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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관련소식/증언-북한생활1

북한에 살다 남한에 와보니-탈북자 김춘애씨(2)

[북한에 살다 남한에 와보니] 탈북자 김춘애씨② “중국내 탈북 여성 삶 짐승보다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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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9

‘북한에 살다 남한에 와보니’ 진행에 이현기 입니다. 이 시간은 탈북자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탈북자 김춘애 씨와 함께하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RFA PHOTO/ 이현기

지난 8월 초순 워싱턴을 방문, 거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김춘애 씨.

김춘애 씨는 북한 인민군 중대장 출신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김춘애 씨는 1997년과 1999년, 2000년 세 차례의 탈북과 강제 북송 중에 잃어버렸던 두 딸을 찾았고 역시 탈북해 2003년 6월 한국에 정착한 아들과 남한에 살면서 탈북인 주부로서 또 방송인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자신이 살던 평양시도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1995년 하순부터 배급이 중단되어 가정주부로서 또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살기가 어려워 탈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북한에 살다 남한에 와보니’ 오늘은 김춘애 씨가 강제북송되어 북한에서 어떤 처벌을 받는지를 이야기 나눕니다.

질문 : 중국에서 탈북여성들이 짐승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답변 : 탈북여성들의 중국에서 삶이란 인간이 아닌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돼지도 길러보고 소도 길러봤지만, 우리 탈북여성보다 송아짓값이 비쌉니다. 돼지도 6개월 길러 팔아 봤는데 중국 돈으로 3,000-4,000 위안까지 받았습니다. 우리 탈북여성들이 나이 많은 사람은, 3,000~4,000위안 또는 2,000위안에도 팔리고 젊은 아가씨는 1만 위안 또는 1만 5천 위안에 팔립니다. 이렇듯 짐승보다 못한 값에 탈북여성들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는 인간으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질문 : 중국에서 숨어 살다가 강제 북송되는 탈북여성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북한에서 어떤 벌을 받습니까?

답변 : 제가 99년 처음 북송돼서 갈 때 뭐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에 처음 탈북해서 북송됐을 때 (저의 심정은) 그래도 조국인데 항상 북한에서 부르던 당의 품인 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잠시나마 잊게 됐습니다. 북한 무산군 보위부에 저와 딸이 같이 붙잡혀 갔습니다. 그곳에 아기 엄마가 있었습니다. 보위부 요원들이 3개월도 안 된 어린아이도 수색했습니다.
아이가 찬 기저귀도 검사하고 여성들이 찬 생리대 그리고 온몸을 발가벗깁니다. 옷을 다 벗긴 다음 뽐쁘 훈련을 시킵니다. 뽐쁘 훈련은 양손을 들고 앉았다 일어섰다 60번을 시킵니다. 처음에는 왜 그런 훈련을 시키는지 잘 몰랐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까 탈북여성들이 중국에 왔다 북송될 때 북한에 나가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중국 돈을 여성의 자궁이나 항문에 넣고 간 경우가 있대요. 이 뽐쁘 훈련을 60번 시키면 힘을 주기 때문에 돈이 빠져나올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 훈련 후에 엎드리게 해 놓고 돈이 나왔나 안 나왔나 검사를 합니다.
여성들의 머리칼도 검사하고 입었던 옷의 내부까지 샅샅이 검사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신발 바닥, 발바닥, 신발창 다 뜯어 검사합니다. 그래 처음에는 왜 이런 검사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딸과 함께 잡혀 왔기 때문에 딸 앞에서 옷을 못 벗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은 통하지가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북한에선 여성들의 인권이란 말 자체도 모릅니다.) 그렇게 검사를 받고는 (99년도까지는 보위부에 감옥이 없었는데) 보위부에서 검사를 받고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져 검사를 받습니다. 그 이후 단련대로 보내 집니다. 무산군 노동 단련대에 가서 생활합니다.
이곳 감방은 한 방에 50-60명이 있습니다. 이곳의 위생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보리알 같은 이가 바닥을 기어다닙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잠을 잘 때는 밖에서 문을 잠그고, 변기통을 줍니다. 50-60명이 그 변기통 하나를 가지고 대소변을 봐야 합니다. 이제 단련대에서 거주지별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청진 집결소로 보냅니다.
청진 집결소에 가서는 자기 해당하는 거주지에서 데리러 올 때까지 집결소 생활을 하는데 집결소는 너무 이가 많고 빈대가 많아서 빈대들이 손가락 사이, 배꼽, 발가락 사이, 귓구멍으로 들어가 물어뜯는데 말할 수가 없어요.
그 당시 저는 빈대 고문이라고 했어요. 빈대 고문을 받기가 어려워서 창문에 매달려 잤습니다. 여름인데 차라리 창문에 매달려 자면 모기에 뜯기는 게 빈대에게 물리는 것보다 낫더라고요.
낮에는 심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창문에 매달려 쪽잠을 자곤 했습니다. 빈대가 너무 많아 안전원에게 빈대약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중국에서 빈대약을 사왔습니다. 감방에 약을 쳤는데 빈대가 한 무더기 나왔습니다. 그렇게 빈대를 잡았는데도 잠자기가 어려웠습니다.

질문 :
강제북송된 임산부도 어떤 벌을 받습니까?

답변 : 제가 갇혔을 때 임산부도 있었고 아기 엄마도 한 명 있었습니다. 중국 씨족을 받아왔다고 보위원들이 발로 차고 때리곤 하는데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어요. 집결소에서는 중국에서 임신해 온 임산부의 아이를 낳게 하고는 낳자마자 살아있는 생명을 담요에 싸서 내다 버리는 걸 봤습니다. 북한에서 우리 탈북여성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권이란 것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북한에 살다 남한에 와보니’ 다음 시간에는 탈북자 김춘애 씨와 식량난으로 북한에선 아내와 딸을 팔아야 하는 가정 파탄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