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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형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9)-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9)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이제 단군조선의 개국과 최초의 수도 아사달에 대한 여러 근거들을 바탕으로 확인하는 일 을 마무리하면서 최태영 박사님의 논고를 간접 인용 하기로 하겠다. [단군은 고조선을 개국한 우리의 실존 조상이라고 역사 첫머리에 찍어댄 것이 정인보이다. 우리 역사의 출발점을 정인보는 정확히 본 것이다. 본인(최태영)의 역사관도 이와 동일하다. 근세조선은 승유억불정책을 폈지만 나의 세대까지도 단군을 변함 없이 국조(국조)로 받들어 조선의 아이들이 다음으로 배우는 에서 단군이 요임금과 같은 때 고 조선을 건국했다고 가르쳤다. 이는 의문의 여지가 없이 조선족 대대로 수천년 간 전해지던 시대상식이었다. 대한제국의 신식군대에서 군가로 부르던 “단기 내려 고강 산에..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8)-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8)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위서 (魏書)의 기록이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개국하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칭하였다]라고 되어있는 반면 고구려 말에 쓰여진 고기(古記)의 기록은 [평양성에 도읍을 세우고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칭하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로 옮기었다… 도읍을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었다. …그 후에 아사달로 환도하였다. 아사달에서 은퇴하였다]라고 된 경위에 대한 설명에서 첫째 만약 평양 성이 조선 최초의 도읍지를 뜻하는 지명이 었다면 끝부분의 그 후에 아사달로 환도하였고 단군 왕검이 아사달에서 은퇴하였다고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에 평양성으로 다시 환도하였 고, 평양.. 더보기
간도, 잊어도 되는 영토인가!-四隣 이문형(워싱톤문인회) 四隣 이문형(워싱톤문인회) 간도—(1) 간도, 잊어도 되는 영토인가! 간도는 우리에게 어떤 곳인가! 잊혀져가는 간도, 과연 잊어도 되는 영토인가? 오두가단국강불가축(吾頭可斷國疆不可縮)라 하지 않았는가! 우선 조선의 영토 간도가 중국의 영토가 된 경위부터 밝혀보자, 올해는 일본이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상태에서 1909년 9월 4일 청나라와 간도협약(Gando Convention)을 맺은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즉 조선의 주권을 찬탈한 일본이 남만주의 철도부설권과 무순(撫順)탄광 개발권을 얻어내는 조건을 걸고 청나라에 양도한 땅이 바로 우리의 영토 간도다. 쉽게 말하자면 무단침입한 강도가 집주인의 손발을 묶고 입을 틀어막아 무방비, 무저항상태로 만들어 놓고 제집인양 안방을 차지하.. 더보기
나무 정신대 벚꽃나무-이문형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침묵 속에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는 딱한 우리의 벚꽃나무! 점령군 손에 이름마저 속아서 끌려간 나무정신대 제주산 왕벚꽃나무! 이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언제 어떻게 끌려갔는지 한마디도 토설하지 않은채 침묵을 지키며, 그저 아름다운 자태만을 뽐내며 오늘도 피어나고 있다. 말없이 서있는 저 벚꽃나무의 내력을 알아보아야겠다. 고 칼 훼리스 밀러는 현재 워싱턴 조수(潮水) 연못에 만발하는 벚나무는 한국이 원산인 벚나무의 변 종이며 일본 원산 벚나무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 고 칼 훼리스 밀러의 한국명은 민병갈이며 2002년 81세로 작고해 천리포 수목원에 묻힌 분으로 서 천리포수목원을 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식물원으로 발전시킨 분이다. 그는 이어 ‘오늘날 일본 ..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7)-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7)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단군조선의 수도 아사달(阿斯達)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與高同時 (내왕2천재 유단군왕검입도아사달 개국호조선여고동시)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고(高)와 요(堯)에 대한 얘기는 뒤로 미루어 놓고 우선 도읍 아사달에 관해서 먼저 살펴 보자. *김종서의 에서 발췌 간접인용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전재(轉載)된 위서(魏書)의 기록 원문(原文) 중 그 일부인 위의 글 중에서 유단군왕검입도아사달(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의 뜻을 살펴본다. 