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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

<역사의 뿌리를 찾아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5세 환웅 태우의(太虞義: 기원앞 33511~3419)

원년, 경인(기원앞 3511)

임금이 백성을 가르치기를, 조용히 생각에 잠기며(默念), 마음을 맑게 닦으며(淸心), 숨쉬는 것을 고르게 하여(調息) 정기를 보전하라 하였다. 이것이 늙지 않고 오래사는 방법이라 하였다.

l  태우의(太虞義) 천왕은 아들 열둘을 두었는데, 맏아들이 6세 다의발 환웅이며 막내 아들이

태호()씨이다. 이분을 복희(伏羲)씨라고도 한다.

l  어느날 삼신의 영이 몸에 내려 만가지 일을 두루 알게 되었다. 그러자 삼신산에 가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卦圖)를 얻었다. 팔괘(八卦)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l  복희씨는 우사(雨師)의 직책을 맡았는데 육축을 하면서 천부경을 바탕으로 환역(桓易)을 지었다. 또 계해역(癸亥歷)은 갑자(甲子)를 세수 (歲首) 로 하는역법으로 고쳤다.

l  후에 복희씨는 청구(靑丘)와 낙랑(樂浪)을 거쳐 진()으로 옮겨 수인(遂人), 유소(有巢)와 함께 서쪽의 제후가 되었다. 그 후손들이 풍산(風山)에 나누어 살며 성을 풍()씨라 했다.

l  여왜()는 복희씨의 여동생이다. 여왜는 복희씨의 제도를 이어 그 자리를 이었다.

l  후에 여왜의 뒤를 이어 신농(神農)씨가 왕이 되었다.

l  임술(임술: 서기앞 3419)에 왕이 세상을 떴다.

      <高東永檀君朝鮮 47代史>

 

여기에서 앞서 설명을 거르고 넘겼던 삼위태백(三危太伯)에 관한 것과 신단수(神檀樹)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겠는데 여러 기록 중에서 좀더 상세한 김종서 박사의 (신화로 날조 되어 온) <신시. 단군조선사 연구>에서 발췌한다.

[…일연(一然)이 삼국유사 <고조선(단군조선) 편의 신시를 건국한 삼위태백(三危太伯)의 뒤에 산정(山頂)이라는 글자를 임의로 넣어(작가 자신이 아닌 편찬과정에서 첨가했을 것이라고…) 우리 천손족(天孫族)의 고대사를 신화화(神話化)하는 데 기여한 결과를 초래… (원문의 한자(漢字) 한자 한자를 풀이하고 설명)… 이상에서 연구.분석한 바와 같이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채록되어 있는 <고기(古記)에 천제(天帝) 하느님(하나님)의 아들 환웅천왕(桓雄天王)이 신시를 건국한 삼위태백 중의 태백(太伯)을 산으로 만들기 위하여 맏 백()자를 흰 백()자로 고치고 산정(山頂)이라는 글자를 가필하였다…… 고로 태백산정(太白山頂) 즉 태백산 꼭대기로 변조되어 있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반도를 벗어난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함에도 여전히 한국 고대사를 한반도 안에서만 한정하여 보려는 시각은 사대주의사관(事大主義史觀), 반도사관(半島史觀), 식민주의사관(植民主義史觀), 조선총독부사관(朝鮮總督府史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태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 몇 개를 소개한다.

한반도의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太白山:1567m), 중국 산서성(山西省) 동북부 북경시 서남쪽에 있는 태백산(太白山:2234m), 하남성(河南省)의 광활한 평야지대에 솟아있는 태백정(太白頂:1140m), 섬서성(西省) 서안의 서쪽에 높이 솟아있는 태백산(太白山:3767m) 등이다.]

*** 보는바와 같이 그 어디에도 삼위태백(三危太伯)의 태백(太伯)은 없다.

[삼위태백의 삼위라는 산은 오직 중국의 감숙성(甘肅省) 서부에 있는 돈황시(敦煌市) 동쪽산인 삼위산(三危山:1947m)이 있을 뿐이다.

다만 서요하(西遼河)의 상류인 노합하(老哈河)와 합쳐지는 강, 석백하(錫伯河) 인근에서 세계 최초로 주석과 동을 합금하여 청동기를 제작한 홍산문화(紅山文化: 서기전 4710~2920)와 하가점하층문화(荷家店下層文化: 서기잔 2500~1600) 가 이 지역에서 무수히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들이 신시 도읍지와 유사하다]

[삼위 (三危)는 높고 험한 산 셋 중의 하나라는 의미가 아니고 <3면이 높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곳> 즉 흑룡강(黑龍江)으로부터 남쪽으로 북경에 이르기까지 약1,600km(지도상의 수직거리)를 길게 뻗은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 대흥안령산맥의 북쪽에서 흑룡강을 따라 동남쪽으로 약 1,250km(지도상의 수직거리)를 뻗어서 동해에 이르는 소흥안령산맥, 소흥안령산맥의 남쪽 끝에서부터 백두산(장백산맥)을 중심으로 서남쪽으로 뻗어서 요동반도 끝까지약 900km에 이르는3대 산맥으로 둘러싸인 만주대륙은 광활한 대 평원지대로 이루어 졌다.  이 대평원지대를 감싸고 있는 3개의 큰 산맥이 삼위(三危)인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그 설명이 비할데 없이 상세하나 여기 다 옮길 수 없어 아쉽다.

[신단수(神壇樹)는 박달나무가 아니라 제천단(祭天壇)이다]에 관한 기사는 다음호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