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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서양화가 김숙자 씨② "노력은 꿈을이룬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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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1

RFA PHOTO/ 이현기

자신의 일대기를 화폭에 담은 ‘화가의 일생’ 작품 앞에 서 있는 서양화가 김숙자 씨.

대부분 예술가의 세계에는 무명 시절이 있다. 서양화가 김숙자 씨의 삶에도 무명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늘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1997년에 스웨덴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점점 인정을 받게 된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서양화가 김숙자 씨의 그림 세계 제2부 ‘노력은 꿈을 이룬다.’를 함께한다.

김숙자 씨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그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1959년부터 67년까지 서울대학부속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낮에는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 다녔고 미술해부학을 배우기 위해 1년간을 서울대 의대에서 수학한 영재이기도 하다.

그러다 73년에 미국에 온 후로는 본격적으로 미술가의 길을 걷는다. DC 코코란 미대를 나와 스미소니언 국립미술관에서 카피스트 허가를 받아 대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세잔느, 고흐 등 대가의 작품을 모사하며 실력을 키웠다.

지금도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젊음을 구가하고 있다. 김숙자 씨는 특정 소재를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이나 자연 등 마음에 와 닿는 소재는 무엇이든 화폭에 담는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엔 성경 내용을 반영하는 작품, 특히 ‘용서’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숙자 씨는 한국에서 만나본 선교사들을 생각하며 좀 더 큰 희망으로 성장하고자 1973년 미국 이민 길에 나서게 된다. 깊은 마음속에는 대가를 길을 외국에서 키워보리라 다짐했단다.

김숙자: 저의 대가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사회에 대한 적응도 어렵게 되자 저의 마음 가운데 이곳보다는 내가 본 선교사들과 같은 착실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 그리고 선진국에 가서 더 배우고 훈련되어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고 미국 이민을 결정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미국 노동성의 초청으로 빠른 시일 안에 수속이 끝나 1973년 5월에 WASHINGTON에 도착했고 ARLINGTON에 있는 아파트를 얻어 이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김숙자 씨의 이민생활을 어떠했을까? 만만찮은 어려움이 닥쳐왔지만 잘 이겨내면서 남편의 권고로 코코란 미술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하게 됐다고 한다. 아이 돌봄과 바느질 등의 일을 하며 대가의 꿈을 이어간다.

김숙자: 모든 생활이 생각과는 달리 어려움과 모르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음식, 말, 운전, 길 등등 여러 가지가 그랬습니다. 그런 중에 생활비를 벌어야 했지요. 저의 남편은 노동도 하고 EXPO라는 전시장 꾸며 주는 회사에 다닐 때 저는 낮에는 아이를 돌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는 세탁소의 바느질을 했습니다. 그런 형편에서도 저의 남편의 권고로 WASHINGTON D.C.에 있는 COCORAN 미술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하게 되고 또 알링톤 감리교회에서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갖게 되었지요. 코코란 미술학교의 LEON BERKOWITZ 교수님은 저에게 A 학점을 주시면서 말이 잘되면 교수를 할 수 있을 텐데 하시며 나중에 가능하겠다고 하십니다.

김숙자 씨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미술관에서 드디어 대가들의 그림을 보고 다시(재) 제작하는 허가서를 1976년에 받게 된다.

김숙자: 그분은 (코코란 미술학교의 BERKOWITZ 교수) 저에게 SMITHSONIAN ART GALLERY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재제작할 수 있는 허가서에 신원 보증을 서 주셨고 또 제가 사는 COUNTY에 ANNE MURPHY 과장님도 보증을 서 주심으로 허가서를 받아 1976년 재제작의 경험을 얻기 시작했지요. 뿐 만 아니라 ANNE MURPHY 과장님의 주선으로 ARLINGTON COUNTY PUBLIC PLACE에서 제4회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김숙자 씨는 워싱턴지구 한인미술가협회를 창립해 활동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숙자: 1973년 오든 해에 회칙을 만들고 윤삼균 씨와 함께 워싱톤지구 한인미술가협회를 창립하고 섭회부장을 했지요. 그 후 저는 학생도 지도하면서 열심히 작품생활을 했고 미국인들의 미술전시회와 대회(COMPETETION)에 참가했습니다. 그런 중에 BRADDDOCK 침례교회에서 두 차례의 개인전을 더 가졌습니다.

