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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북한 선전화가들 삶 증언 송벽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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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화실에서 작품 활동하고 있는 탈북화가 송벽 씨.     사진-송벽 화가 제공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선전화가로 활동하다 배고픔에서 벗어나려고 2002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송벽 화가는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북한에서는 예술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화가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창작 활동할 수 없으며, 오직 북한 정부가 요구하는 그림만 그려야 한다’고 증언했습니다. 송 화가는 북한에서의 끔찍한 경험을 담아 한국인들과 전 세계인들에게 북한의 참상을 전하기로 2011년 다짐한 이후 지금까지 4차례의 해외전을 가졌으며, 오는 6월 영국에서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고 또 독일 자유의 광장에서도 전시회를 갖기를 소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6월 영국 전시회는 탈북자 단체들의 초청으로 전시회를 갖게 될 것 같다면서 자신이 직접 겪은 고통과 처절한 삶을 지금도 북한 사람들이 겪고 있어 앞으로도 북한의 처참한 삶을 그림으로 그려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송벽 작가는 북한에서 선전화를 그리던 때를 생각하면 허구의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 북한에서 제가 있을 때는 본래 예술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의지대로 그림 그리고 작품화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북한 정부에서 제게 조그만 용지에 지시가 내려와요. 이와같이 똑같이 그려야 된다고요. 그걸 가지고 큰 대형 캠버스에다 옮겨 그림 그리거든요. 그 그림 그리면서 내 의지대로 무엇을 삽입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고요. 그대로만 그려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정부에서 나를 잡아가지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구호도 많이 나오거든요. 위대한 김일성 동지 뭐 삼가 축원합니다. 김정일 동지 삼가 축원합니다. 그런 글도 나오는데 거기서 글자 하나 잘못 쓰면 잡혀가거든요. 제 주변에 있는 분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 이런 글을 썼는데, 대형판에다 글을 썼는데 글을 쓰다가 한 자를 빠뜨릴 때가 있어요. 그 사람 그걸 모르고 설치 했는데 아침에 근로자들이 출근하다가 그걸 보고서는 보위부에 즉각 문책해서 그날로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항상 글을 쓸 때에는 항상 긴장했어요. 다시 한 번 보고 글자도 하나하나 세면서 그런 삶을 살다가 한국에 와서 작가로서 지금 이렇게 살지만, 저도 어떻게 그렇게 살아 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여기서는 자유스럽지 않습니까? 내가 자유스럽게 이렇게도 그릴 수 있고 저렇게도 그릴수 있고요. 풍경도 그릴 수 있고 누굴 비판할 그림도 그릴 수 있고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참 이것이 북한사회가 나쁜 것이로구나 내 표현의 자유가 예술의 자유가 없는 곳이 북한사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송벽 작가는 북한 인권화가로 활동하기까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특히나 2011년도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가지고 작품화 했거든요. 통풍구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치맛자락 붙잡고 있는 마릴린 먼로를 보고 아! 김정일과 매치시키면 재미있겠다. 그래 김정일의 얼굴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꾸 북한사회를 감추고 독재정치를 하는 것을 형상화한 겁니다. 그래 밑에는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들이 자유를 달라고 퐁퐁 뛰는 모습을 형상화했고요. 그 시기는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라 그 작품만은 걸지 말라고 사람들이 엄청 요구를 했어요. 너 이 작품 나가면 암살당한다. 죽는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무슨 우리 가족 자체가 김정일 정권에 의해서 먹지 못해 굶어 죽고 우리 가족 파탄되고, 북한 주민 300만이 그 아까운 생명들이 굶어 죽었는데 거기에 내가 무슨 미련을 가지고 누구 말을 듣고 따라서 이 작품을 전시 못 하겠는가! 과감하게 전시를 했거든요. 그리고 제 얼굴도 공표했어요.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도 안하고요. 죽이려 오려면 와라! 그렇지만 나는 이 시대에 동시대에 살아가는 화가로서 누구의 뭐 강압적인 압력, 생명위협을 느낀다 해서 작품전시를 안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랬게 해서 전시했는데 전시하고 나서부터는 그래도 내가 잘했구나! 이런 걸 네가 해야지 누가 하는가! 이런 생각도 많이 들고요. 혼자서 용기를 주기도 하고요. 나 자신에게요. 그렇게 제가 북한 실상을 알리는 북한 인권화가로 자리 잡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 들어요.

 

송벽 씨는 그동안 국내외 많은 언론들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줬다고 말합니다.

 

: 저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어요. 독일 촬영팀, 영국의 BBC방송, 홍콩 촬영팀, 일본 NHK 방송국, 알자지라 방송까지 취재했거든요. 저는 그럴 때마다 내 예술과 작품을 통해서 세계에 알리기 때문에 참 좋다고 생각 들거든요. 그리고 저의 스튜디오에 와서 촬영하면서 자기들 나라에서 전시하자는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그래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요. 이번에도 미국 전시도 한국인이 아니고 한 미군이 2011년부터 관계를 맺었는데 이분이 나의 작품을 계속 봐 왔고 그래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어야겠다. 그래

그 집안 가족들이 출동해서 뉴욕전시회를 시작했거든요.

 

송벽 씨는 앞으로 영국과 독일 전시회도 갖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 전시회 한 번 한번 할 수 있게끔 도움 주신 분들, 도움을 줄 때 뭘 바라겠는가! 이 생각이 들거든요. 이분들 자체가 나의 삶을 알기 때문에 내 과거를 알기 때문에 저에게 도움을 주거든요. 나의 과거를 통해서 북한사람들 도움을 주는 걸 봤거든요. 저는 이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영국에서 섭외가 들어왔고, 앞으로는 옛 동서독 중심에서 전시회를 열 생각이 있거든요. 앞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송 작가는 북한 작가들이 하루빨리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작품 활동하기를 바랬습니다.

 

: 북한에는 진짜 재간 있는 화가들이 많아요. 그분들도 그림을 통해서 자기의 정체성과 자기만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를 그리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못 하게끔 탄압받고 있는 게 북한사회거든요. 오직 그림을 그려도 작품활동을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이를 위해서 그림을 그려야 되며, 자기의 의사 표현 없이 그 사람들 기분에 맞춰서 작품화해야 한다는 자체가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분들도 앞으로 언젠가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 그리고 기법 그들의 재능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줄 때가 있지 않을까 그날이 언제 될는지 모르겠는데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비록 내 혼자만이 자유를 찾아서 왔고 자유를 즐기지만, 친구분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광명의 빛이 비칠 날이 꼭 있다고 생각듭니다. 그때까지 조금 참고 그때 만나서 우리 손에 손을 잡고 그 손에 흰 캠퍼스를 들고 예술에 대해 논의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