인, 성공기업인 100인, LA 총영사 19명이 실려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류사회에 진출한 한인 530명의 발굴이 이 책 「미국 땅에서 역사를 만든 한인들의 하일라이트, 즉 중요한 요점 입니다.

미국 땅에서 역사를 만든 한인들의 인명록은 민병용 씨 부부가 2년 6개월여의 노력 끝에 이뤄진 결실이다.

민병용
: 2009년 1월부터 이 책을 발간할 계획을 세웠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자료 수집과 정리, 수정, 편집 등의 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2010년을 지나고 2011년 5월28일 드디어 이 책을 펴냈습니다. 만 2년 3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특히 2010년 6월부터 2011년 5월까지의 11개월은 저와 컴퓨터 전문인 저의 아내 그레이스 민이 하루에 12시간씩 주 7일을 책 만드는 일에만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저와 집사람이 이책을 만드는 데 전담한 것입니다.

민병용 씨는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됐을까? 한국에서 신문사 기자로 활동 했던 그는 감시받는 기자 생활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다.

민병용: 저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1971년 2월에 졸업했고, 졸업전인 1970년 12월10일 한국일보사의 제26기 수습기자로 입사를 했습니다. 사회부 기자 때인 1971년에는 김대중 납치사건, 정일형 박사 댁(정대철 전 의원 부친) 방화사건 등 사회부 기자로 취재했습니다. 1972년 편집부 기자 때는 유신체제로 정국은 경색되고 언론에 대한 지시와 감시, 탄압이 강해져 갔습니다. 그런 때에 저의 어머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고, 충격을 헤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 미국이 1976년 독립 200주년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신 체제로 국내가 어려운 때에 감시받는 신문기자로 하루하루 보내기보다는 미국에 가서 석사 학위를 빨리 받고 와서 다시 신문기자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제가 어머님에 대한 슬픔도 좀 잊어질 것 같고요. 그래서 1973년 8월16일 문교부 유학시험에 합격하고 유학생의 신분으로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대학원에서 1년간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1974년 10월8일 한국일보 서울 본사에서 파견한 기자로 한국일보 LA 지사에서 다시 신문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때는 남가주 나성에도 여러 신문사가 생기기 시작해서 중앙일보도 생기고 동아일보도 있어서 LA에서도 언론들이 새 이민사회를 위해 활발한 활동도 하고 경쟁도 많을 때였습니다. 절차상 저는 서울 본사에 복직을 했고 한국일보 LA 지사 파견근무로 학생에서 LA 특파원으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국일보 LA 지사의 편집국장(1978. 10-1980. 3), 한국일보 미주 본사 편집국장 (1984. 9-1988. 9), 논설위원 등으로 20여 년 근무했습니다.

민병용 씨는 1988년에는 미주 한인기자로 북한에 가서도 취재했다.

민병용: 1988년 12월 7일-12일 미주의 한인신문 기자로 처음 북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 가서 1년간(1991-1992년) 남북한 통일을 위한 정책비교 연구를 했습니다. 1994년 4월, 다시 한국일보 서울 본사 통일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귀국했고, 「남과 북」 그리고 「북한을 움직이는 인물」을 2년간 한국일보 본지에 연재했습니다. 1998-1999년 한국일보 캐나다 본부장(사장)을 끝으로, 1999년 5월 한국일보의 30년 기자생활을 마감했습니다.

민병용 씨는 30년의 기자생활 이후에도 로스앤젤레스에서 피플 뉴스를 발간하며 한인들의 역사를 찾아갔단다.

민병용
: 저는 다시 피플 뉴스를 발행했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을 찾아서 소개하고, 그런 사람의 향기로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세들에게 Role Model, 귀감이 되는 1세들을 많이 탄생시키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People News를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펴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그 후에는 한인 역사박물관의 News Letter, 소식지 격인 Citizen’s News도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펴낸바 있습니다.

민병용 씨에게 한인 역사와 함께하면서 보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역사 지킴이로 남고 싶다고 했다.

