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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3)-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3)

<역사의 뿌리를 찾아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근래 동아시아 청소년들 사이에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일단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하며 지속적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이 가볍지만 않은 것은 그들의 교류 속에서 과거사를 묻어둔 채 앞 날을 설계하는 일에만 비중을 무겁게 한다면 이미 사라지거나 뒤틀려 있는 우리의 고대사는 복원의 길이 요원할 뿐이며 어쩌면 영원히 그 본모습을 그려낼 수 없게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기전 202년부터 서기 220년까지(422년 동안) 조선은 중국의 영토였다고 미국의 세계사 교과서<World History> (Holt Rinehart and Winston. 2000sus. 79)나 한반도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등이 한반도를 약 3100년 전부터 지배해 왔고, 고구려가 그 현도군지역에서 발생하였고, 발해는 고구려에서 나왔으므로 고구려, 발해는 중국 변방국가이다.는 동북공정이나  한반도 남부가 일본의 영토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수용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사 교과서<World History> (Prenfice Hall, 1999, 321)를 언제,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우리의 고대사 복원이 시급하고도 절실한 이유는 결코 옛 땅을 찾아야 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 조상의 위대한 역사문화를 바르게 정립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민족의 기상과 민족의 정신문화를 일으켜 세우자는 것이다. 천손족(天孫族)의 후예답게, 평양이 아닌 요녕성 서부지역 조양 인근지방의 아사달(왕검성)에서 발원한 유구한 역사, 우수한 문화의 복원이 절실하다.

이쯤에서 본줄기로 넘어가자.

 

고기(古記)에 이르되 천제(天帝:하늘임금님)이신 환인(桓因)께서 천자(天子) 환웅(桓雄)이 어지러운 인간세상을 구원하려는 뜻이 있음을 아시고 환웅으로 하여금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치를 펼쳐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한 땅, 삼위(三危). 태백太白)지방을 선택하시어 마침내 칼()과 거울()과 북()등 천부인 3개를 주어 인간세상으로 내려보내셨다.  

 

여기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첫째는 앞서 말한 개천일에 관한 것이며 둘 째가 위 홍익인간의 국가이념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나라의 개천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서기전 3897년의 신시의 개천일과, 하늘의 가르침을 열어 세상을 이치로 교화하여 만인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단군조선의 그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위의 기록에서 보듯 모두 환웅천왕의 신시가 열린 날(개천)과 환웅천왕의 세상구원을 위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단군조선은 단군조선 앞 신시(배달겨레)의 모든 제도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홍익인간의 통치이념이라는 것이 틀렸다고 당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상념키 바란다.

 

또한 천부인 셋은 칼()과 거울()과 북()이다.  칼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라는 의무를, 거울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성찰(自己省察)이 있어야 한다는 경고이며 북()은 백성들에게 제왕의 의지를 전달하고 지휘하는 통치권의 상징이면서 천제(하느)께 제사 지낼 때 북을 두드려 고하는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주관하는 종교 최고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기술되어있다.

천부인 세개를 칼과 거울과 방울, 또는 칼과 거울과 옥으로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신시()와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제왕들을 작은 지역, 집단의 제사장, 혹은 무당으로 폄하하는 것이며, 옥은 부()의 상징일 뿐 천제(天帝:하느님)께서 아들 환웅 거발환(居發桓)에게 세상을 잘 다스리라는 홍익인간 이념에 합당치 않다고 보아야한다. <김종서박사의 신시.단군조선사연구> 위 기술된 내용은 <한단고기>, 고동영의<단군조선 47대사>, 이이회의<우리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농초 박문기의 <맥이> 등이 서로 다르지 않으며 안호상은 <배달.동이는 동아문화의 발상지>에서 한배웅(환웅천왕) 시대의 동아(동방아시아)의 대부분의 땅과 백성이 동이겨레의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은 자주 하늘 아래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탐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를 내려다보니 태백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

여기에서 환웅을 서자(庶子)라고 표현한 것은 맏아들이 아닌 여러 아들 중 하나라는 것이며 환웅이 인간세상을 탐냈다고 풀이한 것은 홍익인간의 이념에 반하는 것으로서 곰과 호랑이와 쑥과 마늘을 등장시켜 역사적 사실(史實:웅족과 호족)을 신화로 왜곡시킨 것과, 단군왕검이 신인 천왕과 곰 출신 여자 사이에 태어나 첫 임금이 되었다고 기술한 것 등과 함께 역사왜곡의 단초가 되었음을 개탄하여마지 않는다. 삼위.태백(三危. 太白)의 위치를 설정하는데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삼위라는 지명을 가진 산은 오직 감숙성 서부의 돈황시 동쪽산인 삼위산 밖에 없는데 태백산을 백두산이라고 하였으며 태백의 뒤에 산정(山頂)을 넣어 태백산 꼭대기 개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세히 설명 하겠다.

한웅은 하늘에서 모든 것을 주재하는 완성자이며 초월의 존재이신 천제(天帝:하느님)의 아들이다.

삼국유사는 이어서 [그가 나라를 다스린 지 1,500년에 주나라 무왕이 기묘년에 즉위하여 신하인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다시 아사달에 은거, 산신이 되어 1908년까지 살았다]는 내용 등 황당무계(荒唐無稽)함에 아연(啞然)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