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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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korean_world/fe-hk-05112012131322.html
2012-05-11
한국 국회 여성의원인 박선영 의원을 아십니까? 박 의원은 4년 의회 활동 기간 동안 한국사회에서 잊혀져 간 사람들의 동반자 역할을 해 왔다. 예컨대 사할린 한인들, 중앙아시아의 까레이스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원폭 피해자와 굶주림을 피해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를 위한 문제에 초점을 두고 한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정열을 바치고 있다.
박선영 의원은 또 사단법인 물망초(가칭)를 만들고 북한이탈주민 가운데서도 가장 시급히 돌봐야 할 탈 북 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국군포로 등 탈 북 노인들을 위한 대안학교와 요양원 건립 등을 통해 북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을 증진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연구와 지원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한국 국회 박선영 의원의 탈북자를 향한 사랑 이야기로 함께한다.
박선영 의원은 왜 언제부터 탈북자들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궁금하다. 박 의원은30여 년 동안 탈북자들과 함께했다고 들려준다.
박선영 의원: 제가 기자 생활하고 국회의원 하기 전에 헌법 교수하면서 기자생활 할 때는 월남자 또는 귀순용사라는 이름으로 탈북자들을 취재했고요. 헌법 교수로 있으면서 우리 헌법 2조 2항이 규정하고 있는 재외국민 조항이 사실은 판례의 90%가 탈북자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을 강의하면서 살아 있는 법을 연구하려면, 당연히 탈북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지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도 그 부분을 공부해야 하고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어떤 인간관계에 의해서 제가 관심을 가졌다기보다는 학자적 양심, 그다음 직업윤리와 그 궤를 같이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30년 이상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것이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쭉 연결된 것이고요. 많은 분은 특별하게 우리 가족에게 탈북자나 북한에 친인척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데 그런 연결고리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4년 동안의 주요 활동에서 어떤 문제를 다루었는지 물어봤다. 18대 국회의원 가운데 아마도 가장 많은 연구활동과 세미나 외교 활동을 펼친 것 같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박선영 의원: 제가 국회의원 4년 하는 내내 사실은 탈북자 문제, 우리 역사에서 버려지고 잊혀지신 분들, 예컨대 사할린 한인문제, 중앙아시아의 까레이스키들, 무국적 까레이스키들, 그다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731부대 희생자들, 그리고 시베리아 억류 포로들, 조선인 BC 전범들, 원폭 피해자들, 등 이런 우리 역사에서 희생되고 잊혀지고 버려졌던 분들에 대해서 꾸준히 4년 내내 활동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우리 "역사의 조난자"라고 부릅니다. 제가 만든 말이지요.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 각인이 된 것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만 보도가 올해 들어서 집중적으로 된 것뿐이고요. 이와 관련된 각종 세미나나 자료 발굴, 의원 외교활동, 대정부 질문을 통한 우리의 정책쇄신, 그다음에 입법활동 등을 쭉 해 왔지요. 그런데 우리 언론이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서 또는 정부의 응답 태도에 따라서 언론보도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다 보니까 제가 제기하는 많은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고 언론에서조차 크게 보도가 안 되었었기 때문에 이번에 단식하면서 갑자기 부각된 것처럼 일반 국민이 느끼신 것뿐입니다. 그동안 저는 4년 내내 자료를 발굴하고, 세미나를 하고, 관련된 국가의 정치인들하고 국제 컨퍼런스, 즉 회의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아마 18대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많이 연구 활동과 세미나 의원 외교활동을 한 사람으로 제가 1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선영 의원에게 국회의원 4년을 정리하면서 기억되는 일을 들어봤다.
박선영 의원: 일본군 위안부 관련해서는 2009년에는 1년 동안에 일본을 13번 갔습니다. 13번 가서 일본 의회 안에서 사할린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일본의 자민당이나 민주당 또는 심지어 공산당 의원들과도 컨퍼런스를 했고요. 사할린 한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할린 현지에 가서 3번이나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 밖에도 역사의 조난자들, 제가 앞서 말씀 드렸던 BC급 전범이라든지, 731부대 피해자라든지, 원폭피해자, 중앙아시아를 떠돌고 있는 무국적 까레이스키, 무국적 고려인이라고 하지요 그분들을 위해서도 현지에 가서 이분들을 위한 활동을 했고요. 중국에 가서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서 중국의 사회 과학원하고 공식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세미나를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최초로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이고 기록적인 의원 외교 활동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 자랑 같아서 발표도 하지 않았지만, 국회의원 4년을 정리하면서 이런 말씀 드릴 수가 있네요.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를 위해서 한국 정부가 할 일을 여쭤봤다.
