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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31)-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31)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제7세 단군 한속(翰粟)왕검 제6세 달문왕검에 이어 왕위에 오른 한속왕검께서는 원년인 기원앞 2047년에 맏아들 우서한(于西翰)을 태자로 봉했으며 재위 54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타고난 후덕한 인품으로 어진정치를 펴며 백성들의 어려운 면면을 살피는 반면 인접국가인 하 (夏) 나라와의 관계 또한 선린관계를 유지하였다. 그것도 하나라의 정치와 법도가 몹시 어지러워 국력이 위축되었으므로 이 때에 쳐서 손에 넣어 야 한다는 주부(主父) 온백(溫伯)의 권유에도 “공연히 남의 나라를 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며 또 영토를 얻기 위하여 생명을 해치는 것은 어진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며 거절하였다. 그때 하나라는 국력이 쇠약해져 백성은 가난하.. 더보기
스스로의 주술에 빠져들지 말자-이문형(워싱턴 독도수호특별위원회 역사교육위원장) 일본인들의 주술은 ‘다케시마를 탈환하자’이고, 우리 한국인들의 주술은 ‘대응하지 말자’이다. 일본은 매번 공세적인데 비해 한국은 ‘대응하다 분쟁지화가 되면 우리로서는 불리하다’며 묵인으로 일관해 왔다. 그래서, 지금 원래 우리의 영토인 독도가 분쟁지역도 되지 않았고, 세계의 모두가 독도는 한국의 영토다 라고 인정 하고 있으며 지도나 기록들이 한국령 독도로 되어 있는가? 불행하게도 전혀 그렇지를 않다는게 현실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던 독도는 이미 분쟁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1954년 일본이 한국이 일본 영토인 독도를 침략했다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그때부터 이미 영토 분쟁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한국이 국제관활권을 수용하지 않았기때문에 일본의 제소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나 분쟁지로 부..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30)-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30)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에, 환국(桓國)에는 오훈(五訓)이 있었으니 교육의 지표로 삼아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바탕이 되었고 또 신시(神市)에는 오사(五事)가 있었으니 아래와 같다. 五 訓 誠信不僞(성신부위) : 성실하여 거짓이 없어야 한다. 敬勤不怠(경근부태)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孝順不違(효순부위) : 효도하고 순종하여 부모에게 어김이 없어야 한다. 廉義不淫(염의부음) : 깨끅하고 의로워 음란하지 말아야 한다. 謙和不鬪(겸화불투) : 겸손하고 온화하여 다투지 말아야 한다. 五事 1, 우가(牛加)는 곡식을 주관하고 2, 마가(馬加)는 임금의 명령을 주관하고 3, 구가(狗加)는 형벌을 주관하고 4, 저가(猪加)는 병을 주관하고 5,..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9)-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9)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지난 칼럼에서 우리민족의 여러 명칭이 통일되지 못한 아쉬움과 단군조선은 물론 그 앞 1565년 간의 신시 역사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명칭 天孫族(민족)을 선호한다고 했는 데 훗날 민족의 개념에 관해 상론할 때에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보기로 하고 본류인 제6세 단군 달문(達門)왕검으로 돌아간다. 원년 무인년(기원 앞 2083)에 보위에 오른 임금은 태어나면서부터 남다른데가 있더니 자라면서 더욱 성덕을 갖추었는데 보위에 오른 뒤 온 나라를 덕으로 다스려 악한사람 이 없었다. 여러제후들에게 군사를 잘 훈련시켜 나라의 경계를 잘 지키게 하고 공화(共和)로서 정치의 공론을 삼고 의결에 있어서는화백(和白:만장일치 제도)으로 하는 등 어진정치 를 펴며.. 더보기
부끄러운 건 부모된 우리 어른이다.<3>- 이문형(워싱턴문인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금 중국인들이 한국인들만큼이나 자신의 역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 고 있다는데 중국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역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중국인들의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국상고사에 대한 역사와 문명의 강탈이 전세계에 들통나는 그것 을 더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중국인들의 문명은 동아시아 최초의 문명도 아니고, 중국이라는 민족국가 성립의 자체가 중국 이전의 마고문화적 한국인들의 통치를 무력으로 뒤업고 세워졌다는 이 사실이 밝혀질까 봐 두려 워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본 것을 더 믿는다. 어쩌면 사고의 세계(思界)보다, 체험의 세계, 즉 보고 배우는 세계(眼界)가 더 확신을 줄 것이다. 그래서 코너씨가 한국에서 무엇을 .. 더보기
