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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관련소식/증언-북한생활1

한 탈북군관의 증언 (6부)

2004-11-13

금년 1월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한바울씨는 북한 인민군에서 14동안 군관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형이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하고 또 북한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구걸행각을 하는 것을 보고 북한정권에 환멸을 느껴 탈출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오늘 은 그 6 번째 순서로 한 씨가 보위부 요원들에게 체포돼 모진 학대를 받은 이야기 입니다. 회견에는 이현기 기자입니다.

탈북자 신분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려고 북한 국경을 넘다 보위부요원들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한바울: 제가 더 은혜스런 것은 무엇인가하면 북한요원과 긴밀히 접촉한 조선족이 내가 중국 안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저를 취급하는 과정에 그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 있었고 제가 조선에 갈 때 손에 들 수 있는 70여권의 성경책과 예수님의 초상화가 달린 목수건 100개정도 전도 용지만도 수십 가지를 가지고 갔습니다.

제가 입었던 옷들, 칫솔 등 이 모든 생활필수품들이 다 한국물품들이였습니다. 그러니까 보위부에서는 저를 보고 큰놈 잡았다하면서 무조건 나를 죽이려고 계 &# xD68D;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느 사람들보다도 더욱 가옥하게 취급을 받기 시작하고 엄청난 매를 맞으면서 제가 버티기를 시작했고 제가 요행스럽게도 제가 중국에 있을 때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숨 길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의 행한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OO에서 제가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OOO으로 들어와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갔으니까 그분들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위부가 저의 형체를 알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중국에 파송을 해 보았지만 제가 중국에서 어디에 있었다고 진술된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있었다고 말한 것은 모두 거짓말 이였기 때문에 저에 대한 형체를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3,500달라 덕분에 정치범수용소로 가지 않고 경제범으로 처리됐다는데 그 과정을 소개해 주시지요?

한: 11월 20일에 잡혀가지고 다음해 4월 15일까지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 제가 그때 살아났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이 없이는 살아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감방 안에서 40일 &# xB3D9;안 금식 기도를 했으며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해로 살아났고 그래서 4월 17일 날 금식기도가 끝나서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하나님이 나를 정치범으로부터 경제범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그때 바로 그 사람들이 주었던 3,500달라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4월 25일을 맞으면서 그분들이 무언가 음식을 차리고 명절 때 바치는 돈이 있는데 그걸 바치자니까 저희들의 힘으로는 너무나 힘이 부치고 그때 가지고 있었던 것이 나에게서 회수했던 현금 3,500달라였는데 그 돈을 가지고 저를 담당했던 취급자와 과장하고 무산군 보위부장 등 3명이서 그 돈을 나누어 가진 것입니다.

저는 무산군 검찰소로 이관되어 있는데 그 검찰소로 이관되면서 저에게 증거품으로 넘어온 것은 몽땅 거짓말 지폐였습니다. 당시 이 증거물들이 확실하냐고 물어볼 때 저는 틀린다고 나는 그때 은행에서 돈을 금방 가져왔기 때문에 이 돈이 가짜 돈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하니까 저를 담당했던 취급자가 하는 말이 아직도 너는 뭘 모른다고 입을 잘못 벌었다간 목숨이 끝난 줄 알아라, 이걸로 마무리를 지어--- 그래가지고 저는 할 수없이 진술서에다 내가 가지고 왔던 돈은 가짜 지폐였노라고 사인을 해 가지고 무산군에서 취급을 받다가 7월 15일 날 재판을 받아 00교화소 3년형을 받았습니다.

그때 2000년도가 되면서 마침 8월 15일과 10월 10일을 맞으면서 대사령이 떨어 졌는데 그 대사령에 제가 적용이 돼서 제가 노동교화소에 가지 않고 구류장에서 출소되어 다시 중국으로 오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