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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스스로의 주술에 빠져들지 말자-이문형(워싱턴 독도수호특별위원회 역사교육위원장)

일본인들의 주술은 ‘다케시마를 탈환하자’이고, 우리 한국인들의 주술은 ‘대응하지 말자’이다.

일본은 매번 공세적인데 비해 한국은 ‘대응하다 분쟁지화가 되면 우리로서는 불리하다’며
묵인으로 일관해 왔다
.

그래서, 지금 원래 우리의 영토인 독도가 분쟁지역도 되지 않았고, 세계의 모두가 독도는
한국의 영토다 라고 인정 하고 있으며 지도나 기록들이 한국령 독도로 되어 있는가
?

불행하게도 전혀 그렇지를 않다는게 현실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던 독도는 이미 분쟁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1954년 일본이 한국이 일본 영토인 독도를 침략했다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그때부터 이미 영토 분쟁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

물론 한국이 국제관활권을 수용하지 않았기때문에 일본의 제소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나 분쟁지로 부각시키는 전략에는 충분히 성공한 것입니다
.

그에 더하여 일본은 치밀한 계획과 끈질긴 로비로서 국제적 인식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무대응이라는 주술에 걸려있는 동안 그들은 “다케시마 탈환”이라는 목표에
상당히 접근해 있으 며 그들의 목표인 “다케시마 일본 영토”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

일본의 시마네현은 매년 1월 중순이 되면 222<다케시마의 날>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각 상점에 독도가 일본 섬 다케시마로
제작된 지도를 나누어 주어 부착 하도록 하며
, 일본의 우익들을 선두로한 시위대들이
방송차를 앞세우고 소도시의 골목 골목을 돌며 “일본 영토 다케시마를 탈환하자”라고
외치고 다닌다 합니다
. 또 외무성에서는 “독도가 왜 일본 영토인지”를 연구하는 연구비
지원을 해마다 늘리고
, 현청앞 마쓰에 중심가를 지나는 모든 이들이 볼 수있는 곳에
전광 판을 설치하여 “돌아로라 다케시마여”를 비롯
, 갖가지 애절한 문구들이 1365
돌아가도록 하고
` 있다고 합니다.

시마네현을 앞세운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언론과 국민이 한통속이 되어 우리의 섬
독도를 일본섬 다케 시마로 만드는데 공일이 없는 실정입니다
.

우리가 오늘 점잖케 무대응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광분때문 만은
아닙니다
.

우리가 오늘 이 워싱턴에서 독도의 날 선포식을 기념하는 이유는 그들의 광분을 묵인으로
일관한다면 우리의 독도가 어느날 일본의 다케시마로 변하는 날이 있을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뜻을 합하자는 것입니다
.

지난 512일 한국을 방문했던 이스라엘 총리실 산하의 지명위원회 위원장 모세
부라워
(90)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세계지리를 연구 했지만 영어나
희브리어
, 아랍어 등 주요 언어로 된 세계 지리책 의 대부분이 “다케시마”로 표기된 만큼
독도 표기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역사적 과학적 근거를 끊임없이 국제사 회에 전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실지로 그는‘텔아비브 주재 한국대사로 부터 ‘다케시마와’와 “동해” 표기의
문제점을 지적받은 뒤 다시 연구한 끝에‘다케시마’표기가 오류 임을 때닫게 되었고
이스라엘 지도제작사에 지시하여
20086월 개정판에 처음으로 “독도 표기”가
반영됐다’며 “동해”의 표기문제도 “한국해”나 “한국의 동해”로 바꿔 표기해야
국제사회에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

결론적으로 국제법에 묵인이라는 영토문제에 관련된 일반원칙이 있는데, 자기나라의
영토에 대한 상대방 의 도발에 가만히 있으면 묵인으로 간주된다
. 묵인은 곧 상대방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

그것은 최근 싱가포르와 말레시아 사이의 “페드라 브랑카” 섬 분쟁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싱가포르가 주권자의 자격으로 행한 일에 말레시아가 오랫동안 묵인했다”는 이유로
싱가포르 영토로 인정한 일이나
(이 섬은 싱가포르보다 말레시아에 매우 가까움)
타일랜드의 “뜨라야 비히어” 흰두교 사원의 경우도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은
냉엄했습니다
. “타일랜드는 오랫동안 잘못 제작된 지도를 묵인했고 타일랜드 하급군대의
주둔은 영토분 쟁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즉시 철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17세기 말의 안용복, 1906년 당시 울도군수 심흥택등의 독도 지키기 노력과
1953420일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30여명의 울릉도 주민으로 조직된
“독도 의용수비대”는 무려
50여회의 전투를 치르면 서 독도를 지켜냈으며, 경위 주재원,
수경 권오광, 상경 김영수, 경장 이이출, 경사 허학도 등은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경비대
근무중 순직한 분들입니다
.

오늘 워싱턴에서 울려퍼지는 독도수호를 위한 우리의 외침은 이분들의 숭고한 독도지키기
열정으로 승화 되어 세계인의 가슴 속에 깊히 새겨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