박선영 의원: 한국에서 해야 할 것은 비정부 기구나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단식을 하면서 여러 가지 국내 언론들도 보도를 많이 했고요. 국내 언론만이 아니라 BBC, CNN, 프랑스 언론, NHK, 스웨덴 언론까지 전 세계 언론이 취재해가고 국제회의에서도 탈북자 강제 북송문제가 공식적인 논의가 돼서 유엔의 인권이사회, UNHCR, 등 국제기구와 국제 비정부 단체들이 집중 부각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의미 있는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거든요. 그러면 이제는 비정부기구나 정치인들의 역할보다는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지요. 정부가 그동안 무책임하게도 조용한 외교 미명하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런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의 입까지 막으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고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정부가 법이나 정책으로 이 문제를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쐐기를 박고 그리고 중국을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압박해 나가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를 위한 해외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봤는지 물어봤다. 탈북자가 강제 북송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중국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선영 의원: 우리 해외 교민들은요. 제가 단식을 한 이후에 상당히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특히 재미교포들은 사실은 그동안 10년 이상을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셨고요. 특히 로스앤젤레스에 계시는 우리 교민들은 미국에서 북한 인권법이 나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목회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한몸이 되어서 정말 한목소리를 내면서 행동으로 옮겨 주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고요. 제가 단식하면서 했던 일은 거기에 좀 더 불꽃을 피워주는 역할만 한 것입니다. 재미교포 여러분들이 일해주셨던 일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다만, 이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보다 집중적으로 변화시키고 더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미국 교포들만이 아니라 재일교포, 재유럽에 있는 교민들께서 좀 더 목소리를 키워 주시고 함께 행동해 주시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4월 10일 전 세계 53국에서 중국 대사관 앞에서 정오에 동시에 탈북자 북송 반대 목소리를 내 주신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이 그러나 일회성으로 끝나면 중국은 또다시 원위치가 될 거예요. 그래서 일회성이 아니라 끝임 없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박선영 의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뭐냐고 물어봤다. 탈북자들의 발 씻김 행사는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박선영 의원: 제가 이 일을 할 때마다 굽이굽이 어려운 점이 많았고, 참 외로웠습니다. 특히 국회에서는 동조해 주시는 분이 거의 안 계셨기 때문에 정말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멀리 계신 교민들이 호응을 많이 해 주셔서 그때마다 용기와 희망을 다시 얻을 수 있고 재충전할 수 있었는데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그래도 내가 참 탈북자들을 제일 많이 만났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애환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해 줬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일하면서 순간순간 깨닫습니다. 제가 부활절 앞두고 사흘 전에 탈북자들 발 씻김 행사를 했어요. 너무나 많은 탈북자들이 양말을 벗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 까닭은 탈 북 과정에서 동상에 많이 걸려서 발가락이 없다. 너무 흉해서 양말을 벗을 수 없다고 했을 때 제가 그게 무슨 누구 잘못으로 그렇게 됐느냐!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역사의 아픔이다. 당신 발가락이 없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 역사의 아픔이니까 우리가 함께 용기 내서 아픔을 드러내자! 라고 설득해서 양말을 벗게 했는데 실제로 양말을 벗었을 때 그분들의 발을 보고 저도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았어요. 발가락 10개 가운데 8개가 없고, 그나마 남은 발가락 두 개도 발가락이 이 분의 일밖에 없는 것을 봤을 때 정말 제 가슴이 꽉 막히고 쿵 하는 충격의 소리를 느꼈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쏟아지는 그런 경험은 제가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아픔과 충격의 순간이었거든요. 그 부분은 죽어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박선영 의원에게 앞으로 할 일을 물어봤다. 자신은 대학교수로 돌아가지만 사단법인 물망초(가칭)의 활동을 통해서 탈북자들의 인권을 증진하고 삶의 질 향상에 힘쓰겠다고 다짐하고 전 세계 한인들도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다.
박선영 의원: 제가 4년의 국회의원 생활을 마치고 대학교수로 다시 환원 복귀합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교수로 가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요. 그게 뭐냐하면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돕는 일을 효과적으로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의원 활동은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제가 그동안 구축했던 외교적인 네트워킹을 통해서 국제 연대는 계속해 나갈 것이고요. 국내에서는 특히 탈북자들 가운데서도 탈북 아동, 탈북 어린이, 탈북 청소년 그리고 탈북 노인들 이분들의 삶은 너무너무 처참해요. 탈북 노인 가운데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생환해 오신 국군포로들, 이분들의 아픔을 정부가 전혀 돌보지 않고 있어요. 그래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사단법인을 만들어서 탈북 아동이나 탈북 청소년을 위해서 기숙학교인 대안학교를 만들려고 하고요. 탈북해 오신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을 위해서는 요양원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단법인을 구성 하고 있는데 재미동포 여러분께서도 이런 의로운 일에 동참하시려면 저에게 연락해 주셔요. 이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금하는 데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그래 십시일반 조금씩 우리 역사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일에 조금씩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한국 국회 박선영 의원의 탈북자를 향한 사랑 이야기를 함께했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 입니다.
