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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가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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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은 공산정권 초기에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타도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사실이지요.

5월은 한국에서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성년의 날이 들어 있어 가족단위 행사가 풍성하게 열리기도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에서 가정을 이루는 가족문제, 가족문화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민족이 나라를 이룬다면 가족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지요.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생활단위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물질적 기반과 정신적, 심리적 유대를 이루는 가족의식이 존재하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정치라고 한다면 가정을 다스리는 것은 가계(家計)라고 하지요. 각 가정마다 가계가 다 달라서 생활모습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전반적으로는 가정의례라는 준칙 밑에 비슷한 모습을 보이겠지요.

하지만 남북한은 오랜 단절로 가계도 다르고 가정의례도 다르게 된 면이 있겠지요.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관념이랄까, 가족관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분명히 어느 정도는 있지요. 북한은 공산정권 초기에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타도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사실이지요. 사유재산이 없어지는 공산사회가 되면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될 필요도 없고 자녀양육도 의무가 아니니까 가족이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나라가 없어지는 것과 함께 가정도 없어진다는 관점을 가지기도 했겠지요. 이건 엥겔스의 가족이론인데, 이것이 소련에서 흐르시쵸프 시대가 되면서 바뀌기 시작하지요. 무엇인가 하면 사회가 아무리 완벽해도 가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1980년대가 되면 가족이 타도대상이 되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붉은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변화된 가족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회주의적 대가정’이란 것인데, 한마디로 사회 전체를 화목한 대가정처럼 만들자는 것입니다. 가족관계에서 사회주의적 생활양식대로 행동하지만 부모자식간이든가 부부간에 예의를 차리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자는 것이지요. 이것은 사회주의라는 내용은 살리면서도 형식에서는 전통적인 가족관을 따르는 면을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겉으로 보면 한국의 가족관이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겠습니다만 지금이라고 완전히 남한과 같은 가족관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이죠.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에 따른다 했는데 그건 바로 사회주의 사회의 집단우선 원리가 작동한다는 것이죠. 즉 가정이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사회의 한 세포에 불과한 생활의 최저단위라는 인식 위에 있는 것이지요. 규범으로서 집단주의는 살아 있는 셈이지요. 거기에다가 나라 전체가 화목한 대가정이라는 가부장적 국가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온 나라 대가정의 어버이신 장군님께 충성과 효성을 다해야 하며 그것이 모든 가정의 가풍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되고 있지요. 그러나 어떻든 1990년 10월에 제정된 가족법에는 부모공경을 명문화하고 있고 비록 과도기적 사회특성을 반영한다는 단서는 붙었지만, 상속제도 인정하고 있지요. 이런 것은 광복 후 북한에서 공산화가 시작될 때 정책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지요. 가정에서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은 강조되지만, 노부모를 모시는 삼대가족 형태를 미덕으로 여기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가족이란 것은 본래 엥겔스 이론대로라면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결국 사회주의가 가족의 종말을 가져오게는 못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공산주의가 사라진 현재로선 가족이 없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공산권이 자유세계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도 가족은 살아 있었지요. 이런 우스개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미국대통령과 소련수상이 만나서 자기 국민들의 애국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실제로 한 번 시험해보기로 했다죠. 먼저 미국 대통령이 지나가던 미국인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넸지요. “당신은 아메리카의 영광을 위하여 이 절벽에서 떨어질 수 있겠는가” 이 말에 돌아온 대답은 “가족이 기다리는 가정을 두고 대통령의 부탁, 아니 대통령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내가 왜 떨어집니까?”였지요. 그러자 의기양양해진 소련 수상이 소련국민 한 사람을 불러 세우더니 역시 같은 질문을 던졌지요. “사회주의 조국의 영광을 위하여 동무는 여기서 떨어질 수 있는가?” 이 말을 들은 소련국민은 두말하지 않고 절벽 밑으로 몸을 날렸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옷이 절벽에 있는 나무에 걸려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데, 놀란 미국대통령이 구출된 소련 국민에게 어떻게 그렇게 뛰어내릴 용단을 쉽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대답인즉 “우리 가족 때문이지요” 였답니다. 가족을 위한 가장의 마음은 미국시민이나 소련국민이나 다를 바 없었지요.

한국에서 가족관은 한마디로 어떻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죠. 가족관은 부부관계, 자녀관계, 결혼관, 가족형태, 가족크기, 자녀교육, 노인부양, 재산상속 등등에 대한 관점을 합한 것이라고 보겠는데 그게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렵지요. 한국의 경우 편의상 전통적 가족관념과 근대적 가족관념으로 볼 때 부부관계나 노인부양관념은 전통적 관념이 강했으나 다른 부분은 근대적 가족관념이 아주 우세하다고 나타납니다. 가령 결혼에서는 결혼을 안해도 된다, 가족형태는 핵가족이 좋고 가족 크기도 소가족이 바람직하며 아내는 능력대로 외부활동을 해도 좋고 자녀는 엄하게 키우기보다 개성을 살리면서 키우고 재산상속은 형제간 균등하게 분배하고 가족관계에서는 가족 간 개성을 반영한 횡적 관계가 좋다는 응답이 나타납니다. 다만 부부관계에서는 아내는 남편에 순종해야 하고 노인은 자녀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이 우세한 편입니다. 전반적으로는 한국에서의 가족관은 분명히 미래적 가족관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부부관계라든가 노인부양문제에서처럼 전통적 가족관의 모습을 보이는 부분도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한국에서 가족관은 내용별로 지속과 변화가 섞여있는 것이지요.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양에서는 근대형이나 미래형 가족으로 바뀌어 있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전통형 또는 근대형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형태상으로는 미래형 가족관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의식상으로는 여전히 근대형을 보이는 과도기적 성격이 짙다고 하겠습니다.

남북한의 가족관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특성이 나타난다고 보십니까?

임채욱 선생: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아버지는 죽었다”고 하는 시대입니다만 북한에선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다고나 할까요? 북한에서는 남녀평등권이 일찍부터 법제화되고 제도적으로도 고착됐지만 아직도 새대주인 가장의 발언권이 크다고 하지요. 북한 아내들은 ‘가사로부터의 해방’이란 구호를 높이 외쳤지만 가정의 혁명화라는 명분 밑에 자녀교육을 잘 시켜야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지요. 한국의 부부관계가 의사결정에 있어서 지배 • 복종관계에서 평등 • 협동관계로 바뀌었다면 북한은 제도와 관계없이 가부장적 형태를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어떻든 남북한 모두 제도적인 것보다 의식적인 것이 지체현상을 보임으로써 가족관은 여전히 전통적, 근대적, 미래적인 것의 세 층위에 걸쳐 있다고 보겠습니다.

끝으로 미래형의 가족과 가정은 어떤 모습일 될까요?

임채욱 선생: 가정은 가족들이 보람과 행복을 나누는 곳이지요. 어떤 것이 행복이냐 하는 것은 가족에 따라 다 다르지만 우선 생계가 충분히 유지되고 자기 적성실현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이 돼야하고 사회를 위한 일에 보람찬 기여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하는 곳이기를 바라겠지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데 유럽 선진국 국민들은 주말을 쉬면서 하지만 아직 주말을 쉬지 않고 일하는 나라 국민도 많지요. 이런 이야기도 있지요. 독일이나 선진 유럽국가에서는 주말에 출근하라고 하면 “나에겐 가족이 있다”면서 거부하지요. 하지만 개발도상국 사람들이라면 “나에게 가족이 있다”면서 당연히 일하러 주말에도 나가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국 국민이나 북한주민은 어느 쪽에 속할까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