민병용: 저는 요즈음 한인역사 Salesman, 판매원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100주년을 넘어선 미주 한인 이민사를 포장하고 알리고, 사랑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미주 한인의 역사는 바로 미국의 소수민족 역사이자, 대한민국 역사의 한 지류(支流)로 해외의 한인 이민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우리의 2세들이 뿌리를 알고, 미국의 자랑스러운 주인이 되게 하는 일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역사 지킴이도 제가 하는 일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2세, 주류사회로 뻗어 나가는 2세를 위한 일이 저의 사명이자 보람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민병용 씨는 자신의 삶 가운데 ‘사람 사랑하는 일’을 가장 귀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민병용: 저는 고등학교 대학 때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는 사람이고,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사람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을 만나 취재를 하고 싶어서 신문기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면서 「인물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미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취재하고 알고 지내던 좋은 사람들을 책 한 권에서 만날 수 있게 하고 싶어서 3,000명이 수록되는 한인 인명록을 이번에 펴낸 것입니다. 앞으로 1만 명이 실리는 한인 인명록을 펴내고, 그 내용을 다시 자랑스러운 한인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려서 전 세계에서 미국에 사는 1만 명의 삶의 이야기, 미국에서 이룬 아메리칸 드림의 이야기 한인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게 저의 사명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병용 씨는 10여 권을 책을 발간했단다.

민병용
: 제가 처음으로 낸 책은 남가주 지역에서 여걸, 여장부인 소니아 석의 자서전을 1984년에 시작했고, 2011년 6월 초에 열 번 째를 내 평균 2년 반의 한 권씩, 주로 역사에 관한 책을 10권을 냈습니다.

민병용 씨는 한국에 잠시 있을 때 미국으로 돌아가 한인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 한국에서 하는 일보다 귀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한다.

민병용: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10년째 역사라는 두 글자에 폭 빠져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아들 셋을 두고 있으면서, 그들이 미국의 주류사회에 잘 나가도록 하는 데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역사 기록 책을 알려줘 더 튼튼하고 자랑스러운 한국과 미국의 역사를 많이 아는 2세들이 주류사회에 나가고 한인사회를 위해서 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전 미주 각 지역에 저와 같은 뜻을 가진 많은 분이 이런 일을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민병용 씨는 미국에서도 선택받은 땅은 로스앤젤레스라고 생각한다며 한인들의 제2의 고향 같은 곳, 이 땅을 사랑하고 아껴달라고 당부한다.

민병용: 1902년부터 초기 이민자들이 나성에 와서 살고, 지금은 100만 명이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해서 살고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한 곳에 많은 코리언 아메리칸이, 한국계 미국인이 사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미 코리아타운, 한인사회도 1981년부터 만들어졌고요. 로스앤젤레스 월서가는 미국인들 중에 백인의 전형적인 상업 중심지역이었던 지역이 요즘에는 코리아타운의 중심이 됐고, 크고 작은 건물에 주인도 물론 한국분들이지만 거기 건물의 사무실과 회사를 갖고 일하는 분도 한국인들이고요. 그래서 지금 로스앤젤레스는 한인들의 제2의 고향이 되고 있고, 앞으로 또 다른 100년을 맞이하는 세계 한민족시대에 중심이 되어서 태평양을 대면하고 있는 한국을 저 멀리 볼 수 있는 곳이 로스앤젤레스라고 보고요. 이곳은 100년이 넘은 한인교회도 있고 독립운동의 유산, 사적지들이 지금도 가장 많이 남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족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서 한인사회를 사랑하고 함께 일해 나가는 그런 땅이 바로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입니다. 전 미주에서도 여름에 혹은 가을에 한 번씩 오셔서 코리아타운과 이곳의 문화와 한국 음식을 맛보는 그런 선택받은 로스앤젤레스로 생각하고 전 미주지역의 한인들과 더불어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우리의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에서 한인의 역사와 함께하는 LA 한인 역사박물관 민병용 관장의 삶의 여정을 함께했다. 세계의 한국인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