박선영 의원은 또 사단법인 물망초(가칭)를 만들고 북한이탈주민 가운데서도 가장 시급히 돌봐야 할 탈 북 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국군포로 등 탈 북 노인들을 위한 대안학교와 요양원 건립 등을 통해 북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을 증진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연구와 지원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한국 국회 박선영 의원의 탈북자를 향한 사랑 이야기로 함께한다.
박선영 의원은 왜 언제부터 탈북자들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궁금하다. 박 의원은30여 년 동안 탈북자들과 함께했다고 들려준다.
박선영 의원: 제가 기자 생활하고 국회의원 하기 전에 헌법 교수하면서 기자생활 할 때는 월남자 또는 귀순용사라는 이름으로 탈북자들을 취재했고요. 헌법 교수로 있으면서 우리 헌법 2조 2항이 규정하고 있는 재외국민 조항이 사실은 판례의 90%가 탈북자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을 강의하면서 살아 있는 법을 연구하려면, 당연히 탈북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지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도 그 부분을 공부해야 하고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어떤 인간관계에 의해서 제가 관심을 가졌다기보다는 학자적 양심, 그다음 직업윤리와 그 궤를 같이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30년 이상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것이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쭉 연결된 것이고요. 많은 분은 특별하게 우리 가족에게 탈북자나 북한에 친인척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데 그런 연결고리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4년 동안의 주요 활동에서 어떤 문제를 다루었는지 물어봤다. 18대 국회의원 가운데 아마도 가장 많은 연구활동과 세미나 외교 활동을 펼친 것 같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박선영 의원: 제가 국회의원 4년 하는 내내 사실은 탈북자 문제, 우리 역사에서 버려지고 잊혀지신 분들, 예컨대 사할린 한인문제, 중앙아시아의 까레이스키들, 무국적 까레이스키들, 그다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731부대 희생자들, 그리고 시베리아 억류 포로들, 조선인 BC 전범들, 원폭 피해자들, 등 이런 우리 역사에서 희생되고 잊혀지고 버려졌던 분들에 대해서 꾸준히 4년 내내 활동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우리 "역사의 조난자"라고 부릅니다. 제가 만든 말이지요.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 각인이 된 것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만 보도가 올해 들어서 집중적으로 된 것뿐이고요. 이와 관련된 각종 세미나나 자료 발굴, 의원 외교활동, 대정부 질문을 통한 우리의 정책쇄신, 그다음에 입법활동 등을 쭉 해 왔지요. 그런데 우리 언론이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서 또는 정부의 응답 태도에 따라서 언론보도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다 보니까 제가 제기하는 많은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고 언론에서조차 크게 보도가 안 되었었기 때문에 이번에 단식하면서 갑자기 부각된 것처럼 일반 국민이 느끼신 것뿐입니다. 그동안 저는 4년 내내 자료를 발굴하고, 세미나를 하고, 관련된 국가의 정치인들하고 국제 컨퍼런스, 즉 회의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아마 18대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많이 연구 활동과 세미나 의원 외교활동을 한 사람으로 제가 1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선영 의원에게 국회의원 4년을 정리하면서 기억되는 일을 들어봤다.
박선영 의원: 일본군 위안부 관련해서는 2009년에는 1년 동안에 일본을 13번 갔습니다. 13번 가서 일본 의회 안에서 사할린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일본의 자민당이나 민주당 또는 심지어 공산당 의원들과도 컨퍼런스를 했고요. 사할린 한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할린 현지에 가서 3번이나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 밖에도 역사의 조난자들, 제가 앞서 말씀 드렸던 BC급 전범이라든지, 731부대 피해자라든지, 원폭피해자, 중앙아시아를 떠돌고 있는 무국적 까레이스키, 무국적 고려인이라고 하지요 그분들을 위해서도 현지에 가서 이분들을 위한 활동을 했고요. 중국에 가서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서 중국의 사회 과학원하고 공식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세미나를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서 최초로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이고 기록적인 의원 외교 활동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 자랑 같아서 발표도 하지 않았지만, 국회의원 4년을 정리하면서 이런 말씀 드릴 수가 있네요.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를 위해서 한국 정부가 할 일을 여쭤봤다.
