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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31)-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31)

                                    <참역사문화 운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7세 단군 한속(翰粟)왕검

6세 달문왕검에 이어 왕위에 오른 한속왕검께서는 원년인 기원앞 2047년에
맏아들 우서한
(于西翰)을 태자로 봉했으며 재위 54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타고난 후덕한 인품으로 어진정치를 펴며 백성들의 어려운 면면을
살피는 반면 인접국가인 하
() 나라와의 관계 또한 선린관계를 유지하였다.

그것도 하나라의 정치와 법도가 몹시 어지러워 국력이 위축되었으므로 이 때에
쳐서 손에 넣어 야 한다는 주부
(主父) 온백(溫伯)의 권유에도 “공연히 남의
나라를 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며 또 영토를 얻기 위하여 생명을 해치는
것은 어진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며 거절하였다
. 그때 하나라는 국력이 쇠약해져
백성은 가난하며 군사는 약하여 그 나라를 정복하는 일은 손바닥 뒤집는 일만큼
쉬운 일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하나라 왕이 한속왕검의 말한 바를 전해 듣고는 감동한 나머지 사자를 보내어
크게 사례하였다
.

나라 안에서는 아슬(阿叱:꾸짖을 질)이란 자의 반란이 있었는데 3년 여만에야
여로
(黎老)가 아슬을 사 로잡아 난이 평정되었으나, 흉년까지 겹치자 백성들의
어려움이 커졌고 이를 본 임금은 곡식을 풀어 백성을 구제하는 한 편 세금을
반으로 탕감해 주 는 비상대책 으로 백성 들을 돌봤다
.


임금께서는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평화를 유지하는 한편 하나라의 국경에
접해 있는 남쪽의 남후
(藍候)에게 명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도록 하였으며,
백성을 혼란케 하는 사술이나 요사 스러운 술사들을 단호하게 멀리하였다.

그 한 예를 들어본다. 계해년(기원앞 2038) 어느날 방사(方士)
윤파로(尹巴老)가 신선 술에 관해 설파 하였는데 임금께서는 ‘
인간이 어찌 신선이 될 수 있겠는가
, 다 요사 스럽고 세상을 속이는 일이니,
감히 군자의 도와 함께할 수 없는 일이다’고 하시며 그 를 멀리하였고
이 일이 있고나서는 외부로부터의 요사스럽고 괴상한 술사들이 다시는
가까이 하지를 못하였다고 한다
.

임금이 재위 54년이 되는 정미년(기원앞 1994)에 세상을 뜨니 태자 우서한이
보위에 올랐다
.


8세 단군 우서한(于西翰)왕검

단군 우서한 왕검은 선한 정치로 나라를 안정시키면서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한편으로는 군사 들을 훈련 시키는 등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 포부와 야심이
큰 임금이었다
.

임금은 태자로 있을 때부터 웅대한 배포와 큰 도량이 있었으며 덕이 높아
백성들의 우러름을 받았다고 한다
.

그 역시 원년인 무신년(기원앞 1993)에 맏아들 아술(阿述)을 태자로 봉하였고
선왕들의 세금제 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현실에 맞지 않음을 알고 백성들의
형편을 자세히 살 피게 하여 세제개 혁을 하였다
.

기록에 의하면 201을 받는 세법을 정하고 이를 널리 폈다는 것이다.
(
환단고기, 단기고사 에는 201로 되어 있으나 규원사화에는 901
되어 있음
)

특기할 만한 일은 갑인년(기원앞 1987)에 세발 달린 새(三足烏:또는 三足鳥)
궁중에 날아들 었는데 날개의 너비가 석자나 되었다는 것과 임금이
백아강
(白牙岡: 마한의 수 도)에 머물면서 네집을 한 구()로 묶어
토지를 나누어 주면서 각 구마다 말 네필이 끄는 수레 한대씩 분배
하여 향토방위를 분담케 하였다는 것이다
.

그 밖에 평복차림을 하고 하()나라에 들어가 지리, 정치, 풍속, 백성들의
사정을 살피고 반 년만
(180)에 돌아와 여기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관제(관제)
능률적으로 개혁을 단행 하면 서 사회기강도 튼튼히 다졌다
.

그의 천하통일을 위한 포부가 유난 했지만 그는 불행이도 단군조선 역대 최
단명의 임금이 되고 말았다 보위에 오른지 단
8년만인 을묘년(기원앞 1986)
세상을 뜨면 서 왕의 꿈도 함께 사라졌다
.

여기서 당시 하나라와의 정세를 좀더 객관적으로 정리해보기로 한다.


선왕, 7세 단군 한속왕검 전반기 무렵의 ‘하’나라는 정치와 사회법도가
몹시 어지러워 국력 이 쇠약해졌으며 이 때에 쳐서 정복하자는 의견이
팽배했으나 군자의 몸가짐과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에 어긋남을 들어
거절하였고 이를 보면서 성장한
8대 우서한 왕 검은 하()나라 토벌의 꿈을
가졌었고 그를 위한 준비도 해나갔으나 일찍 세상을 뜨 면서 그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

훗날 하나라가 점차 안정을 회복하고 국력이 보강되면서 단군조선에게는
또다른 위협이 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