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백두산에 대한 남북한의 관점)

 오디오 오디오 (다운받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백두산의 여러 봉우리 중 망천후라는 봉우리는 김일성의 처 김정숙을 상징하는 향도봉으로 바꾸고 장수봉이란 봉우리는 정일봉으로 바꿔버리지요 / 북한이 먹고 살길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적어도 한 5대 산 정도만 개방해서 관광객을 맞이하면 그 수익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인민 경제에 보탬이 될 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백두산(白頭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 삼지연군과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걸쳐있는 화산이다. 중국에서는 장백산, 만주어로는 골민 샹기얀 알린 이라고 부른다. 높이는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머리가 1년 중 8개월이 눈으로 덮여 있는 데다가 흰색의 부석(浮石)들이 얹혀져 있어서 '흰머리산'이라는 뜻으로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두산의 최고봉은 장군봉(將軍峰)이다. 2,500m 이상 봉우리는 16개로 향도봉, 쌍무지개봉, 청석봉, 백운봉, 차일봉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대각봉, 녹명봉, 천문봉, 망천후 등 2,500m 미만인 봉우리도 여럿 있다. 정상에는 칼데라 호인 천지(天池)가 있다.

백두산부터 지리산(智異山)까지 이르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의 기본 산줄기로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 내렸다 하여 예로부터 한민족과 만주족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었고, 환웅이 신시(神市)를 열고 단군이 태어난 성지라 여겨 신성시되었다. 또한, 백두산은 남만주 북동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뻗은 장백 산맥(창바이 산맥)의 주봉이기도 하다.

자유아시아방송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백두산에 관한 이야기로 함께합니다.

9월 하순이면 백두산은 이미 가을 색이 완연하다. 오늘은 민족의 성산이라는 백두산을 둔 남북한의 백두산 찬가를 살펴보는 가운데 백두산 관을 짚어봅니다. 북한은 지난 4월 김정은이 백두산을 올랐다고 보도하더니 8월에는 한국과 표준시를 달리하는 정령을 발표하면서 ‘백두산 대국’이란 말까지 합니다.

먼저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을 어떻게 봤는가요?

임채욱 선생: 네. 백두산은 역사무대로서 조종(祖宗)의 산이고 지리적으로도 조종의 산이지요. 조종의 산, 그러니까 뿌리가 되는 시조의 산이라는 뜻인데 역사무대로서의 조종은 단군이 태어나서 나라를 세운 곳이 백두산이란 인식에 바탕하고 있지요. 또 산맥으로서의 조종은 백두산이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된 우리나라 산맥체계의 최상의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모든 산맥이 백두산에서 시작된다는 뜻이죠. 실제로 그 높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요. 그래서 우리조상들은 백두산을 예로부터 민족의 성산으로 받들어 왔지요. 이를 잘 표현한 시 구절 한 번 볼까요? 우리 종성의 근본이시며/ 우리문화의 연원이시며/우리국토의 초석이시며/우리역사의 포태이시며/우리 이상의 지주이시며/우리 운명의 효모이신 백두대천황전..... 최남선이 1926년 7월 백두산에 올라 읊은 것인데 모든 것의 뿌리고 포옹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요.

남북한에서는 다 같이 백두산을 신성시 합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앞에서 말한 우리 조상들이 본 것에 바탕 해서 여전히 국조 단군이 태어나고 나라를 세운 신성한 곳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지요. 북한에서는 단군이 태어나서 나라를 세운 곳이 평양이라는 주장을 하게 되면서 백두산을 단군과 연결시켜 신성시 하는 일은 없고 오히려 김일성의 항일투쟁 전적지로서 신성시해서 ‘혁명의 성산’이라고 말하지요. 김일성의 항일투쟁의 발자취가 있다고 하고 김정일이 태어난 산이라고도 해서 생전의 김일성은 “백두산은 김일성의 산인 동시에 김정일의 백두산입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해요. 이런 의미에서 백두산은 남한에서는 민족의 성산이 되고, 북한에서는 혁명의 성산이 되지요. 물론 북한에서도 민족의 성산이라고도 합니다만 액센트는 ‘혁명의 성산’에 있지요.

김정은은 지난 4월 백두산을 올랐다고 했는데 그 전 통치자들도 백두산을 올랐겠지요?

임채욱 선생: 올 4월 19일 김정은은 백두산을 올랐습니다. 정상까지 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으니 아마도 정상까지 가지 않았나 싶군요. 김일성은 백두산에 다섯 번 가서 여섯 번 정상에 올랐고 김정일은 일곱 번 가서 아홉번 정상에 오른 것으로 파악됩니다. 김일성은 북한의 통치자가 되기 전에도 그들 주장대로 보천보나 무산지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것이 사실이라면 백두산에는 여러 번 올랐겠죠. 백두산에 갔다고 반드시 정상을 밟았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백두산 삼천리벌이나 혜산, 삼지연, 보천보 등 이른바 백두산 언저리를 돌아 본 일은 여러 번 이겠죠.

