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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북한에 납북되어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납북고교생 부모들이 4일 한자리에 모여 죽기 전에 가족상봉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정부가 힘써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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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고교생 최승민씨의 아버지 최준화씨 이민교씨의 어머니 김태옥씨 - RFA PHOTO/이현기

최승민 씨의 아버지 최준화 씨는 남한정부의 납북자관련 정책에 머리통이 흔들린다고 호소했습니다.

최준화: 내 심정은 한마디로 해서 답답해요. 남한정부는 북한에서 하자는 데로 끌려 다니는 것 아주 머리를 절린 사람이에요. 00장관시절 그 장관이 우리 집에 왔을 때에 답답해 머리 터져 죽을 것 같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고.

남한은 비료다 쌀이다 돈이다 다 보내면서 여기서는 이산가족만 이야기를 하고 장기수 저기에서 보내라고 해서 보내고서는 여기서는 이산가족만 가지고 따지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이야? 아주 머리 터져 죽을 지경이라고 하면서---장관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야기하니까? 우에서 하니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니 뭐라고 합니까? 답답한 것은 납북자가족의 머리통만 터지는 일을 뿐이지! 이런 실정이요.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신찬을 처지예요.

이민교 씨의 어머니 김태옥 씨는 이번 장관급회담을 통해 가족 상봉의 길이 트이기를 바랬습니다.

김태옥: 김영남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우리가 예측을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어요. 자기가 살려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에서나 국민들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는 정부에서는 어떻게든지 우리 남은 가족들 부모들은 연로해서 얼마 살지 못하니까? 정부에서 어떻게든지 장관급회담할 때 납북자문제를 거론해서 상봉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살았을 때 최성민 아버지나 저나 80이 얼마 안 남았는데 살았을 때 얼굴을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눈물) 그것만이 바램입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북한의 확인불가 통보를 받은 분은 남한에 오게 했다고 강조합니다.

최성용: 이제는 정부가 다 털고 학생부터 시작을 해서 생사확인을 해야 하고 만일 회담장에서 납북자문제를 북한에 거론해서 북한의 반응이 없을 때 거꾸로 남한당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북한에 강력히 납북자문제를 거론해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납북자 학생들 ‘확인불가’ 같은 것은 정부가 절대 용서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자기 내가 잡아 가놓고 확인불가라고 통보해주는데 지금의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작년에 확인불가능 통보를 받은 고명섭씨를 남한에 오게 했지 않습니까?

지난 1968년에 동해안에서 납북된 김인철 씨의 누나는 납북될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김인철 씨 누나: 그 당시에 건강하고 착실하고 학교에서 모범생 이였어요. 부모와 식구들이 반대를 하는데도 한번만 갔다 오겠다는 게 그 날이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인철아! 누나인데 많이 보고 싶다. 건강하게 잘 있다니 고맙고 어서 만나 보자. (눈물)

서울-이현기

신고
2006-07-03

현재까지 북한에 납치된 5명의 고등학교 학생 이외에도 지난 68년에 동해안에서 납북된 고교생 1명이 생존해 있으며 고등학교 학생 납북자는 모두 6명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3일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68년 동해안에서 납북된 어부 김인철씨는 실제로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면서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성용: 오징어 배를 타고 항해 중 납치된 고등학생입니다.

최성용 대표는 ‘당시 선원 31명 가운데 25명은 귀환했고 김인철군과 나머지 선원들 6명은 북한이 억류 시겼다’면서 당시 김인철군은 학생신분 이였기 때문에 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성용: 학생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달리 이용을 한 것 같습니다.

최 대표는 또 이번 김영남 씨 가족상봉과 관련해 ‘어머니와 누나 영자씨만 상봉하고 두 형과 또 다른 누나 1명은 상봉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김영남씨가 평양에 가족을 초청할 시 전 가족이 상봉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최성용: 다 요구를 했거든요. 그러나 북쪽에서 선뜻 응하지 않았는데.

최성용 대표는 또한 김영남 씨가 남한 고향방문을 원할 시는 납북자가족모임 주관으로 초청해 남한 고향에서 ‘가족상봉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성용: 김영남군을 단체 대표 입장에서 고향방문이 성사 되게끔 촉구 하겠습니다.

한편 최성용 대표는 이제 ‘납북자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구색 맞추기 식으로 끼워 넣을 것이 아니라 별도 상봉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즉각적인 송환이 어렵다면 상봉만이라도 시급히 추진되기’를 바랬습니다.

서울-이현기

신고
2006-07-03

지난 1977년부터 78년 사이 납북돼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5명의 고교생 외에도 1968년 동해안에서 고등학교학생 한명이 납북되어 현재 북한에 살고 있다고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지난 1968년에 수산고등학교 학생이 납북되어 지금도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납북이 됐습니까?

최성용: 정부에서 발표한 납북자가 489명인데 김인철씨가 명단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김인철씨는 어민이 아니고 강원도 주문진수산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여름방학 때 어촌봉사의 일원으로 바다에 나가 일을 돕기 위해 오징어 배를 타고 항해 중 납치된 고등학생입니다.

당시 북한에 납북된 뒤 송환되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됐습니까?

최성용: 배가 끌려가서 선원 31명 가운데 25명은 귀환했고 김인철군하고 나머지 선원들 6명 북한에서 억류를 시켰지요. 당시 김인철씨는 학생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달리 이용을 한 것 같습니다.

김인철씨는 북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최성용: 제가 전해들은 그대로 전하기는 곤란하고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고... 북한에서 현재 생활에 열심히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소식통이 온다고 해서 전부 정확한 것은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알려진 납북고교생들은 다 살아 있습니까?

최성용: 한 사람만 불투명한데 다 살아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납북 고교생들을 포함해서 납북자들을 정부차원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기를 원합니까?

최성용: 이산가족 상봉에 포함시켜서 80여 가족이 확인을 했는데 확인 불가능이 51명입니다. 나머지는 사망이 있고 이번에 김영남씨처럼 13가족이 살아있다고 북한에서 알려왔기 때문에 (이런 식 보다는) 별도로 하자 납북자만 따로 하자! 또 남한에는 현재 납북자처럼 아픈 추억을 가진 국군포로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 하고는 같이 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으로 하지 말고 (그렇게 함으로서 확인 불가능이 나오고 그러지 않아요)따로 좀 하자 북한도 이제는 생사확인도 해주고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대로 정리를 하고 했으면 하는 게 저의 소망이지요.

김영남씨 가족들은 재상봉과 관련해서는 어떤 반응입니까?

최성용: 영남군이 8월중 가족들을 초대한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가족들은 만나보고 싶어 하고 이번에 처음으로 이뤄진 것 같아서 가족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그 가족은 그렇게 원하고. 간다하더라도 평양축제에 참여하는 것에는 반대를 했어요.

영남이가 불러서 자기 사는 것 보여주고 하는 것들은 좋지만 축제에 참여해 시켜 가지고 정치적인 행사하는 것은 금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남한 고향에 와서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북한에서 고위직에 있으니까? 잘 알겠지요. 고향방문도 하고 납북자문제가 더 알려지면서 이런 아픔도 있구나. 어차피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풀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램 인데 가족들이 원하면 정부 측에 요구를 해보겠고 북한측에는 제가 요구해봐야 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서 만나면 풀어지고 또 만난사람들도 소식도 듣게끔 북한도 해 줘야지요.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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