부끄러운 건 부모된 우리 어른이다.<2>- 이문형(워싱턴문인회)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국을 방문한 교황사절단이 한국의 많은 인쇄기술의 기록을 가져가 친구인 요하네스 구텐 베르크에 전달하였다고 하였다. 그 구텐베르크는 1445년 C. 후에리의 원조를 받아 인쇄공장을 재건한 후 금속활자를 사용 하여 성경을 출판하였다는 얘기이다. 이러한 사실을 스위스 박물관에 가 보고서 알게되었다 고도 하였다. 스위스 박물관은 잘 모르겠으나 파리의 국립도서관에는 1377년(고려 우왕 3년)에 금속활자로 찍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구텐베르크 보다 78년 앞섬)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 받은 고려의 ‘직지심경’이며 이 직지는 ‘2001년 9월 유네스 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에.. 더보기
부끄러운 건 부모된 우리 어른이다.<1>- 이문형(워싱턴문인회) 미국 교과서에 한국역사가 대폭 추가된다고 합니다. 한국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과 농업기술과 불교 전파 내용을 비롯해서 10세기 일본의 귀족층이 한국 문화를 기반으로 일본의 고유문명을 개발했다는 내용까지 실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교과서에 소개된 ‘2차대전의 원인과 결과’에 연관된 한국전쟁(10학년 세계사)이 유일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의 이 결정은 가히 파격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얼마전 ‘한국 역사.문화에 어두운 2세들’이라는 제하의 글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은 바 있었는데 그 것이 불과 1개월여 만에 감동으로 다가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 충격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비교하여 유독 한인학생들이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 데 놀랐다는 한 미국인 교사의 얘기로 비롯되었습니다..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8)-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8)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배달. 동이겨레(안호상), 쥬신족(김운회), 천손족(김종서) 그 밖의 조선, 배달나라 등, 민족의 다양한 명칭이 통일되지 못한 탓으로 우리 상고사 이해에 미혹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디 수백년, 몇천년의 역사얘기인가, 단군조선 앞 환국, 환웅의 신시까지도 아우르는 상고사 에 합당하다고 판단되어 필자가 선호하는 명칭은 천손민족(天孫民族) 이고 그 선호하는 근거와 이유를 들어보겠다. 민족에 따라 산과 들, 물과 바위, 소와 돼지 혹은 개까지 그 숭앙하는 대상이 수도 없이 많은 데 우리민족처럼 하늘, 하늘임금을 우러러 숭앙하는 민족은 없다.우리민족은 슬퍼 도 기뻐도 하늘을 보며 한탄하고, 하늘을 보며 감사 한다. 그것이 설령 자연발생적 신앙..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7)-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7)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지난 칼럼에서 미처 설명치 못한 조의(皁衣)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다 소위 검은색 조복을 입은 선가(仙家)로서 고구려 전기에도 조의라는 벼슬이 있었으니, 이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교육기관인 경당(扃堂)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전통적인 생활과 수련을 하는 조의선인(皁衣仙人)들이 폭넓게 기층을 형성하고 있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인재 등용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갖춘 체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고유경전 중의 하나인 삼일신고(三一 神誥)에 근거를 둔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 촉(禁觸), 곧 삼법수행 (三法修行)을 하여 어느 경지에 도달한 자를 조의라 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인식으로 강렬하게 남아 있는 날세고..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6)-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26)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각 가정에서 집집마다 잠자리의 바로 벽 위에 박달나무로 만든 못을 박고 종이로된 주머니를 걸어 두거나 깨끗한 흰 쌀을 가득 담고 삼신주머니’라 불렀으며 종이주머니 대신 흰 항아리를 놓아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삼신항아리’ 또는 ‘삼신단지’라고 불렀다. 또한 앞선 칼럼에서 밝혔듯이 울타리를 친 깨끗한 곳에 흙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토기에 곡식을 담 아 제단 위에 놓아 볏짚으로 지붕을 이어 그것을 덮어두고 매 10월마다 반드시 새로운 곡식을 올리 는 것으로서 ‘부루단지 (夫婁壇地)’ 혹은 ‘업주가리(業主嘉利)’라고 이름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군조선 의 2세 단군이신 부루단군께서 홍수를 다스리고 거처를 정하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