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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8)-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8)

<역사의 뿌리를 찾아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중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사서로 꼽히는 약 4300(혹은 4200년 전이라는 주장도 있음) 전의 산해경(山海經)에 기록된 치우천왕과 관련된 부분의 해설내용을 간추려 옮긴다.

우선 안호상의 <배달. 동이는 동아문화의 발상지>에서 4200년 전 이라고 한 기록을 보자.

[기원 앞 4500년 앞에 백익(伯益)이 지은 산해경(山海經)에서 저같이 말하였다. 북쪽 크고 넓은 더거친 땅에 한밝산(不咸山)이 있는데 이 땅이 곧 숙신나라(肅愼國)…..조선인 숙신의 위치가 동아의 동북녘임으로 여기에 사는 사람을 통틀어서 곧 동북민(東北民)이라, 동방민(東方民)이라, 동북이(東北夷), 동이(東夷), 혹은 단순히 이()라 하였다….]

또 김종서의 <신시. 단군조선 연구>에서는 [한국인들이 하나님(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연구, 분석이 정확한 것임을 증명해주는 가장 객관적이고 오래된 기록이 <山海經>에 있다.

기원앞 4500여년 전에 동이족의 치우(蚩尤)가 군대를 일으켜서 헌원(軒轅)을 정벌하였다.

황제 헌원이 이에 응룡(應龍)의 군대로 하여금 현재의 하북성(河北省) 남쪽 기현(冀縣)을 중심으로 하남성 북쪽, 산동성 동북쪽, 산서성 남동쪽에 걸친 대평원 기주(冀州)의 들판에서 치우의 정벌군을 치게 하였다. 응룡의 군대가 물로공격하기 위하여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 두었는데, 치우가  풍백과 우사에게 구원을 청하여 그 둑을 터트려 큰 폭풍우처럼 진격하도록 하였다.

황제 헌원이 마침내 천녀라고 부르는 한발(旱魃)의 신()인 발()에게 맡겨서 물로 공격해 오는 것을 그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치우를 죽였다]

산해경 대황북경(大黃北經) 편에서 치우천왕 즉 신시의 14대 환웅 자오지(桓雄 慈烏支)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앞서 환웅 자오지를 치우천왕이라고도 하였으며 기원 앞 2706년에 즉위하여 109년을 재위 하였고 밝힌바 있는데 위 기주의 들판에서의 전쟁에서 죽었다면 이후 헌원과 9 번 이상의 전쟁을 어떻게 치렀을 것이며 151세의 수를 어떻게 누렸겠는가.

그 때 응룡에게 죽었다는 사람은 치우천왕이 아니라 천왕의 아우 치우시였다,  아우 형우였다, 아우 과보였다, 이 세사람이 함께 죽었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다음은 중국인들의 역사기록상의 속성에 관한 내용을 최태영 박사의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에서 인용한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중화라 자처하고 그 외 사방의 타민족은 이(), (), () 혹은 융적이라 하며 오랑캐로 통칭했고, 다른 나라가 중국에 조공하였다는 기록이 많은데 그것은 예방, 문화교류, 공적 무역, 관광 등의 목적으로 왕래한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 또한 조선, 부여 등 주변국에 수천 년간 조공을 바쳐왔다. 중국인은 타국인을 어느나라의 왕이나 장군으로 봉하였다는 기록이 많은데 그것 또한 어느나라가 이미 건국되었거나 어떤사람이 왕위를 계승하였거나 지위 혹은 권력을 이미 차지하여 기정사실이 된 뒤에 일방적으로 자기네가 봉하여 내려주기나 한 것처럼정책적으로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붉은 악마와 치우천왕

치우(蚩尤) 또한 곱지못한 이름이다. 어리석을 치에 더욱 우자를 사용하여 버러지 같은 놈이라는 뜻으로 불렀다.  김운회는 <대쥬신을 찾아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우리 민족의 옛 이름 중 예맥(濊貊)똥오줌 묻은 더러운 짐승(똥고양이)”  흉노(匈奴)입심 좋은 노예물길(勿吉)기분 나쁜 놈동이(東夷)도둑 놈(좀도둑)” 모두가 이런 식이다.

세상의 어느민족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를 수 있겠는가,

이것이 곧 중화주의의 본질일 수도 있다. 중화주의는 중국인에 의한 세계 통치의 정통성을 옹호하고 그 일원성(一元性)을 천명하는 통치 이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가 되자(Be the Reds)”라고 쓰인 빨간색의 셔츠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붉은 악마는 치우천왕의 상징이고 <환단고기> <삼성기>에 의하면 환웅천왕이 건국한 배달국 (신시)의 제14대 환웅 자오지이며 기원앞 2706년에 즉위하여 109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 동두철액(銅頭鐵額), 즉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된 이마를 가지고 화하족(*중국 한족의 전신)을 크게 두렵게 했던 바로 그분이다.

당시 치우천왕(사용하기 싫으나 알려진 이름이니?) 붉은 악마의 상징이 되어 국민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자 우리나라 사학자들은 몇 가지 측면에서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논쟁이 기원 앞 2333년에 건국한 단군조선이 실역사이냐 신화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단군을 뛰어 넘어 단군 앞 역사를 어찌할 것인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치우에 대해서는 중국의 40여 가지 역사책에서 언급되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우리 역사책에는 치우에 대한 언급이 없고 기록이 상세한 책 <환단고기>는 사실기록이냐 위서냐의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 진() () 확인작업에 동참하는 심정으로 상충되어 있는 면면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