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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7

금년 1월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한바울씨는 북한 인민군에서 14동안 군관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형이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하고 또 북한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구걸행각을 하는 것을 보고 북한정권에 환멸을 느껴 탈출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오늘 은 그 8 번째 순서로 ‘기독교를 믿는 한 소년이 북한감옥에서 죽은 것을 직접 목격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회견에는 이현기 기자입니다.  

북한감옥에서 기독교를 믿는 소년을 만났다고 하는데 간수들은 그 아이를 어떻게 대했습니까?

한바울: 제가 감옥 안에서 느꼈던 것인데 17살 난 어린아이가 이제 잡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교회에 다닌다는 것과 신앙에 대한 열정이 컸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노골적으로 감옥 안에서 찬송도 부르고 기도하고 하니까 감방의 지키는 간수들이 사정없이 때리라고만 지시하는 것입니다.

그 감방에 있는 다른 죄수들은 그 소년을 어떻게 대해 줬습니까?

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때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왜냐면 그 사람을 때리지 않으면 그 감방사람들이 모두 기압을 받고 또 밥도 굶기기 때문에 어차피 때리는 것입니다.

17살 난 아이가 열댓 명의 감방 사람들한테 매를 맞아야 되니까 또 먹을 것이 들어와도 주지 않으니까 얼마나 고달파 했겠어요. 거기다가 또 어쩌다 주는 밥이지만 마음이 약하고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주위사람들이 훔쳐 먹기 때문에 결국은 한줌밖에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하는 말이 예수 믿는 사람은 ‘먹지 않아도 살아’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감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 먹지 않아도 되는지 두고 보자 하면서 15일정도 굶겼습니다.

내가 매일 저녁마다 내 품에다 껴안고 자고 계속해왔는데 이 형님이 왜 나에게 이러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하루 밤엔 자면서 저보고 물어 봐요. 형님 저를 왜 이렇게 사랑해요, 그래서 내가 ‘나도 너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더 이상 이야기는 해주지 않고 사노라면 길이 있겠지 내가 그 아이한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이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 소년이 15일 정도 굶었다고 했는데 죽지는 않았습니까?

한: 바로 죽기 전날 저녁에 또 그날도 엄청난 매를 맞고 저녁도 못 얻어먹고 매를 맞아 쓰려져 있었는데 그날도 점검 시간이 되어 가지고 잠자리에 누워가지고 그 아이를 내 품에 껴안고 잤는데 그 4월 달 감옥이 얼마나 추웠는지 손발이 다 얼어붙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내가 오리털 동복를 입고 왔었는데 그 동복이 그 아이한테는 큰 힘이었습니다. 그 동복을 덮어 주어 그 아이가 잣는데 그날 밤 2시반경쯤으로 짐작이 되는데 그 아이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다고 간수를 고함을 치며 불렀더니 그 간수가 그런 아이는 죽어도 된다고 아까운 게 없다고 떠들지 말라고 그러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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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6

금년 1월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한바울씨는 북한 인민군에서 14동안 군관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형이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하고 또 북한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구걸행각을 하는 것을 보고 북한정권에 환멸을 느껴 탈출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오늘 은 그 7 번째 순서로 ‘북한감옥에서 다른 수감자에게 전도한’ 이야기 입니다. 회견에는 이현기 기자입니다.

북한 감옥에서 기독교인들을 만나 보셨습니까?

한바울: 제가 감옥안에 있을때 제가 있었던 감옥은 널판자를 깔았던 바닥이였는데 그 바닥을 보는 순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왜냐면 그 마루바닥에는 많은 십자가들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해요’하는 글들도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에 나같은 사람들이 또 이미 신앙을 받았던 선배들이 이런 곳까지 왔다 갔구나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기쁨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곳에서 내가 예수님을 전도하는 것이 또 전도해야만 하는 것이 내 할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해 가지고 내가 그 감방 안에서 전도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북한감옥에서 다른 수감자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무섭지는 않으셨습니까?

한: 저한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그 사람들 위해서 전도를 했는데 전도하고 보니까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입만 터지게 되면 나는 이미 목숨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 내가 교회를 다니고 교회를 다니니까 어떻게 좋더라 등을 이야기 하면서 예수를 믿을때와 안 믿을때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한 내 감정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만 그분들이 정말 그런가하고...