박선영 의원: 한국에서 해야 할 것은 비정부 기구나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단식을 하면서 여러 가지 국내 언론들도 보도를 많이 했고요. 국내 언론만이 아니라 BBC, CNN, 프랑스 언론, NHK, 스웨덴 언론까지 전 세계 언론이 취재해가고 국제회의에서도 탈북자 강제 북송문제가 공식적인 논의가 돼서 유엔의 인권이사회, UNHCR, 등 국제기구와 국제 비정부 단체들이 집중 부각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의미 있는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거든요. 그러면 이제는 비정부기구나 정치인들의 역할보다는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지요. 정부가 그동안 무책임하게도 조용한 외교 미명하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런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의 입까지 막으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고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정부가 법이나 정책으로 이 문제를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쐐기를 박고 그리고 중국을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압박해 나가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를 위한 해외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봤는지 물어봤다. 탈북자가 강제 북송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중국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선영 의원: 우리 해외 교민들은요. 제가 단식을 한 이후에 상당히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특히 재미교포들은 사실은 그동안 10년 이상을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셨고요. 특히 로스앤젤레스에 계시는 우리 교민들은 미국에서 북한 인권법이 나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목회자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한몸이 되어서 정말 한목소리를 내면서 행동으로 옮겨 주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고요. 제가 단식하면서 했던 일은 거기에 좀 더 불꽃을 피워주는 역할만 한 것입니다. 재미교포 여러분들이 일해주셨던 일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다만, 이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보다 집중적으로 변화시키고 더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미국 교포들만이 아니라 재일교포, 재유럽에 있는 교민들께서 좀 더 목소리를 키워 주시고 함께 행동해 주시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4월 10일 전 세계 53국에서 중국 대사관 앞에서 정오에 동시에 탈북자 북송 반대 목소리를 내 주신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이 그러나 일회성으로 끝나면 중국은 또다시 원위치가 될 거예요. 그래서 일회성이 아니라 끝임 없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박선영 의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뭐냐고 물어봤다. 탈북자들의 발 씻김 행사는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박선영 의원: 제가 이 일을 할 때마다 굽이굽이 어려운 점이 많았고, 참 외로웠습니다. 특히 국회에서는 동조해 주시는 분이 거의 안 계셨기 때문에 정말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멀리 계신 교민들이 호응을 많이 해 주셔서 그때마다 용기와 희망을 다시 얻을 수 있고 재충전할 수 있었는데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그래도 내가 참 탈북자들을 제일 많이 만났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애환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해 줬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일하면서 순간순간 깨닫습니다. 제가 부활절 앞두고 사흘 전에 탈북자들 발 씻김 행사를 했어요. 너무나 많은 탈북자들이 양말을 벗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 까닭은 탈 북 과정에서 동상에 많이 걸려서 발가락이 없다. 너무 흉해서 양말을 벗을 수 없다고 했을 때 제가 그게 무슨 누구 잘못으로 그렇게 됐느냐!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역사의 아픔이다. 당신 발가락이 없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라 역사의 아픔이니까 우리가 함께 용기 내서 아픔을 드러내자! 라고 설득해서 양말을 벗게 했는데 실제로 양말을 벗었을 때 그분들의 발을 보고 저도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았어요. 발가락 10개 가운데 8개가 없고, 그나마 남은 발가락 두 개도 발가락이 이 분의 일밖에 없는 것을 봤을 때 정말 제 가슴이 꽉 막히고 쿵 하는 충격의 소리를 느꼈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쏟아지는 그런 경험은 제가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아픔과 충격의 순간이었거든요. 그 부분은 죽어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박선영 의원에게 앞으로 할 일을 물어봤다. 자신은 대학교수로 돌아가지만 사단법인 물망초(가칭)의 활동을 통해서 탈북자들의 인권을 증진하고 삶의 질 향상에 힘쓰겠다고 다짐하고 전 세계 한인들도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다.
박선영 의원: 제가 4년의 국회의원 생활을 마치고 대학교수로 다시 환원 복귀합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교수로 가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요. 그게 뭐냐하면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돕는 일을 효과적으로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의원 활동은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제가 그동안 구축했던 외교적인 네트워킹을 통해서 국제 연대는 계속해 나갈 것이고요. 국내에서는 특히 탈북자들 가운데서도 탈북 아동, 탈북 어린이, 탈북 청소년 그리고 탈북 노인들 이분들의 삶은 너무너무 처참해요. 탈북 노인 가운데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생환해 오신 국군포로들, 이분들의 아픔을 정부가 전혀 돌보지 않고 있어요. 그래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사단법인을 만들어서 탈북 아동이나 탈북 청소년을 위해서 기숙학교인 대안학교를 만들려고 하고요. 탈북해 오신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을 위해서는 요양원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단법인을 구성 하고 있는데 재미동포 여러분께서도 이런 의로운 일에 동참하시려면 저에게 연락해 주셔요. 이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금하는 데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그래 십시일반 조금씩 우리 역사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일에 조금씩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한국 국회 박선영 의원의 탈북자를 향한 사랑 이야기를 함께했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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