백두산 높이가 북한에서 2750m, 남한에서는 2744m라고 다른데 그 이유는? 그리고 제일 높은 봉우리 이름도 서로 다른데 왜 그런지?

임채욱 선생: 그것은 해발의 기준이 되는 수준원점이 서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남한에는 종전처럼 인천 앞바다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원산 앞바다로 바꿨 버렸죠. 원산이 6m 높기 때문이죠. 백두산 최고봉을 남한에서는 종전대로 병사봉이라 하는데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 하고 있죠. 이렇게 된 것은 김정일이 백두산을 최초로 등정하던 1963년 8월 백두산 최고봉이 병사봉이라니까 김일성수령을 활동한 백두산의 최고봉이 병사봉이라는게 말이 되느냐, 당연히 장군봉이여야 한다면서 장군봉으로 바꿔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장군봉이 되는데 여기에서 김정일이 병사봉을 군인 중 계급이 낮은 병사(兵士)로 알았으나 이 때의 병사(兵使)는 조선시대 도 단위 군사를 책임지던 병마절도사의 약칭이죠. 이걸 몰랐던 것 같아요.

병사봉만 이름을 바꾼 게 아니라 다른 봉우리도 바꿨다는데?

임채욱 선생: 네, 백두산의 여러 봉우리 중 망천후라는 봉우리는 김일성의 처 김정숙을 상징하는 향도봉으로 바꾸고, 장수봉이란 봉우리는 정일봉으로 바꿔버리지요. 그래서 장군봉, 향도봉, 정일봉 이 세 봉우리는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을 상징하는 봉우리가 되지요. 그래서 이 산봉우리들은 태평양 섬에서도 보이고 열대림 우거진 남아메리카 강에서도 보이며 아프리카 바닷가에서도 보인다고 북한에서는 말하고 있지요.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남한 사람들은 중국 땅을 밟고 오르는데 북한 땅으로 오를 날도 오겠지요?

임채욱 선생: 2000년 9월에는 남쪽 인사 100여 명이 북한쪽으로 해서 백두산에 오른 일도 있지요. 그 때 남쪽 인사들은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이라고 바위에 크게 새긴 지점을 지나서 올랐고, 천지물가에서 ‘우리의 소원’을 부르고 남북화해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천지는 반쪽만이 북한의 관할이었죠.

천지의 반은 중국이 관할한다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임채욱 선생: 중국 수상 주은래가 1962년 10월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과 협상을 했다는 것인데 천지 서북부는 중국, 동남부는 북한이 차지하도록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1964년 3월 양측 외무장관 간에 국경조약이 맺어졌다고 알려집니다. 이에 따라 천지는 북한이 54.5%, 중국이 45.5%를 차지하게 되고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 16개는 북한이 7개 중국이 9개를 갖게 된 것이죠. 이를 두고 남쪽 인사들이 북한 인사들에게 물으면 북한에서는 백두산의 반을 조상 잘못으로 중국에 빼앗겼다는 투로 말합니다. 하지만 간도 문제라면 조상 잘못이 있되 백두산 자체문제라면 조상 탓할 일이 아닙니다. 조선조 시대에 청나라와 맺은 국경회담에서 간도 땅이 청나라 것으로 된 것과 백두산이 반으로 쪼개 진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죠. 백두산 분할은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켰고 중국이 망해가던 북한을 도왔기에 발단된 문제라는 것입니다.

‘혁명의 성산’이란 이름으로 김일성 혁명사적지가 많다는데 남한 방문객들이 그것을 보는 심정은 어떨까요?

임채욱 선생: 백두산과 관련되는 김일성 항일투쟁이란 것은 대부분이 날조된 것이고 주술같은 것이지요. 통일 후 이런 것들이 밝혀지겠지만, 오늘이라도 백두산을 오르는 남한 사람들은 이러한 날조된 우상화 작업은 반드시 역사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 좋겠지요.

2012년 자유아시아방송의 특집으로 북중 국경 1500km를 가다 세 번째 민족의 정기를 담은 백두산 편이 방송된 바 있는데, 그중 영토학자 조병현 박사가 천혜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백두산을 보며 중국이 아닌 북한을 통해 산에 오르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안타까움을 밝힌 내용 함께 들어봅니다.

조병현: 북한이 먹고 살길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이 적어도 한 5대 산 정도만 개방을 해서 관광객을 맞이하면 그 수익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인민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백두산, 묘향산, 칠보산, 금강산 그 외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다섯 개만 개방해도 체제와 이념과 정치를 떠나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고, 그리고 한 가지 더 남북한 기찻길만 연결시키면 모든 물동량이 유럽으로 실시간으로 가기 때문에 우리도 도움이 되고 북한도 도움이 되고 통과비만 받아도 됩니다. 지금 당장은 기차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남한에서 다 철길 깔아주고 짐 실어 나르면 가만히 앉아 돈만 받으면 돼.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