김숙자 씨는 워싱턴 디시에 낡은 빌딩을 구입해 화실을 꾸미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숙자: 교회는 저의 남편이 신학생 시절에 한양교회에서 함께 섬기든 윤명호 부 목사님을 모시고 이곳에서 몇 명의 집사님과 함께 1973년에 워싱턴 중앙 장로교회를 설립했고 저의 남편은 서기 집사로 저는 유년 주일학교 부장으로 봉사했지요. 우리는 ANNANDALE에 집을 사고 이사 와서 그 집을 층축하여 연구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4시간씩을 작품활동을 했지요. 저희는 더 발전하기 위해서 WASHINGTON D.C.에 있는 낡은 3층 빌딩을 사고 저의 남편이 손수 고치고 꾸미느라 고통이 많았지요. 그래도 화실을 꾸며 전시를 하겠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고쳐 1995년 봄에 7회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전시를 위하여 벽 위에 작품을 걸고 있는데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갑니다. 지하실을 먼저 수리하는 중에 서툰 운전사가 지하로 차 몰고 들어와 건물을 부쉈던 일, 은행에 건물 빼앗긴 예 주인이 나타나 자기 집이라고 떼쓰던 일,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왔는지 몇십 트럭을 버리던 일, 버리고 오는 길에 시간이 없어 남루한 옷 입고 장보던 일, 저희 남편이 사다리 높은 곳에 올라가 힘든 일 할 때에 마음조이며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던 일, 도적이 몇 번이나 문 부수고 들어 왔던 일, 수돗물이 없어서 물 가지고 다니던 일, 뒷문에 계단이 없어서 사다리 타고 들락거리던 일, 같이 벽돌 쌓던 일, 겹겹이 붙은 벽지 떼던 일 ,타일 벗기던 일 그래서 손에 못 박힌 일, 카펫 깐다고 트럭으로 실어다 깔던 일, 썩을 기둥 갈 때의 일, 지하실에 난로 놓고 장작불 때면서 고구마 밤 구워 먹던 일, 화단에 꽃나무 심고 거름 주던 일 등등 수많은 일이 머릿속을 지나갑니다.

김숙자 씨는 화실을 꾸미고서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단다.

김숙자: 오 아버지여 우리에게 화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림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시고 더 좋은 작품 할 수 있게 능력 주옵소서! 저는 늘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1995년 7회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미술관(GALLERY) 이름은 MORNING STAR ART GALLERY이지요. 저는 이 전시실에서 5번을 더 전시하여 12회의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김숙자 씨는 1997년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가장 재능있는 미술가들의 초대전에 출품해 금메달을 받았다.

김숙자: 미술책과 인터넷(INTERNET)에 저의 그림이 소개되었고 1997년에는 STOCKHOLM에서 열리는 MOST TALENTED ARTIST COMPRTETION 에 주체 측으로 부터 출품의 초대를 받고 망설였으나 저의 남편의 강한 권고로 작품 INAUGURAL PARADERS와 SEWING B를 제작하여 출품했는데 SEWING B로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김숙자 씨에게 자신의 그림세계를 물어봤다. 워싱턴 일원 공원 물가에서 그림 그릴 때에 자신의 그림에 몰두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고 들려준다.

김숙자: 저의 마음은 지금이 시작하는 때다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히 밤까지도 그렸습니다. 저는 풍경도 좋아하여 WASHINGTON 부근에 있는 공원을 찾아다니면서 그리다가 기자에게 사진도 찍혔고, 물가에서 그릴 때에 구경을 하다가 물에 빠진 사람도 있었지요. 저는 대자연의 변화와 신비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저에게 그림자처럼 항상 함께 하시는 스승님이 계십니다. 제가 비록 바다와 산을 그리지 않더라도 그들에게서 깊이와 무게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고요. 제가 비록 나무와 꽃을 그리지 않더라고 그들에게서 지조와 아름다운 향기 그리고 거느리며 쉬움터를 주는 너그러움을 배웠습니다. 또 제가 해와 달을 그리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제게 빛과 어둠의 조화 그리고 찬란한 광채로 가르쳐 줍니다. 저 푸른 하늘은 높고 넓은 공간을 상상하게 하며 넓은 사랑의 품을 알게 합니다. 그림자 또한 평안과 안정감을 가르쳐 주며 풀과 돌 하나까지도 저에게 숨겨진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또 사철의 바뀜 속에 따라오는 아름다운 채색들에서 그 색마다 숨겨진 독특한 뜻을 알게 되고 그리고 또 생동감이 넘치는 사람의 육체 속에서 흘러나오는 변화 많은 선과 표정 등은 저로 하여금 풍부한 감정과 감 동속에서 그림 그릴 욕망을 미치도록 갖게 해 줍니다.

김숙자 씨는 자신에게 값진 도움은 조물주와 자연이라고 자랑한다.

김숙자: 제가 한 폭씩 한 폭씩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하면 제가 사는 아름다운 대자연과 그것을 만드신 이에게 수업료로 진 빚이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또 보이지 않는 사랑, 용서, 감사 행복 복 등을 많이 그립니다. 제가 작품을 할 때에 저의 남편이 주는 용기와 도움이 컸습니다.

김숙자 씨는 캘리포니아에서 출판되는 미술책에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작품이2010년 수록됐으며 네바다 미술박물관에 3개의 작품이 연구 소장되는 기쁨을 맞고 있다.

김숙자: 2009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출판되는 INTERNATIONAL MASTERS CONTEMPORARY 란 미술책에 초대되어 저의 작품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가 소개됐는데 이 책이 2010년 출판되었습니다. 그 후 SOUTHERN NEVADA 미술박물관에서는 저의 ICM 작가들을 초대하여 2010년 4월 17일부터 약 두 달간 자체 MUSEUM 에서 전시한 후에 저의 작품 공원, 재생, 용서 등 3점이 선택되어 그 박물관에 연구소장 되었습니다.

김숙자 씨는 앞으로 성서를 바탕으로 한 그림을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림세계와 함께 하겠다고 다짐한다.

김숙자: 저는 제가 그리는 그림이 선교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서 구절의 뜻을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저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첫째도 감사, 둘째도 감사, 셋째도 그분께 감사드리며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신 여러 선생님과 우리 가족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서양화가 김숙자 씨의 그림 세계 제2부 ‘노력은 꿈을 이룬다.’를 함께했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