또 자신들도 이제 중국에 가면 꼭 교회에 한번 가겠다고 했는데 그분들의 기본 목적이 그런 신앙을 접하자는 것보다도 내가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면서 남기는 그 밥을 얻어먹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를 해놓고도 제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입만 터지게 되면 저는 이미 끝나는 상황이였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우리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나오는 날 까지도 그 입을 막아 주시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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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3

금년 1월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한바울씨는 북한 인민군에서 14동안 군관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형이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하고 또 북한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구걸행각을 하는 것을 보고 북한정권에 환멸을 느껴 탈출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오늘 은 그 6 번째 순서로 한 씨가 보위부 요원들에게 체포돼 모진 학대를 받은 이야기 입니다. 회견에는 이현기 기자입니다.

탈북자 신분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려고 북한 국경을 넘다 보위부요원들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한바울: 제가 더 은혜스런 것은 무엇인가하면 북한요원과 긴밀히 접촉한 조선족이 내가 중국 안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저를 취급하는 과정에 그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 있었고 제가 조선에 갈 때 손에 들 수 있는 70여권의 성경책과 예수님의 초상화가 달린 목수건 100개정도 전도 용지만도 수십 가지를 가지고 갔습니다.

제가 입었던 옷들, 칫솔 등 이 모든 생활필수품들이 다 한국물품들이였습니다. 그러니까 보위부에서는 저를 보고 큰놈 잡았다하면서 무조건 나를 죽이려고 계 &# xD68D;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느 사람들보다도 더욱 가옥하게 취급을 받기 시작하고 엄청난 매를 맞으면서 제가 버티기를 시작했고 제가 요행스럽게도 제가 중국에 있을 때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숨 길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의 행한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OO에서 제가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OOO으로 들어와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갔으니까 그분들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위부가 저의 형체를 알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중국에 파송을 해 보았지만 제가 중국에서 어디에 있었다고 진술된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있었다고 말한 것은 모두 거짓말 이였기 때문에 저에 대한 형체를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3,500달라 덕분에 정치범수용소로 가지 않고 경제범으로 처리됐다는데 그 과정을 소개해 주시지요?

한: 11월 20일에 잡혀가지고 다음해 4월 15일까지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 제가 그때 살아났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이 없이는 살아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감방 안에서 40일 &# xB3D9;안 금식 기도를 했으며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해로 살아났고 그래서 4월 17일 날 금식기도가 끝나서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하나님이 나를 정치범으로부터 경제범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그때 바로 그 사람들이 주었던 3,500달라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4월 25일을 맞으면서 그분들이 무언가 음식을 차리고 명절 때 바치는 돈이 있는데 그걸 바치자니까 저희들의 힘으로는 너무나 힘이 부치고 그때 가지고 있었던 것이 나에게서 회수했던 현금 3,500달라였는데 그 돈을 가지고 저를 담당했던 취급자와 과장하고 무산군 보위부장 등 3명이서 그 돈을 나누어 가진 것입니다.

저는 무산군 검찰소로 이관되어 있는데 그 검찰소로 이관되면서 저에게 증거품으로 넘어온 것은 몽땅 거짓말 지폐였습니다. 당시 이 증거물들이 확실하냐고 물어볼 때 저는 틀린다고 나는 그때 은행에서 돈을 금방 가져왔기 때문에 이 돈이 가짜 돈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하니까 저를 담당했던 취급자가 하는 말이 아직도 너는 뭘 모른다고 입을 잘못 벌었다간 목숨이 끝난 줄 알아라, 이걸로 마무리를 지어--- 그래가지고 저는 할 수없이 진술서에다 내가 가지고 왔던 돈은 가짜 지폐였노라고 사인을 해 가지고 무산군에서 취급을 받다가 7월 15일 날 재판을 받아 00교화소 3년형을 받았습니다.

그때 2000년도가 되면서 마침 8월 15일과 10월 10일을 맞으면서 대사령이 떨어 졌는데 그 대사령에 제가 적용이 돼서 제가 노동교화소에 가지 않고 구류장에서 출소되어 다시 중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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