아(阿)자는 큰 언덕아, 기슭 아자이다. 그렇다면 큰 언덕 즉 높은 언덕이 아닌 구릉을 의미하며 사(斯)자는 이 사, 모두 사, 잠깐 사, 떨어질 사, 흴 사(白色) 등의 뜻이 있는 데 이 중 색을 나타내는 흴..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6)-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6)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중국의 고서들을 통해서 본 단군조선 산해경(山海經) 편(김종서 박사의’신시.단군조선사 연구’에서 발췌) 東海之內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天毒其人水居畏人愛之 (동해지내북해지우 유국명왈조선 천독기인수거외인애지) 중국 동쪽 바다인 발해(渤海), 황해(黃海), 동해(東海)의 안쪽 땅 중에서도 북쪽 땅 즉 발해의 모퉁이 지역에 국호를 조선이라고 일컫는 국가가 있다. 하나님(하느님 또는 한얼님)이 그 조선사람들을 다스리고 기른다. 그 조선사람들은 강이나 바다 등의 물 가까이에 살면서 다른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위 천독기인에서 독(毒)자는 독 독, 재앙 독자로 쓰인 것이 아니라 다스릴 독, 기를 독자 로 쓰였다며 그 예문을 노자 1장의 則長之 育之 亭之..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5)-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5)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단군조선 제1세 단군 왕검(王儉) ***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신시(배달나라) 제18대 거불단 환웅이며 어머니는 곰족의 왕녀이다. 신묘년(기원앞 2370) 5월 2일 인시(寅時)에 태어났다. 왕검은 나서부터 신성스러운 덕이 있었으며 어질고 자비하였다. 도가 천지에 두루 통하여 사람을 크게 유익하게 하는 길로 교화하니, 신시(神市)의 옛 제도가 회복되었다. *** 배달나라 제1세 환웅천황의 개천으로부터 1565년 되는 상달 초사흔 날,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임금이 되었다. ***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이름을 이라 하였다. 후에 사람들이 아사달을 왕검성 이라고 하였다. *** 맏아들 부루(扶婁)를 태자로 세웠다. *** 땅이 넓고 백성이..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4)-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전약(前略) […이 때 치우천황은 공상(空桑)에서 제위에 올랐다. 이어 군사를 탁록의 들로 돌려 유망을 포위하니 또 크게 승리하였다. 관자(管子)가 “천하의 임금이 칼을 들고 노하면 쓰러진 시체가 들에 가득하다” 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때 헌원(軒轅)이라는 사람이 유망이 패하여 달아나고 치우씨가 제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대신 임금이 되고자 헌원이 군사를 일으켜 치우씨에게 도전했다. 치우씨는 탁록의 들에서 헌원을 맞아 크게 싸웠다. 이 때 군사를 풀어 사방을 치니 죽은 자가 헤일 수 없었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적군의 마음이 흐려지고 손이 떨려 급히 달아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리하여 회대(淮岱)와 기연(冀연)을..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3)-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3)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지난호의 연장 선에서 우리의 정사라는 의 맹점 몇 가지만을 간추려 옮겨본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仁宗 1123~1146) 때 독실한 유학자 김부식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더보기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2)-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2)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내가 우습고 가엾게 여기는 것은 근세의 학자들이 한적(漢籍: 한나라의 서적)에 얽매이고 유학(儒學)에 빠져 멍청하여 지더니, 스스로를 외이(外夷:바깥 오랑캐)라 달게여기며 중국을 받드는 것이었다. 어느 성대한 잔치자리에 갔을 때에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말들이 오고가는 것을 보고, 내가 취중에‘너희들 이 중국과 오랑캐를 말하지만….우리의 선조들은 상고 때부터 강하고 용맹스러우며 성질 또한 곧고 바르며 예절을 지키고 양보하기를 좋아하여 중국에서도 “동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 근본 이 융적의 무리와 같겠는가, 압록강 바깥 사방 만리 땅은 우리 거룩한 선조들이 고생 하며 경영하던 땅인 데, 어찌 본래 부터 한나라 땅이겠는가,.. 더보기